박원순 시장이 청계천·을지로 개발을 “전면 재검토해 새로운 대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거의 문화나 예술, 전통과 역사를 도외시했던 개발에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집중 도시산업의 근거지들이 있는데 이것을 없앤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는데요… 뭐 이미 사업이 시행된 마당에 립서비스에 불과할 것 같지만, 어쨌든 그에 대한 단상을 짧게 풀어 보면.
1.
개발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죠. 주거 위주의 구역도 어렵지만, 상업 위주의 구역은 영업권, 거기에 특히 권리금 문제가 얽혀 더 어렵습니다.
많은 재개발 사업에서 문제가 됐던 게 이 영업권과 권리금 문제였는데요. 과거로부터 오늘까지, 최근에는 두리반, 마리 같은 투쟁 사례를 거쳐 많은 변화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임차인 보호, 권리금 법제화 등, 과거에 비하면 확연한 진일보죠. 물론 모두의 마음에 흡족할 만큼은 아니겠지만요.
청계천·을지로 도심 지역 재개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누군가는 계속 여기에서 영업을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겠죠. 보상금이 충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개발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죠.
그렇다고 개발을 영영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초점은 ‘얼마나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냈는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는가’ 등이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2.
위의 얘기는 지극히 단순한 원론일 뿐이고.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의 경우, 초점이 좀 엉뚱한 데 맞춰져 있단 생각이 들어요. 일종의, 그러니까 ‘보존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여기 그 정도의 보존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
산업적으로 이런 ‘공구상가’가 꼭 서울 정중앙의 을지로에 밀집되어야 하는가? 낡은 단층건물이 빼곡히 늘어선 형태여야 하는가?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문화적인 가치, 이런 형태의 거리가 심미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가? 그것도 아닐 것 같고요. 그럼 역사적인 가치, 이 거리가 보존해야 할 정도로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는가? 가치가 없진 않겠지만, 그렇게 보면 세상에 재개발이 가능한 거리는 하나도 없을 테고요.
다수의 동의 없이,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이뤄지는 재개발이라면 당연히 소외되는 소수를 위해 정말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그냥 오래된 곳이니까 지키자는 말은 좀 이상해요.
심지어 을지로는 서울 정중앙의 상업·사무 밀집 지역입니다. 거기 더 이상 개발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낡은 건물들, 심지어 수많은 단층 건물이 언제 사고가 날지 무서울 정도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것조차 전통 보존을 위해 건드려선 안 된다면 서울은 이대로 늙어 죽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3.
일부 언론 등에서 을지면옥 등 노포가 사라진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재개발 현장에서 가장 걱정 안 해도 되는 게 을지면옥 같은 가게 아닐까 싶거든요. ‘예인냉면’ 같은 주변 사람 말곤 아무도 모르는 가게는 업장을 옮기는 게 치명타지만 을지면옥이 강남으로 이전한다고 손님이 떨어질 가게도 아니고… 심지어 도봉구에 있어도 줄을 설 가게인지라.
만약에 을지면옥이 이전해선 안 열 거다, 장사 접을 거다 해도 그건 뭐 그냥 그 사장님의 선택일 뿐이죠. 물론 즐겨 찾던 노포가 사라지는 데서 오는 서운함, 공허함을 얄팍한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정말 슬픈 일이죠.
하지만 그 서운함과 슬픔이 을지로를 그냥 두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해요. 더 위악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을지면옥 얘기는 아니고 다른 여러 노포 이야기인데, 서울의 노포가 그렇게 보존해야만 할 가치가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고요. 오히려 한식이 미식의 영역으로 발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어요.
4.
개발은 늘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소외시킵니다. 피해가 없는 개발 같은 건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게 개발이고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개발을 아예 부정하면 우린 늙어 낡은 도시와 함께 익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조율이 필요한 게 이런 부분일 겁니다. 어떻게 그 피해를 최대한 줄일 것인가, 어쩔 수 없는 피해를 어떤 식으로 보상할 것인가, 예를 들어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 보상이 적절할 것인가. 이건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해도 부족함이 없겠죠.
그런데 오래되었기 때문에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건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보존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 보존 가치가 을지로 일대를 지금 그대로 놔둬야 할 정도인건지 하는 문제죠. 재개발 반대 측 입장을 들어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더 아쉬운 건 박원순 시장의 립서비스입니다. 여론에 너무 함부로 영합하는 느낌. 여론을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미 80개 중 33개 건물이 철거될 정도로 진행된 사업에서 재검토 같은 얘기가 나오면 좀 많이 곤란하지 않나요.
게다가 역사적인 부분, 전통적인 부분을 뭘 어떻게 살리겠다는 건지도 지극히 공허하고요. 주공아파트 굴뚝 남기듯이 무너져가는 건물 하나 남겨두는 게 말씀하시는 ‘보존’의 의미가 아니었으면 해요.
원문: 임예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