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IGN 코리아에 실린 글입니다.
2018년 10월 9일 ‘한국에 있는 철권 성지’로 불리는 그린게임랜드(Green Arcade, 이하 그린)가 폐업을 결정했다. 원인은 고령화로 인한 경영유지 불가 판단이며, 이 소식은 그린 소식을 꾸준히 공식으로 전해오던 박현규(활동명 ‘NIN’) 씨의 SNS로 전달되었다.
전 세계 철권 유저들의 아쉬움 속에, 이미 소식을 듣고 도착했을 때는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현장을 잠깐 둘러보는 짧은 시간에도 꾸준히 한두 명씩 ‘그동안 감사했다’며 인사를 오는 유저들이 있었으며, 벌써 오늘만 소식이 퍼진 뒤 70명 가까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IGN: 하루 만에 벌써 절반 이상 정리되신 것 같습니다. 언제 마무리되나요?
윤경식(이하 윤): 내일이면 다 정리될 거예요. 다만 기계는 당분간 두려고요. 아무래도 요새 시장은 기계를 빨리 처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박현규(이하 NIN): 저는 사장님에게 수고하셨다고 손뼉을 치지만, 게이머로서 아쉬운 건 사실이에요. 정말 이런 환경에서 게임을 해왔다는 것이 축복이었어요. 여름에는 이곳의 두 배 이상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에어컨이 계속 가동되서, 철권 유저들이 피서를 여기로 오기도 했어요.
계속되는 인사 행렬 속에 윤 사장은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까지 오냐’며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받으며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중에는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온 사람도 있었으며, 그러한 광경 자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린이 철권 아케이드 유저들에게 가진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NIN: 사장님이 저희를 위해 노력하신 게 많아요.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있게 세팅된 기계들이 있는데, 거기에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따로 틀을 만들어 세팅을 해주시기도 하셨고요. 인터넷 회선이 안 좋을까 싶어 회선 장비에 있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일본에서 정해준 라우터는 네트워크 대역폭에 한계가 있어 추가로 라우터를 구입했다는 설명. 실제 게임장마다 1개만 구입하는 것을 그린은 3개를 구입해, 유저들의 네트워크 대전이 쾌적하도록 배려했다. 이로써 철권 점포 소개에도 ‘그린게임랜드’라는 이름은 3번이나 소개되었으며, 그 때문에 같은 점포여도 가끔 네트워크 매치가 성사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NIN: 기계도 그냥 순정 기계가 아니에요. 보시면 기계 아래 열기 배출구가 있어요. 이게 없으면 가끔 기계를 돌렸을 때 안의 열기가 순환이 안 돼서 게임이 멈춰버릴 때가 있거든요. 가끔 게임을 하다 보면 멈춰서 아쉬울 때가 있는데, 이런 가끔 일어나는 현상조차 발생 안 하게 노력해주셨어요. 한국은 케이스 제작하는 분들이 규격에만 맞춰서, 열 문제로 기계가 멈추는 현상이 가끔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AS를 일본에 보내자니 다시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1달 이상 걸렸고요. 비용도 만만치 않았죠. 하지만 그린에서는 이러한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윤: 컨트롤 패널도 다 새로 만든 거예요. 게임을 오래 하면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질 때가 있거든요. 버튼을 오래 눌러도 피로하지 않도록 손목 받침을 만들기도 했고, 휴대폰 충전도 가능하게 레버 왼쪽에 전원 콘센트가 준비되어 있어요.
NIN: 앉아서 오래 게임을 즐길수록 쾌적한 환경이었어요.
NIN: 또 하나. 이것도 보여드릴게요. 한국 유저들이 일본으로 원정을 하러 갈 때, ‘그린 레버(Green Lever, 그린게임랜드에서 제작한 독자 레버)’에 한국 배치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따로 패널을 제작해주시기도 하셨어요.
윤 사장은 이후에도 NIN이 IGN에 보여주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서도 웃음만 지을 뿐 말을 아꼈으며, 가끔은 설명이 끝난 곳을 뒤늦게 바라면서 하나하나 회상에 잠기는 모습을 보였다.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이 다가왔고, 늦은 만큼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졌다.
이후 IGN에서는 카운터로 자리를 옮겨, 윤경식 사장 및 NIN과 함께 철권 아케이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린의 21년 이야기를 들어본다.
막을 내리는 철권의 성지
IGN: 그린게임랜드(이하 그린)는 언제 창업하셨죠?
윤: 한 21년 정도 되었어요.
NIN: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여기를 왔는데, 그때가 이미 19년 전 이야기예요.
IGN: 1997년 정도가 되네요. 원래부터 사장님은 게임을 좋아하셨나요? 처음 게임장을 차리게 되신 계기는 어떻게 됩니까?
윤: 단순히 장사하려고 시작했어요. 그때는 골목 한두 번만 꺾어도 게임장이 계속 있었거든요. 거기에 저는 기계만 구입하면 게임을 평생 안 바꿔도 되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만큼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게임장 장사하면 괜찮다’ 이야기가 주변에서 계속 들렸고, 살펴보니 진짜 게임장은 계속 생겨나는데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IGN: 기계의 게임을 교체해야 하는지도 모르셨다면 처음에 많이 당황하셨겠네요.
윤: 게임을 하는 사람 중에는 게임을 떠나 기계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이게 안 돼요’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무슨 불량 청소년이거니 싶어 우리 가게 오지 말라고 대응했죠. 저도 이쪽 일을 처음 시작해서 그 말이 무슨 개념인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고, 당시는 게임장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워낙 많았잖아요. 아무리 내쫓아도 새로운 사람들은 계속 게임장을 찾으니 그게 가능했습니다. 물론 저런 상황은 정말 초기였고, 저도 계속 운영을 하니 이후 레버나 버튼을 계속 교체해가며 서비스를 했죠.
‘불만의 원인’에 주목하기 시작하다
IGN: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 평범한 동네 게임장 사장님들의 영업 방침과 다르지 않았다는 인상입니다. 앞서 살펴본 그린 시설들을 떠올렸을 때, 사장님의 유저 편의를 생각하는 지금의 마인드는 계기가 있었다고 보이는데요. 언제부터 지금처럼 생각을 바꾸시게 되었나요?
윤: 2001년. 〈철권 4〉가 나왔을 때예요. 신작을 가져다 놓았는데 사람들이 안 하는 거야.
IGN: 〈철권 4〉는 과도한 변화로 인해 출시 직후 논란이 큰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케이드에서 활동하셨던 NIN 님께서는 〈철권 4〉를 어떻게 보시나요?
NIN: 〈철권 4〉는 게임 자체의 완성도 문제라기보다, 변화가 너무 커서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냐는 정서의 문제가 있었죠.
윤: 바로 전 〈철권 태그 토너먼트(이하 태그)〉와 비교하면 변화가 너무 심한 거예요. 당장 체력 게이지가 2개에서 1개로 줄었으니까요. 사람들이 일단 손해 보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받았죠. 거기에 체력도 팍팍 줄어드니 그냥 뭐 해보지도 못하고 게임 끝나버렸던 거예요.
NIN: 거기에 당시 그린은 〈철권 4〉가 100원이었지만, 체력 세팅이 -2(세팅 값 숫자가 내려갈수록 데미지가 높다)였어요.
윤: 한국에서 제공되는 세팅이 30초 라운드 시간에, 난이도는 컴퓨터가 가장 강한 울트라 하드였어요. 거기에 데미지도 -2 세팅. 폴이 한번 붕권 때리면 에너지가 절반은 그냥 줄어버리는 거야(웃음). 그걸 또 만회하려고 하니 이번에는 시간이 없네? 그러니 이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죠.
NIN: 사장님이 처음부터 게임장을 오픈하자마자 큰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신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신작이라고 해서 가져왔고 철권이라는 게임의 명성도 아는데, 게임을 안 하는 것을 보고 이유를 게임 세팅의 문제라고 판단한 생각. 게임은 잘 모르셨을지언정, 적어도 인기가 없으면 왜 인기가 없는지 원인을 찾을 때 여기까지 생각을 하시는 업주였던 거죠. 지금 사장님의 발자취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인 사건이었어요.
윤: 가게에 오는 소비자들에게 왜 안 하는지 물어보기 시작했죠. 정말 〈철권 4〉가 그렇게 하기 싫은 게임이었는지. 뭐가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그러니 ‘체력이 너무 많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 그럼 체력 세팅을 바꾸자’ 이렇게 나아갔던 거죠. 그렇게 체력은 -2 세팅에서 -1, 0, +1, +2 세팅까지 했던 거예요.
IGN: +2 세팅 정도면 -2에 비해 공격을 두 배는 때려야 게임이 끝나죠.
윤: 그렇죠. 그러니까 게임이 아예 확 달라지는 거예요. 이후 두 번째로 다들 아쉬워하는 게 뭘까 찾아보니, 3판 2선승은 재미있게 즐기기에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는 문제가 있었어요. 한 라운드만 져도 다음 라운드가 마지막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도 5판 3선승으로 바꾸고, 시간도 30초에서 60초로 늘렸어요.
NIN: 사실 이미 한국에서 철권으로 유명한 게임장은 다 이렇게 세팅을 맞추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당시에 다른 게임장과 교류도 없었는데 똑같이 되었던 거죠. 더해 결정적으로, 이렇게 세팅을 한 곳은 다 플레이 요금이 200원이었어요. 그린은 100원 요금을 유지하면서 거기까지 세팅을 올린 거죠. 그러니 100원에 기계 상태도 준수하고 세팅도 좋으니 소문이 퍼지고 사람이 몰리면서 지금의 그린이 시작된 걸로 기억해요.
윤: 게임을 깊게 즐기는 사람들이 팀을 만들어서 게임을 하는 문화가 있어요.
IGN: 배틀팀(대전 격투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 단체의 통칭, 당시는 배틀팀끼리 붙어 정해놓은 승수까지 먼저 이기는 팀이 승리하는 규칙으로 승부를 많이 겨루었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윤: 이 ‘배틀팀’이라는 사람들이 이때부터 오기 시작하는데, 와~(웃음) 이렇게 깐깐한 사람들을 또 처음 본 거죠. 레버랑 버튼은 계속 바꿔줘야 했고,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가다 보니 ‘이걸 어떻게 개선할 방법이 없나?’ 고민을 또 했어요.
NIN: 당시 철권으로 유명한 곳은 서울 구의역에 있던 ‘환타지아’라는 게임장이었는데, 〈철권 4〉가 나온 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망하면서 사실상 한국에서 철권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 없어지고, 그에 따라 배틀팀 문화도 무너질 위기에 있었어요. 여전히 게임의 이질감으로 인해 〈태그〉만 하는 유저들과 〈철권 4〉를 즐기는 유저들로 나뉘기도 했고요. 저는 그린이 환타지아가 가졌던 철권 성지의 명맥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해요. 두 분이야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긴 하지만, 저는 환타지아도 자주 갔기 때문에 그 게임장도 얼마나 이러한 유저 편의 부분에서 신경을 많이 썼는지 알거든요.
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철권 4〉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도 안 하게 되었고요. 실컷 두들겨 맞아도 그걸 다시 두들겨 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어떻게든 계속 게임을 하게 되는 겁니다. 똑같은 게임이라도 환경에 따라 게임의 재미가 바뀔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NIN: 이렇게 되니 배틀팀들이 하나씩 방문하게 되고, 이게 인터넷으로 소문이 퍼졌는데 이곳(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근처에는 이렇게 세팅에 신경 쓴 게임장이 없었던 거예요. 건대 화성침공, 압구정 조이프라자 등등 다른 좋은 곳도 있었지만 여기는 불모지였거든요. 이런 곳에 그린으로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인천, 부천, 구로, 대림, 신길 곳에서 사람들이 몰렸고. 나중에 〈철권 4〉가 8조(16대)까지 늘었어요.
윤: 거기에 까다로운 소비자들까지 들어온 거죠. 저도 꽤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 ‘좋아. 소비자가 원하는 환경을 내가 만들자’ 하는 생각으로 건의 사항을 들었어요. 그런데 답이 없는 거예요(웃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기술이 잘 안 나간다’는 건의였어요. 하지만 레버를 아무리 바꿔줘도 이야기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대체 손을 어떻게 움직이길래’ 생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죠. 사실 레버를 움직일 때 사람의 손은 아래로 내린다고 해도 손의 구조상 똑바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아요. 하지만 소비자는 그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찰을 해보니 제대로 올바르게 내려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레버의 반경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린 레버의 탄생
IGN: 그렇게 해서 그린 레버가 탄생했던 거군요.
윤: 처음에 주목한 부분은, 사람마다 레버를 잡는 버릇이 다른 부분이었어요. 왜냐면 처음에 사람들이 게임장에서 레버를 만질 때, 잘 세팅된 게임장에서 모두 즐기는 게 아니었거든요. 학교 앞의 작은 미니 게임 통에서 놀던 사람도 있고, 관리가 안 되는 기계에서 즐긴 사람이 많았어요. 이렇다 보니 헐거워진 레버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연스레 커맨드를 입력하는 범위가 넓도록 몸이 기억한 거죠.
이렇게 커맨드를 넓게 즐겼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커맨드 입력 범위가 작은 레버를 만지라고 하면 입력에 오차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레버가 산와(Sanwa) 제품으로 통일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모두 그 레버로만 게임을 해서 어떤 게임장을 가도 입력하는 느낌의 오차가 적고요. 당연히 일본 사람들도 한국에서 레버를 만지면 반경이 넓어서 커맨드를 정확히 입력 못 합니다. 몸이 기억하는 느낌, 습관의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입력 폭을 넓게 하되, 커맨드를 빠르게 넣을 수 있어야 한다’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니, 우선 너무 뻑뻑해도 안 되고 너무 부드러워도 안 되는, 레버는 ‘대충 헐겁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았던 거예요.
IGN: 길들인 레버의 느낌!
윤: 시중에 있는 레버들을 모두 구입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죠. 이 레버는 길들이는 데 몇 시간이 걸렸을까? 일부러 뻑뻑한 것도 돌려보고, 부드러운 것도 놓아 보고. 확실히 부드러운 레버일수록 사람들이 오래 앉아 있었어요. 반면 이건 또 커맨드가 빠르게 안 나가. 결국 처음부터 어느 정도 부드러우면서도 빠르게 커맨드가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시중에서 이러한 레버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레버까지 만들게 된 거죠.
NIN: 사장님이 레버 전문가가 아니셔서, 정말 저희를 실험대(기계)에 놓고 끝도 없이 임상 시험을 계속하셨어요. 전 정말 수많은 실험을 당했던 사람이죠(웃음).
윤: 이게 현재 그린 레버입니다.
IGN: 완전 일체형이군요. 보통의 스틱이 마이크로 스위치를 눌러주는 헤더가 별도로 있지만, 이 스틱은 헤더까지 일체형이라는 게 신선합니다. 소재는 철인데도 불구하고 레버가 매우 가볍네요.
윤: 모두 정밀 가공을 거쳤어요. 일단 마모가 안 되어야 하니까요. 레버를 돌리면 조금씩 봉이 깎여나가 입력 반경이 바뀌는 것을 없애줘야 했습니다. 게다가 소량 주문인 만큼 단가도 비싸죠. 개당 5만 원 이상 들었어요. 이걸 만들 때 한국의 레버 시장 가격이 보통 4천 5백 원이었어요. 이걸 팔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게 가공만 5만 원이 넘어요. 거기에 여기서 가공만 한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일단 여기까지도 5만 원이니, 아마 팔았으면 도둑놈이라는 소리 듣기 딱 좋았을 겁니다(웃음). 더해 레버 봉도 가벼워야 증립으로 빨리 돌아와요. 하지만 시장의 레버들은 대부분 사출 형태거든요. 안이 꽉 차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레버는 레버 속 부분을 모두 비웠어요.
IGN: 그래서 이렇게 가벼웠군요.
NIN: 레버의 제작 노하우나 개념은 저도 처음 들어요.
윤: 거기에 레버를 움직일 때는 약간 공차가 있어야 합니다. 중립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실리콘을 딱 맞게 맞추면 안 돼요. 그래야 소비자가 레버에 힘을 주기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무겁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IGN: 소비자가 레버를 움직이지만, 공차로 인해 텐션을 느끼는 시작 범위는 살짝 움직인 이후. 그린 레버가 가볍다는 비밀은 이런 부분들에 있었군요. 이렇게 수치를 확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윤: 엄청 오래 걸렸죠(웃음). 오죽하면 마누라가 이제 좀 그만하라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돈은 돈대로 엄청나게 들면서 실패하면 그냥 다 버리니까요. 그래도 소비자들이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니까 커맨드는 빠르고 정확하게 나가면서, 우리는 소비자들이 게임을 오래 한 만큼 수익성이 올라가고, 선순환 구조가 되었죠. 거기에 철로 만들어 마모가 되지 않게 만들어 소비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레버 감각에 오차를 느끼지 않습니다. 거기에 이 그린 레버의 비밀이 몇 가지 더 있어요.
누구에게도 지금껏 말한 적 없었다는 그린 레버에 대한 설명은 이후 소재와 탄성 및 파이값 등의 데이터 관련 내용으로 이어지며 1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린 레버는 2006년 처음 제작되었고 지금까지 천 번에 가까운 변화를 거쳤으며, 레버뿐 아니라 기계에 놓는 위치 및 브래킷 설치 각도 등 많은 부분에서 독자적인 변화를 거쳤다. 테스트는 온전히 그린을 이용하는 플레이어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가게 문을 닫고 모든 기계에 레버를 일괄 교체 후 다음 날 카운터에서 지켜보다 반응이 별로면 그날 밤 모두 다 폐기한 적도 부지기수. 지금 제작되는 그린 레버는 이런 12년의 연구 결과 끝에 나온 가장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버전이며, 소비자를 위해 한 게임장의 사장이 어디까지 노력할 수 있었는지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자님에게 하나 물어볼게요. 이 레버를 팔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IGN: 원가부터 지금까지 들었을 때는 한 8만 5,000원에서 9만 9,000원 정도가 적정가로 보입니다.
윤: 그렇게 팔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IGN: 시중 고급레버가 비싸도 아직 3만 원대라서, 폭리를 취한다고 욕먹을 수 있습니다(웃음).
윤: 그러니 팔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더해 제가 만든 레버를 저는 제가 책임지고 관리하고 싶었어요. 누구에게 이 레버를 쓰라고 줬을 때, 시간이 지나면 레버는 소모품이라 결국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나중에 불특정 다수가 시간이 지난 그린 레버를 만져보고 ‘그린 레버 별로네’ 같은 소리를 굳이 듣고 싶지 않았어요. 항상 그린 레버는 같은 느낌과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그린에 있는 기계의 레버도 꾸준히 일괄 교체해요. 그 정도로 저는 레버를 만졌을 때 똑같은 느낌을 받도록 지금까지 신경 쓴 사람인데, 이걸 누군가에게 판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어요.
또한 이 그린 레버는 온전히 그린을 방문해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모두가 최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데이터가 기반입니다. 사람마다 레버를 잡는 습관은 차이가 있는데, 이걸 제가 실제 조작하는 것을 보지 못한 플레이어에게 주고 싶지 않았어요. 소비자가 직접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만든 거라, 제가 보지도 않은 소비자에게 넘겨주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요.
또 하나는 스위치나 브래킷 부분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시중에 있는 걸 구입한 거예요. 애초 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만들지 않았어요. 이런 것들까지 모두 내가 만든 게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걸려요. 나중에 스위치가 잘못 돼서 레버 느낌이 안 좋을 수도 있잖아요. 그린 레버라고 만졌는데 비록 제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선택한 부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당연히 제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더욱 누구에게 레버를 넘기는 것이 제 신념과 맞지 않았어요.
실제 윤 사장은 금일 폐업에 따라 ‘그린 레버를 하나 받을 수 있냐’는 부탁을 온종일 받았으나, 위와 같은 생각을 이유로 한 명도 넘겨주지 않고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
레버 말고도 별별 시도를 다 했죠. 이런 것도 만들었어요. 한번 눌러보세요.
IGN: 엄청 무거운 버튼이네요. 이건 소재가 어떻게 되나요?
윤: 황동. 하도 버튼이 깨져서 시도해본 거예요. 어떻게 하면 안 깨지면서 소비자가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여기까지 갔었습니다.
NIN: 그런데 탄성이 없어서 실패했어요(웃음). 사장님 노력과 고집의 결과물 중 하나이긴 한데,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성공했다면 혁신적이었을 거예요.
윤: 10년을 써도 안 깨지는 거지(웃음).
NIN: 이거 성공했으면 이미 버튼 회사 사장님으로 살고 계셨겠죠.
윤: 그런데 다 만들어놓고 나니까 느낌이 안 좋은 거야. 그래서 아웃(웃음). 만들어서 기계에 다 꼽아보니까 소비자들이 ‘느낌이 안 좋아요’ 하더라고요. 그러면 난 또 돌아버리는 거예요. 정밀 가공으로 일일이 깎아서 만들고 붙이고 어휴(웃음).
NIN: 처음에는 좋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누르다 보니 무게 때문에 잘 안 올라오더라고요.
IGN: 그렇다고 버튼의 텐션을 많이 주면 반대로 잘 안 내려가고, 딜레마에 빠지셨군요.
윤: 그렇죠. 그래도 조금 더 연구하다 보니 괜찮아지긴 했는데(웃음), 그래도 우리는 매일 들리는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당장 중요한데 실험을 더 할 수는 없어서 쓰레기통에 다 버린 것들도 많아요.
NIN: 사장님의 고집이 만들어 낸 것도 많죠. 원래 남코 게임은 일본에서 네트워크가 24시간 안 돌아가거든요. 그걸 줄기차게 항의하셔서 결국은 24시간 가동을 하게 만드시기도 했어요.
결국 인간과 인간의 장사, 손익을 먼저 따지지 않았다
IGN: 게임장에서 커피나 라면을 제공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윤: 커피 같은 경우는 단순히 더운 여름날 땀 뻘뻘 흘리면서 가게에 오는데, 더우니 뭐라도 한잔 마시라고 주는 거죠. 라면 같은 경우는 어느 순간부터 밥도 안 먹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가게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가?’ 생각이 들어 상당히 오래 관찰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사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은 삶이 힘들어 평소에 웃는 일도 잘 없다 보니까 게임에서 이겨도 잔미소만 얼굴에 번지고 내색도 안 해요. 하지만 배고픈 건 누구나 똑같잖아요. 그래서 라면을 끓여 팔았어요. 다만 그냥 주게 되면 노숙자를 양성하는 그림이 될까 봐 1,000원에 팔았어요.
IGN: 원가는 얼마였나요?
윤: 1,500원(웃음). 그래도 먹는 사람 프라이버시를 고려하니 이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공짜로 주면 한 번이야 먹을지 몰라도 미안해서 계속 달라고 하기 어렵거든요. ‘돈을 내고 사 먹는다’라는 개념은 있어야 자존심이 지켜지거든요. 그러다 보니 1,000원에 사서 먹는 라면이 흡족할 수밖에 없었죠.
NIN: 크게 사모님은 사람을 상대하시고, 사장님은 기술자의 포지션이었어요. 거기에 당시 청소년 게임장은 밤 10시까지만 운영하게 되었는데, 이 규제가 풀리자마자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남아있으면 그린은 영업을 계속했어요. 그런데도 각자 역할이 나누어져 있으셨으니 서비스와 환경 발전이 동시에 되었던 거죠. 거기에 밤 되면 서비스로 부침개도 해주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집에 가질 않았어요. 그린에서 주는 커피랑 라면만 먹으면서 계속 철권 하는 거예요.
윤: 심할 때는 커피를 하루에 500잔 이상 만들었어요(웃음).
NIN: 이것을 알고 다른 게임장도 벤치마킹해서 ‘커피를 타주니 오나 보다’ 생각하고 따라 한 곳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의도와 분위기는 전혀 달랐던 거죠. 또 하나 재밌는 게, 외국은 이렇게 서비스로 뭘 무료로 주는 문화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커피를 줘도 마시지 않고 강매당하는 거로 생각한 해프닝도 있었어요. 사모님이 ‘Free Free’ 하니까 그제야 마셨어요.
윤: 그리고 커피를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돌렸어요. ‘사람들이 목마를 때가 됐다’ 하면 싹 일괄로 돌리는 거죠.
NIN: 그러다 보니 이 풍토가 다른 오락실에 퍼지기도 했어요. 이벤트도 많이 하셨어요. 매주 금요일 밤 8시 이벤트를 해서 카드를 무료로 뿌리기도 했고요.
윤: 카드 가격이 5,000원인데 계속 500회 게임을 한 뒤 갱신해야 하는 구조였어요. 그러다 보니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서도 카드 가격을 여비로 준비하는데, 만약에 카드에 당첨되면 그 돈으로 게임을 더 할 수 있잖아요. 소소한 이벤트였죠.
NIN: 그린 레버 같은 자체 시도는 나중으로 놓더라도, 운영 자체가 잘 되었던 게 사모님이 서비스 만족도를 충족시킨 점도 커요. 흔히 잘나가는 게임장들이 실수하는 요소가, 잘 나가면 그 순간부터 소비자들의 불만을 안 들어 주거든요. 그런데 그린은 더욱 서비스 만족도를 올렸던 거예요. 커피에, 라면에, 밥도 나오고 에어컨까지 미친 듯이 나오니 여름만 되면 다 그린에 몰려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두 배가 된 거예요. 그런데 그걸 또 서비스하신다고 에어컨을 추가로 놓으신 거죠.
윤: 사람 조금만 없어도 추워(웃음).
NIN: 밖에서 봤을 때는 다른 게임장은 사람이 없고 여기에 계속 사람들이 몰리니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요. 이때 저희가 그린 게시판을 이용해서 방명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나 오늘 몇 시에 그린 간다’ 식으로요. 그러면 그걸 보고 같은 계급끼리 붙을 수 있는 승단전 이벤트를 만들었어요.
윤: 반응이 좋아서 나중에는 기계도 플레이 계급 제한을 두어 배치했고요. 각자 계급에 따라서 이용할 수 있는 기계가 달랐어요.
NIN: 거기에 관리도 잘했어요. 온라인에서 부계정 만들 듯 카드를 세컨드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걸 못하게 카드를 하나만 사용하게 룰을 정하고 등등, 지금의 승단 문화는 그린에서 만들어졌다 보셔도 과언이 아니에요. 거기에 이벤트나 원정 비용 등 모든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해주셨습니다.
윤: 결국 국내나 해외 대회에 나가서 실력을 보여주면 다시 유저가 늘고 그 유저들은 그린으로 들어오니까요.
동기부여 측면에서 시작한 일본원정, 그리고 폐업
IGN: 아케이드 시장의 침체로 철권 방송 리그가 한국에서 사라지다 보니, 이후 일본 원정을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윤: 동기부여를 유지해줘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이벤트가 줄어들다 보니 해외를 노릴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서만 싸우지 말고 시선을 일본으로 돌려서, 마스터 컵 등 일본 대회에 제가 데리고 단체로 참여하게 되었죠.
IGN: 원정 비용도 사장님이 부담하신 건가요?
윤: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철권 실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증명할 수 있었죠.
IGN: 이렇게 동기부여 측면에서 일본 원정까지 다니던 상황에서 폐업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폐업의 원인은 공식적으로 나이 때문에 입니다만, 속사정이 있으십니까?
윤: 물론 그 외에도 다른 이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소위 ‘음식 남김없이 먹어놓고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차라리 한두 번 먹고 다 먹지를 말든가. 이미 게임업을 20년 동안 했습니다. 이제 와서 업데이트나 여러 가지를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고요. 지금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이 큽니다.
NIN: 한국 아케이드에서 철권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셨죠. 더 아케이드가 존재할지도 의문이고요. 가정용으로 게임이 먼저 나오는 것도 전 세계적인 추세고요.
윤: 후회는 없습니다. 그린에서 게임을 즐겼던 유저들은 전 세계 어디를 데려다 놓아도 톱이었어요. 그러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IGN: 아무리 후회가 없어도 패널이나 트로피 경우는 기념으로 남겨놓을 법도 한데, 미련 없이 모두 정리하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윤: 패널이나 트로피들은 다 개개인의 사연이 담겨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의미였습니다. 저것들로 인해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지 않게요.
그린에 걸린 트로피는 누구 하나 ‘저건 내 것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 사람, 혹은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이룩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인제 와서 그러한 취지로 게임장에 전시해놓은 것들을 다시 특정인에게 돌려주기가 모호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IGN: 이후 새로운 사업을 예정하고 계시나요?
윤: 향후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다만 지금까지 사람들과 쌓아온 추억이 있잖아요. 오늘도 마누라는 계속 울었어요. 이제 철권이라는 접점이 없어졌으니 여기를 찾아온 손님들과는 단절이 되겠죠. 여기에 20년을 쏟은 만큼 저와 마누라는 이게 전부였고, 유저들과 커뮤니케이션도 끊어질 테니 저희는 단절과 같아요. 그만큼 그린을 운영했을 때 향수가 당분간은 이어질 것 같아요. 향후 계획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단절감을 차차 회복하는 게 우선이지 싶습니다.
IGN: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원문: IG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