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글을 필자의 허락하에 게재합니다.
윤도한 문화방송 논설위원이 대통령 국민소통수석비서관(차관급)으로 발탁됐다. 여현호 한겨레신문사 기자는 국민소통비서관(1급 상당)이 됐다. 이들은 청와대로 가기 불과 며칠 내지 1주 전 사직했다. 완충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짧다. 현직 언론인이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직행한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보수든 진보든 일관된 잣대 마련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직 언론인들의 청와대 직행이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질문이 제기되자, “언론의 영역에서 공공성을 잘 살려온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와서 역시 공공성을 […] 잘 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서 “권언유착의 일환으로서 언론인들을 데려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저도 비판한 바 있었다”고 하면서도 “그런 권언유착이 지금 정부에서는 전혀 없다고 자부한다”고도 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과거 많은 현직 언론인들이 보수 정권의 공직에 진출하거나 보수 정당의 정치인으로 변신할 때 진보적 정치인들이나 진보 계열 언론사에서 이를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같은 높이의 잣대를 진보 정권에도 들이미는 것이 옳다고 본다. 보수정권에 현직 언론인이 참여하는 것은 권언유착이고 자신의 정부에서 현직 언론인을 기용하는 것은 “공공성의 실현”으로 본다고 한다면 공정한 잣대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인들 스스로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1월 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이날 ‘언론인의 청와대 직행, 매우 유감스럽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 ‘감시와 견제자에서 정치 행위자로 직행하는 행태는 방송 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역행하고 현역 언론인들의 진정성을 퇴색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현호 기자가 몸담던 한겨레신문은 아예 신문사 공식 입장으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한겨레신문은 공식 입장에서 “한겨레신문사는 그동안 현직 언론인의 정부 및 정치권 이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고 하면서 “이런 원칙은 한겨레신문사 소속 기자에게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여현호 전 선임기자가 사실상 현직에서 곧바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이직한 것은 한겨레신문사가 견지해온 원칙, 임직원과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 들어서 현직 언론인이 정부로 가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재작년 12월에는 국방부 출입기자였던 최현수 국민일보 기자가 국방부 대변인으로 직행했다. 작년 1월에는 한겨레 신문 대기자인 김의겸 씨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내정되었다. 김의겸 기자는 전년도에 이미 청와대행 하마평이 있었으나 그때는 가지 않았고 그러다 몇 달 뒤 한겨레를 사직했다. 그러고 나서 해가 바뀌자 청와대 대변인이 된 것이다.
현직 언론인의 갑작스런 변신이 문재인 정부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14년 2월 오전까지만 해도 한국방송 보도국 문화부장으로서 사내 회의에 참석했던 민경욱 전 한국방송 뉴스9 앵커는 오후에 청와대에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인이 된 것이다. 민경욱 씨는 지금은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이 되어 있다.
2005년도에 1990년대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앵커로 유명했던 이인용 당시 문화방송 보도국 부국장은 5월에 회사를 사직하더니 7월1일부터 삼성전자 홍보 담당 전무가 되었다.
언론의 자유에는 책임도 따라야
당사자들은 언론인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 번 언론인이었다고 해서 영원히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언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에는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우리가 고민을 깊이 하고 인식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언론인에게는 보통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표현의 자유와 질문할 권리가 주어진다. 높은 수준의 자유와 권리에는 역시 높은 수준의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이 열거하는 여러 자유 중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운용과 보호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박주민 변호사는 2012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회원 소식지 4호에 기고한 글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키운다」에서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본성과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기본권이자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그러한 자유 없이는 우리 체제의 잘못을 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마치 우리 사회의 면역 시스템이자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한다. 언론사가 사기업인데도 사회의 공기라고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의사가 수술 중 사고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살인의 의도가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사는 그 직업의 속성상 사람을 살리는 것이 자기 일이다. 그러니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해도 과실은 될지언정, 법률상 살인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언론인도 마찬가지이다. 보도내용에 일부 허위사실이 있다 해도 법원의 정정보도 명령은 나올지언정, 명백한 왜곡 보도의 고의가 확인되지 않는 한 해당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형사상 유죄판결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언론은 원래 그 존재 목적상 공익을 위해 보도한다고 보는 것이 우리 사법 체계의 언론관이다.
실제로 2008년 광우병 보도 관련 문화방송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 법원은 “일부 허위사실이 인정되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고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 우리 헌법에 비춰볼 때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 후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이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일부 보도 내용에 대해 정정보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사인 간에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근거로 공개적으로 비판을 했다면 아마 민사상 배상책임을 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현행 우리 민법을 보면 사인이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언론의 경우에는 그 기능상 공공성과 공익성이 강하다고 보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오신의 상당성의 법리라 하여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 손해배상책임에서 면제된다.
아무런 취재 없이 보도가 나가는 경우는 없다. 적절한 과정을 거쳐 일정한 취재를 하고 그에 근거하여 보도되었다면 당연히 언론사와 언론인으로서는 그 보도가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도 설사 일부 오보가 있다 해도 정정보도 책임은 있을지언정 민사상 책임에서 면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우리 법률 체계는 일반인에 비해 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표현의 자유와 질문할 권리를 인정한다. 그 이유는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사용하여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 보도에 근거한 강자에 대한 비판
언론의 제일 사명은 사실의 보도에 근거한 강자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강자가 누구인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많은 경우, 그 강자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기관이다.
언론이 우리 사회의 강자들에게 꼬치꼬치 사실이 무엇이냐고 따지고 매섭게 질문을 해대면 우리 사회의 상대적으로 힘없는 사람들, 약자들은 덕분에 두 손 두 발을 뻗고 편하게 잘 수 있게 된다. 언론이 그들을 강자의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강자가 왜 그들의 권력을 그렇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론의 기능은 비단 약자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누구라도 상황에 따라 약자의 처지로 굴러떨어져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인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강자로 둔갑해 버리게 된다면 더 이상 이런 기능의 수행을 기대할 수 없다.
언론인이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고, 정부 부처의 대변인이 되며, 특정 정당의 전사가 되거나 대기업의 홍보 담당자로 변신하는 모습을 우리 국민들이 볼 때, 국민들은 현재 언론인들이 수행하는 사실 보도라고 하는 것이 정말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그들이 과연 정말로 강자를 향해 큰 소리로 짖어 대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거칠게 물어뜯는 국민을 위한 감시견(watchdog)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언론인에게 주어진 더 높은 수준의 말할 자유와 질문할 권리는 강자를 견제하라고 우리 국민이 우리 헌법과 법률을 통해서 부여해 준 것인데, 언론인들이 어느 한순간 국민을 위한 감시견에서 강자를 위한 수호자(guardian)으로 돌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감시견 역할을 하라고 폭넓은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줬더니 그 자유와 권리를 사용하여 결국은 자신의 사익을 채운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언론인이 정부 고위직이나 대기업 홍보 담당자로 직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언론의 비판 기능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을 이해하는 위정자라면 현직 언론인을 정부 고위직이나 자신의 비서관으로 기용하는 것을 삼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무원들의 퇴직 후 취업이 제한된다. 재산등록의무가 있던 공무원이, 퇴직 전 5년간 자신이 소속되었던 부서와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업에 취직하려고 하는 경우, 3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제한을 풀기 위해서는 소속기관의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취업 승인을 신청하고 업무 관련성 여부에 대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제도는 공무원이 퇴직 후 재취업을 목적으로 현직에 있을 때 특정 업체에 특혜를 부여하거나 유착하게 될 가능성을 사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재취업한 후에 원래 소속했던 기관에 대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기존 정부 기관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공무원 집단의 윤리를 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어느 날 갑자기 정부 기관의 고위직으로 변신하는 언론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오늘까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던 사람이 내일은 갑자기 정부 기관장의 비서관이 되거나 그 기관의 대변인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언론인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정부 기관이나 권력자들과 유착한다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위 공직자로 변신한 다음에는 원래 소속돼 있던 언론사나 언론계 동료들에 대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은 언론인들의 자율적 규제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나는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 제한과 유사한 제도를 언론계에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일정 연차 이상의 경력을 가진 언론인에 한해 언론인이 퇴직 후 1년 이내에는 정부기관의 일정 직급 이상 공직자로 취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허용은 개별 사례별로 신청을 받아 언론 관련 제3의 기관에서 업무 관련성 관련 엄격한 심사를 거쳐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되, 그러한 과정을 거쳐 언론인을 고위 공무원으로 임명하는 경우에 해당 정부기관은 해당 언론인 기용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언론인이 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 임원으로 취업하는 경우에도 현행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 제한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제도는 현실적으로 이미 이루어지는 언론인의 공직 진출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되 공개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소명될 경우 일정한 통로를 열어두는 일종의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언론인에 대한 규제 제도는 언론인들 스스로 자신들간의 토론을 통해 자율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마치 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등록과 징계 여부 등을 스스로 결정하듯이 언론인들 역시 퇴직 후 공직 취임에 대해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 집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만약 언론인들이 스스로 그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언론인들의 참여하에 공개 토론을 실시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몇만 원짜리 밥과 선물도 금지하는 김영란법이 처음 도입될 때 그 대상으로 언론인이 포함되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된 이후 오히려 언론인이 향응 접대와 선물을 받고 기사를 써준다는 오해가 많이 불식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
많은 언론인에게 언론인의 공직 취임 제한이나 대기업 임원 취업 제한 제도가 현재로서는 매우 불편한 제약인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도입된다면 우리 언론인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토록 하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경우 현직 언론인이 백악관이나 각 부처의 공보 담당자로 변신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대형 언론사나 공중파 방송국의 고참 언론인이 차관급 공직자로 변신하거나 바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그에 대해서 미국 언론계 내부적으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일본의 경우에는 비교적 소장파 기자가 정계에 투신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요미우리나 아사히 신문 같은 대형 언론사의 논설위원이나 대기자급의 고참 현직 언론인이 총리실의 고위 공직자로 일거에 변신하는 사례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언론인을 탄압하는 것만이 언론 자유의 경시가 아니다. 권력으로 재력으로 언론인을 유혹하는 것 역시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현직 언론인의 청와대 고위직으로의 직행은 언론 자유에 대한 존중으로 보기 어렵다. 더욱이 보수 정당이 집권할 때 현직 언론인이 고위 공직에 진출하면 현재 여당은 이를 소리 높여 비판하곤 했다. 이제 앞으로 보수 세력이 집권하여 다시 현직 언론인을 공직에 기용하면 그때는 “공공성의 실현”이라고 칭찬해 줄 것인가?
이제 우리도 언론인의 공직 진출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일정한 규범 정립을 시도해 볼 때가 되었다. 일의 본질상 사실을 따져 묻고 강자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언론인이라는 직업은 힘들고 피곤한 직업이다. 언제든 강자의 반격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직업이기도 하다.
반대로 언론인은 진실 추구의 최선봉에 설 수 있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양식 있는 언론인들이 현직 언론인의 공직 진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더 활발한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규제 방안을 도출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원문: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