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치료를 그만두기로 했다
몇 년간 지속해온 심리상담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상담에서 힐링을 받고 집에 와도 그다음 상담을 위해 상담실을 찾았을 땐 일주일 전과 똑같이 무기력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 약도, 상담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달라지는 게 없었다. 곧 30대가 되는데, 더 많은 것들을 짊어지며 살아가야 할 30대를 이런 상태로 맞이하기는 싫었다.
막막한 마음에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자기계발서와 심리학책들을 찾아 읽어 보기 시작했다. 크게 소용은 없었다. 상담실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답도 없으니 어쩌면 이젠 정말 죽어야 하나?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책이 나를 붙잡았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미리암 프리스(Mirriam Priess)가 쓴 책,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이었다.
내가 왜 불행한지 알면서도 헛발질만 계속했던 이유
이 책이 나에게 유효했던 건 불행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그치는 다른 책들과 달리 그것을 없앨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인생의 중반을 걸어왔는데 변경이 가능하냐고? 당연하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세상과 연결된 관계가 ‘부모’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방법을 안다면 어린아이의 각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생의 노선을 바꿀 수 있다.
ㅡ미리암 프리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9쪽
나는 오랜 상담치료와 항우울제의 도움으로도 싸움을 끝낼 수 없었던 이유, 내가 미처 몰랐던 ‘패인’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고 싶었다. 이 질문에 대해 심리학자이자 심리상담사이기도 한 저자는 상당수의 내담자가 스스로 불행해질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잘못된 관계 맺음 방식을 반복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상담실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특정한 사건들과 닿아 있음을 쉽게 알아차린다고 한다. 문제는 과거의 ‘나’가 ‘어떻게’ 성인이 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없다면 자기 자신과 친밀해질 수 없으며, 그 결과 자신이 가진 능력과 삶의 의미, 자신의 내면, 자신에 대한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없게 된다. / 타고난 진짜 본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잘못된 방식 때문에 ‘나’로 여겨진 이 존재는 우리가 자신을 이것과 동일시하면 할수록 점점 우리를 통제하고 인생의 주도권을 빼앗아간다.
ㅡ미리암 프리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45쪽.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가여운 어린아이를 받아들였는데도 왜 나는 계속해서 불행할까?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내가 만들어낸 나, ‘거짓 자아’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거절당한 경험,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을 사고로 허망하게 잃은 경험 등은 사람의 마음속에 ‘잘못된 믿음’을 심는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믿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언젠가 나를 떠날 것이라는 믿음. 이렇게 이식된 잘못된 믿음은 나의 타고난 본성과 다른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든다.
유년 시절의 나를 그렇게 가여워하는 동안 거짓 자아는 빠른 속도로 내 삶의 주도권을 앗아간다. 나이를 먹고,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과 사람들이 바뀌어도 어린 시절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도록 불행의 공식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에 부모가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해주었더라면’과 같은 식의 헛된 미련에 매여 있을수록 우리는 거짓 자아가 만든 이 공식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불행하기를 자처한다.
“저는 일을 잘할 수 있는데 제 상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늘 나쁜 남자와 엮여요.”, “제 인생은 늘 원하는 것과 반대로 흘러가요.” 이런 거짓 자아를 가진 이들은 타인의 눈에서 자신을 거부하는 빛을 찾아 읽는다. 이것이 이들의 전형적인 증상이자 거짓 자아가 예언한 내용이 항상 이루어지는 이유다.
ㅡ미리암 프리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56쪽
결국 내가 진정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미 지나 버린 유년 시절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만들어낸 잘못된 자기방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이 그저 ‘어린 시절의 나’를 가여워하느라 싸워 보기도 전에 스스로 소진되고 만다. 내가 수년간 심리상담을 지속했음에도 계속해서 불행해진다고 느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거짓 자아’에 삼켜진 사람들의 슬픈 무의식, 감정 불감증
나의 일생을 괴롭혀온 거짓 자아를 죽이기 위한 전략으로서 저자는 다음의 네 단계로 싸울 것을 조언한다.
- 나의 ‘거짓 자아’가 무엇인지 분석하기.
- ‘거짓 자아’의 먹이가 된 최초의 부정적 감정이 무엇인지 탐색하기.
- 그 감정이 발생한 시점으로 돌아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
- 감정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를 포기하기.
이 네 단계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나면 과거에 나를 상처 입힌 사람들에 대한 용서까지 비로소 가능하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처음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려 할 때는 고통이 불분명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고통을 억누르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자기 보호 본능에 익숙해서 처음에는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ㅡ미리암 프리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134쪽
그런데, 여기서부터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언제나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 관계를 망치는 나의 거짓 자아를 파악하는 것까지는 쉬웠다. 그런데 그러한 불안을 지속시키는 나의 감정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불행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데, 어떤 감정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모른다니. 나를 둘러싼 감정이 공포인지, 슬픔인지, 그것도 아니면 분노인지 분별할 수 없으니 ‘고통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졌다.
다행히 바로 이어지는 저자의 말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책에서는 이러한 ‘감정 불감증’이 거짓 자아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즉, 생애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반복되어온 불행에 지친 나머지 어느 순간이 되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거세한다는 것이다.
물론, 산처럼 쌓인 감정의 빗장을 여는 순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억눌린 분노와 슬픔은 열등감이 되어 엉뚱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식으로 발현되거나, 뚜렷한 까닭 없이 만성피로와 허무함에 시달리는 번아웃(burn-out)증세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고통을 쌓아 올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높은 고통의 장벽이 우리 앞에 서게 된다. 이 장벽은 처음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계를 사실대로 인지할 수 없게 만들고, 다음에는 아무와도 교류할 수 없게 만든다
ㅡ미리암 프리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139쪽
끝없이 반복되던 ‘어제’에서 ‘내일’로 건너가기 위해
끝없이 나를 외롭게 만들던 것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소녀였음을 발견한 후 나는 도대체 ‘어떻게’ 부모님을 용서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해 왔다. 아무래도 어릴 적 부모님은 자주 다퉜고,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가져왔다는 추측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용서라는 험난한 종착역에 이르기 위해서 내게 무엇이 필요할까? 당장 해야 할 것으로, 슬픈 것을 슬프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를 고치는 일이 필요했다. 나를 보호한답시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떨어뜨려 놓는 가짜 자아의 속삭임을 거스르는 연습 말이다.
만약, 자꾸만 불행을 반복하려는 거짓 자아의 관성을 극복하면, 삶은 정말로 달라질 수 있을까? 저자는 빌 머레이(Bill Murray)주연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1993)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결과물을 제시한다. 주인공 ‘필’은 어느 날 갑자기 깨지 않는 꿈처럼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되고, ‘내일’이 오지 않는 사실에 절망한 주인공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한다.
움직이지 않던 그의 시계를 ‘내일’로 움직이게 만든 것은 마법도, 억만금의 돈도 아닌 그 자신이었다. ‘내일’이 오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나의 ‘오늘’을 이루는 사람들과 일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하자 기적처럼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오히려 지금,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는’ 태도. 나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저자의 말은 어쩌면 이걸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변화는 항상 자기 자신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상대와 대화할 수 있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강하고 건강한 우리로 살게 되는 순서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의미 있는 인생의 성취는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시작된다.
ㅡ미리암 프리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304쪽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 자꾸만 어제를 바라보는 미련스러움, 오늘에 충실하지 못했으면서 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는 어리석음을 벗어 던지고 ‘지금’, ‘오늘’ 내가 무엇을 느끼며 살아있는지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 말이다.
책을 덮자마자 다이어리를 샀다. 오랜 시간 멈췄던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물론 알고 있다. 어쩌면 이번에도 실패할지 모른다는 걸. 하지만 아직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으니까. 잘못된 게 아니라 서툴러서 실패해왔다는 걸 알았으니까. 한 번만 더 나를 믿어보고 싶다. 정말 이번만큼은, 멈춰 있던 나의 시계도 ‘내일’로 흐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