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재작년에 iOS7을 발표하였다. 가장 큰 변화는 스큐어모피즘의 탈피다.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란, 원래 도구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는 디자인 방법이다. 기계에 생소한 사람들에게 스큐어모픽 디자인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사용 설명서다. 별다른 설명서가 없이도 책장을 넘기듯, 볼륨스위치를 조절하듯, 드럼을 치듯, 메모장에 필기하듯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스큐어모피즘의 신봉자였고, iOS7을 디자인한 조나단 아이브는 그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사실 나는 스큐어모피즘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스큐어모피즘은 어디까지나 사용 편의성이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지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신디사이저 앱에서 볼륨 막대를 올린다고 해서 기기 내부에서 어떤 ‘조정간’이 실제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삭제한 노트가 휴지통으로 빨려들어간다고 해서 메모리의 전자가 어디론가 빨려나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과도하게 사용된 스큐어모피즘은 오히려 디자인을 해치고 사용성을 떨어뜨린다.
스큐어모피즘과 지식의 부재
그런데 스큐어모피즘을 근본적 원리로 삼은 분야가 있다. 바로 사이비 의학의 영역이다. 사이비 의학은 인간이 빠지기 쉬운 직관의 함정을 이용하여 자라나는데, 그 직관은 머리속에서 가장 편리한 사고방식을 따라 형성된다. 바로 스큐어모피즘이다.
예를 들어, 수지침은 ‘인간의 몸에는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컨트롤 패널이 있고, 그 모양은 각 기관의 위치를 따라 배치되어 있다’ 라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1970년대의 인간이 현대 스마트폰의 볼륨조절 막대를 보고 화면 어딘가에 신디사이저가 있다고 믿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인식이다.
이 믿음에는 분파도 있다. 수지침은 손바닥이, 이침(耳針)은 귓바퀴가 그 위치라는 주장을 펼친다. 어느 쪽이 이단인지는 모르겠다. 컨트롤 패널이 두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침을 약간 더 발전한 이론이라고 평가한다. 이침은 귀의 모양이 태아가 거꾸로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탄생한 믿음인데, 적어도 발생학의 개념이 조금이나마 들어갔기 때문이다(농담이다).
먼저 수지침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100%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시작한다. 일종의 실험과학인 의학에서 ‘무엇이 없다’고 증명하는 것은 원리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의사들은 수지침이 사이비라는 것을 직관으로 알고 있다. 천재 물리학자들은 직관으로 진리를 떠올린 후에 수학으로 천천히 증명한다고 한다. 그 통찰력의 근원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도 자신의 기묘한 공식들은 나마기리 여신이 꿈에서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니까.
즉, 조사하다보니 근거가 나와서 어떤 주장을 펼치게 된 것이 아니라, 먼저 결론을 내린 후 증명 도구를 찾는 셈이다. 놀랍게도 물리학자들은 종종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뒤집을 이론을 만들어내었다.
그렇지만 실험적 증명이 나올 때까지 자신의 증명을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론이 틀렸다고 해서 죽는 사람은 없다. 날리는 것은 기껏해야 막대한 실험 비용 정도.
사이비 의학을 주장하는 무리들은 자신들도 직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만의 의학을 일단 창시한 후, 기존의학을 짜깁기해서 합리화를 시작한다. 문제는 그들은 물리학자처럼 천재도 아니고, 의사처럼 최소한의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아 직관부터 엉터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증명되지 않은 철학을 인간에게 함부로 적용해서 피해를 입힌다.
말기 유방암 환부에 부항을 뜨거나 불에 달군 너트로 지지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고, 사이비 의술의 치료를 받느라 제대로 된 치료를 놓치도록 ‘유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심적인 의사들은 이 점을 참고 넘기지 못하지만, 밥그릇 싸움이나 기득권의 횡포라는 말로 매도당하는 실정이다.
수지침은 가장 유치한 형태의 스큐어모피즘
이제 수지침 이론의 취약점을 따져보겠다. 손에 장기와 연결된 스위치가 정말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조 실험이 필요하다(아무리 사이비 의학이라도 의사들이 막무가내로 거짓이라고 주장하는게 아니다. 찾아보면 수지침에 대한 논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혈자리 존재 여부에 대해서 이 글에서 따지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저 배치도는 의학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넌센스라는 측면에서, 이론 자체의 신뢰도를 낮춘다.
1) 태아는 일종의 대롱이다. 그 중심에 위치한 소화기관도 하나의 크고 긴 관이다. 수 미터 가량의 소화기관이 처음부터 그렇게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뱃속에 생기지는 않는다. 소장은 발생 도중 배꼽 바깥으로 꺼내져 ‘차곡차곡 접힌 후’ 뱃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뱃속에서 단순히 구겨져 있다고 손바닥상에서도 구겨져 있어야 한다는건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굳이 혈자리에서조차 대장이 소장을 빙 두르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 몸은 뱃속에서 장이 어떻게 구겨져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간접적인 증거로, 내장의 통증은 위치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2) 췌장은 원래 따로 떨어진 두 조각이다. 그 중 머리부분(pancreatic head)은 발생 초기에 반대방향으로 따로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회전해서 합쳐진다. 그렇다면 췌장 머리를 자극하는 수지침 혈자리는 담관에 붙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긴, 수지침 창시자는 췌장이 두개로 나뉘어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3) 가장 복잡한 구조인 사람의 머리 부분이 발바닥과 크기가 같다. 단순히 크기 비례로 면적을 산정했다. 팔 한 짝이 뱃속의 모든 장기들과 차지하는 면적이 같을 만큼 중요한가? 우리 대뇌에서도 각 부위를 담당하는 부위는 단순히 면적에 비례하는것이 아니라 복잡도와 정교함에 비례한다. 손과 입술의 감각을 담당하는 부분은 팔다리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
4) 왜 폐는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 있으면서 신장은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가? 사실 사람의 손바닥은 부위별로 지배하는 신경이 다르다(이것도 몰랐을듯). 왼쪽 신장은 왜 경추 7번 신경에, 오른쪽 신장은 경추 8번신경에 연결되어 있는가? 반대쪽 손에서는 대칭일까 그대로일까? 차라리 어느 한쪽에 두개의 신장이 몰려있는 것이 합리적인 ‘수지침 혈 배치도’ 아닐까?
발생학을 배운지가 벌써 5년이 되어가서 내 기억만으로는 더 이상 예를 떠올리기가 힘들지만, 이 정도 예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를 들춰보면 반박할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
수지침은 사이비 의학 사기꾼들이 인체의 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으면서 해부도를 보고 억지로 끼워맞춘것에 불과하다. 그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100%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 수지침은 ‘틀림직하다’. 물론 다음과 같은 역공이 들어올 수도 있다.
수지침 혈자리가 발생학적 구조를 따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수지침 이론에 따르면 태아는 모체의 일부다. 혈자리는 모체와 독립되며 독자적인 기의 순환을 가지는 출산 후에 생기므로 성인의 실제 장기 위치에 따른다.
내가 생각해낸 가상의 반문이지만 여기서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턱 막힌다. 물론 저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증거가 없고 반박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희망적인 것은 아까보다는 전제조건이 더 붙었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증거를 많이 찾아낼수록, 사이비 측에서는 증명할 수 없는 주장들이 많이 붙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반인들도 위화감을 느낄 수준까지 조악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주자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수지침은 상대적으로 논파하기 쉬운 사이비 의학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유치한 대체의학조차 반박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대놓고 손바닥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 좀 더 교묘한 대체의학들을 믿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사이비 의학을 척결하는 것은 이렇게 힘든 싸움이다.
사이비 측에서는 주장하는 내용이 형이상학적일수록, 정통의학에서 검증하는 데는 한참이 걸리기 때문이다. 미네랄이 들어있는 소금이 만병통치약이라든지, 뜸이 최고라든지, 효소가 최고라든지 하는 주장이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의사들은 이런 수많은 사이비 의학 변종들을 일일이 따져보지도 않고도 사기임을 알아차리는 ‘휴리스틱 엔진’을 갖고 있다. 이것을 ‘Medical mind’라고 부른다. 하지만 의학과 관련없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고등학교 수준의 생물학지식(공통과학,생물I,생물II)으로는 저런 바이러스들을 일일이 걸러낼 수가 없다.
일일이 개별 사례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한다. 게다가 인구의 반이 문과이다! 그렇지만 반박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인 의사들은 사람들을 사이비 의학의 함정에서 포기해서는 안 될 의무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대체의학의 신봉자였다. 많은 의사들은 잡스가 대체의학에 대한 고집을 버렸더라면 조금이나마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을 거라며 안타까워한다. 비약이지만, 잡스는 스큐어모피즘에 대한 집착을 자신의 몸에도 적용하려고 한 듯하다!
정말 재미없는 화학반응을 빽빽하게 들이미는 ‘플랫’한 현대의학은 그의 미적 감각에 반하는 것이었을 터. 지금까지 사이비 의학에 대항하는 도구로 의학적 설명이 실패한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플랫한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던 점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컨트롤 패널’과 같은 직관적이고 아름다우며 편한 설명을 원한다. 불행하게도 인체가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때로는 적절한 스큐어모피즘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멋진 비유, 보다 와닿는 설명, 시청각의 활용, 접하기 쉬운 매체, 거만하지 않은 말투. 의사들이 대중에게 설명할때 습관적으로 영어나 의학용어를 남발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의사의 설명은 너무 무색무취한 데다가, 안그래도 ‘지저분하고 복잡한’ 학문을 더 지저분하게 설명한다.
사실 궁극적인 컨트롤 패널은 존재한다. 바로 유전자다. 유전자는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인류는 20세기에 들어서야 human OS의 소스코드인 유전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21세기 초반에도 코드를 단순히 읽는 수준일 뿐이고, 조작기술은 거의 걸음마 수준에 있다.
생명과학자들이 모든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길인 탈옥(jailbreak)을 시도하고 있지만, 창조주의 보안이 워낙 철저해서 hOS의 루트 권한은 아직까지 획득하지 못했다.
애플 사과마크는 아담이 베어물은 선악과라는 설이 있다. 애플은 기기나 iOS에 손대는 것을 금지한다. 심지어 아이폰을 쉽게 열지 못하도록 나사를 별모양으로 바꿀 정도다. 보기에 아름답지만 손댈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선악과인 셈이다. 인체도 마찬가지일까.
그리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종교계에서는 창조주가 소스코드를 공식적으로 공개한 세상을 ‘천국’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천국은 기약이 없으니 그때까지는 믿을 만한 탈옥 툴을 참고 기다려보자. 우리의 Dr.Cydia(탈옥 앱스토어 Cydia는 사과를 먹는 벌레의 학명에서 이름을 따옴)들이 어제보다 발전한 탈옥툴을 내놓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공식 버전이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기 힘들다고 가짜 탈옥툴에 휘둘리지 않기를. 사이비 탈옥툴은 실제로 작동하지도 않는 눈속임일뿐더러,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유료 결제까지 요구한다.
원문 : 무권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