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는 ‘최저임금 만 원의 조기달성’을 공약했습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나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도 2022년까지 만 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죠. 여론 또한 우호적이었습니다. 2017년 4월 4일 발표되었던 문화일보·서울대 폴랩 공동 유권자 정책 성향 조사에 따르면, 무려 85.1%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올리는 데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1년 만에 표류합니다. 급격한 인상이 영세 자영업과 중소기업에 타격을 입혔다는 주장이 득세했고, 실제로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통째로 의문부호가 찍히게 됩니다. 여론도 반전했습니다. 경향신문이 2018년 10월 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20.3%에 불과했습니다. 62.7%는 경제 상황에 맞춰 인상 폭을 조정해야 한다고 응답했죠.
모두 거짓말을 한다.
이 대사에서 옛날 사람은 아마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전설적인 진단의학과 의사 그레고리 하우스는 환자가 모두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이 의사 앞에서도 자신의 행동, 병력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죠. 이러면 당연히 오진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우스는 진단을 위해 환자의 집에 무단 침입하는(…) 등의 행동으로 증거를 수집하곤 합니다. 이 문장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데이터 과학자인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베스트셀러 제목이기도 합니다. 책 소개 문구를 잠시 읽어볼까요?
충격적이었던 지난 미국 대선 결과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흑인과 여러 소수집단을 모욕하고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지지층의 부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수많은 전문가와 여론조사기관은 물론, 예측의 신이라 불리던 네이트 실버조차 결과에 당황했다. 그 많던 트럼프 지지자들은 왜 선거 직전까지 드러나지 않았을까? 애초에 설문조사에 ‘실제로’ 누구에게 투표할지 솔직하게 답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닐까?
전 세계가 주목하는 데이터 과학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트럼프 지지층이 평소 심각한 흑인 비하 단어인 ‘깜둥이(nigger)’를 검색하던 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트럼프 지지율이 높은 지역에서 ‘깜둥이’ 검색이 가장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이라고 해서 설문조사원이나 친구에게 자신이 흑인을 혐오하며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에 흑인을 놀릴 만한 농담거리를 찾아볼 뿐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만 원까지 인상한다.” 이 말에 ‘반대한다’라고 말할 사람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힘들게 일하며 박봉에 시달리는 취약계층들의 월급을 올려준다는데 여기 반대한다는 건 너무…몰인정하죠. 하지만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만 원까지 인상한다”라는 말은 사실 훨씬 많은 디테일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수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실험을 국가라는 엄청난 규모 단위로 벌여야 하며, 이것이 경제에 미칠 영향은 경제학계에서도 갑론을박이 거셉니다. 영세자영업자와 한계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매우 높아질 것이며, 이것이 경제에 큰 충격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기업과 자영업자는 그 과정에서 퇴출당할 것입니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반대 여론도 거세질 것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저소득 노동자의 실업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 임금체계가 매우 기형적이라, 월 4-5천 이상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기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만 원까지 인상한다”라는 말에는 이 많은 디테일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만 원 공약에 찬성했다가 일 년 만에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이 일부러 거짓말을 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을 깊이 고민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저런 디테일을 깊이 고민했다 할지라도,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어쩌면 그 또한 거짓말 일지도요. 적당한 선의에 기반한, 적당히 선량한 대답. 사실 딱히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사회적 평판을 신경 쓴 대답. 그래서 그 정책이 나의 이익을 침해할 때, 혹 별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을 때, 그 선의는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죠. 애당초 선의는 무척이나 얕은 것이었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애당초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여론조사가 어떤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저는 무척이나 조심스럽습니다. 특히나 특정한 정책,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는요. 이런 여론조사에선, 누구나 거짓말을 하니까. 사실상 그런 여론조사 자체가, 거짓말을 조장하고 유도하기에 너무 잘 짜인 판 같은 것이니까요. 위선과 위악이 넘실대는 판.
원문: 임예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