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업계는 흔히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재밌는 사실은 치킨게임 하고 있다고 한 지 벌써 몇 년은 흘렀다. 그러나 아직 파산한 이커머스 기업은 없으며, 각자 경쟁력을 갖고 계속해서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이 적자 상태이니 실적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치킨게임에서 다들 살아남아 있다.
치킨게임이 끝나려면 한쪽이 살고 다른 한쪽이 죽어 승자독식 구조로 가야 하는데, 그런 구조가 끝나지 않고 계속 경쟁하고 있다. 쿠폰을 뿌리거나 가격을 내리면서 출혈경쟁을 벌이자 다 같이 적자를 보고, 경쟁을 줄이자 실적이 개선되는 등 어떻게 보면 이커머스 기업들은 양쪽에서 마주 오는 차에 탄 치킨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배에 타고 파도를 헤쳐나가는 모습인 것 같다.
치킨은 사진의 닭이 아니라 사실 겁쟁이(chicken)를 의미한다. 서로 마주 보며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한쪽이 옆으로 피하면 패하는 게임. 누가 죽거나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싸운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후반 반도체 치킨게임이 있다.
당시 반도체 회사에 다니며 반도체 치킨게임 시기를 온몸으로 맞아본 경험으로, 사실 지금 이커머스 시장은 누구 하나 쓰러져야 끝나는 치킨게임이 아니라 경쟁을 통한 동반 성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반도체 시장은 성장세에 있었지만, 메모리 가격이 내려가 수익성을 맞추기 힘들어 버티기가 중요한 시기였다. 이미 한정된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하던 시기였다. 당시엔 스마트폰, 태블릿도 거의 없었다.
지금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세는 당시 반도체 성장보다 훨씬 폭발적이며, 앞으로도 일정 수준까지 오프라인 영역을 잠식하기 전까지는 계속 성장할 여지가 많은 시장이다. 참고로 일정 수준인 이유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커머스 기업 중 흑자 기업은 이베이(지마켓, 옥션)밖에 없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실적은 거의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 11번가나 쿠팡, 티몬, 위메프 등 대부분 적자지만 흑자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어제 최근 화제가 된 모 이커머스 기업의 임직원분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해보니 언론에서 다루는 것처럼 정작 이커머스 업계에선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높으신 분들은 쟤네가 망해야 우리가 산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서로 때론 응원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할 시기다.
어떻게 보면 현재 이커머스 기업들은 신세계나 롯데와 같은 오프라인 유통사의 온라인 진출 공세를 막아낼 필요도 있고, 네이버와 같은 토종 IT기업의 이커머스 진출, 혹시 모를 아마존의 공습까지 신경 써야 한다. 이커머스 업계에 파산과 인수 합병이 일어나는 상황이 다가온다고 해서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치킨게임이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굳이 치킨게임이 아니더라도 산업에서 회사가 망하고 새로 생겨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새로운 이커머스 회사가 등장해 국내 1, 2위를 넘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