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용돈이 5만원도 안 되는데 그동안 ‘감히’ 1만8000원짜리 통닭을 사먹었겠어요. 5000원짜리 치킨이 나왔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했는데… 결국 저쪽 서민(치킨 점주) 살리겠다고, 나 같은 서민(일반 소비자)을 희생시킨 거 아닌가요?”
통큰치킨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롯데마트에서 고작 5천원에 치킨을 큰 통 가득 담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프랜차이즈가 점령하고 연예인 광고를 남발하느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치킨값에 강한 불만을 느끼던 참이었다.
하지만 전국의 수많은 치킨집들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치킨가격에 거품이 너무 끼어 있었다는 사회적 울분이 워낙 컸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시되었다. 치킨집 사장 몇 만명의 이익보다는 치킨을 싸게 먹고 싶은 나머지 5천만명의 공공선이 더 중요하다는게 사회 분위기고, 또 다수가 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통큰치킨은 공정한 시장경쟁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고 퇴출되고 말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면 쌀수록 좋은 건데 이 결정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동네 치킨집 다 죽게 생겼다, 이것들아!
통큰치킨은 역마진이 의심되는 미끼상품이다. 롯데마트는 이윤이 남긴 남는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역마진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포인트는 마트측에서는 통큰치킨 자체의 매출로 돈을 벌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다. 통큰치킨은 그 치킨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겸사겸사 쇼핑을 하도록 유도하는 전단지였다.
대형마트는 물건을 파는 것 말고도 돈을 벌 방법이 많다. 찜질방, 헬스장, 푸드코트, 골프연습장, 동물병원, 카센터, 주유소, 세차장까지. 마트 입장에서는 통큰치킨은 정말 좋은 전략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심지어 이윤이 남는다고 주장하므로) 손해는 하나도 보지 않는 상태에서 매출이 엄청나게 증가하기 때문이다.게다가 이 전략으로 동네 치킨집이 문을 닫을수록 치킨을 먹으러 오는 고객들이 더 늘어나는 선순환의 구조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동네 치킨집 입장에서는 이 덤핑행위는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이자 생존권에도 직접적인 위협이다. 동네 치킨집은 치킨을 파는 것 말고는 수입을 창출할 방법이 거의 없다. 그나마 롯데마트 측에서 변명을 해보자면, 통큰치킨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고 배달을 하지 않으므로 동네치킨집에도 최소한의 숨통은 틔여 있었던 셈이다.
의료영리화, 통큰의료를 가져다 줄 것
이 상황을 의료에 적용해보자. 의료는 아직까지는 대체로 규모의 크기가 차이날지언정 수입의 구조가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았다. 대형마트가 동네슈퍼보다 다루는 품목은 많지만 근본적인 수익은 물건을 팔아서 얻는 마진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규제의 틈새에서 ‘주차장 장사’를 한다는 비판은 있었다.
그런데 의료 영리화는 판매가를 원가의 70%로 규제하는 대신, 대형마트에 그동안 금지되었던 골프연습장, 헬스장, 주차장, 푸드코트 등을 전격적으로 허가해줄테니 그걸로 돈을 벌라는 식이다.
대형마트들은 당연히 찬성을 한다. 계산기 두드려보니 그게 더 이득이고, 동네 슈퍼마켓이 망하는 만큼 고객 자체가 더 많아지는 선순환까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서도 소비자물가를 잡았다는 생색을 낼 수 있으니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다.
원격의료, 통큰치킨이 배달까지 하는 꼴
그러나 동네 슈퍼마켓은 그 단어(super)의 본래 뜻과는 궁색하게 그런 식으로 부대사업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복싱 경기에서 체급제한을 두는 것은, 비록 덩치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기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격의료는 통큰치킨이 배달까지 해주는 격이다! 인건비와 유류비가 드는 배달비와 다르게, 대형병원에서의 원격의료 시스템은 초기 구축비용이 크게 들어서 그렇지 유지비용은 규모의 경제를 적용하면 공짜나 다름없다. 동네병원은 정말 죽을 맛이다.
이것은 원격의료와 의료영리화가 가져오는 예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이자, 여러가지 변화 중 아주 일부일 뿐이다. 이것만이 의사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아니라는 점은 아니다. 또한, 통큰치킨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원격의료와 동반된 의료 영리화가 정당한 수익추구 모델이 아니라고 설득할 자신은 없다.
통큰치킨, 통큰의료, 과연 정당하고 소비자의 이익인가?
하지만 통큰치킨이 정말 바람직한 상품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나 또한 프랜차이즈와 연예인 광고, 프리미엄 웰빙 이미지로 가격상승을 주도해온 치킨시장에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통큰치킨은 그것과 별개로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큰치킨은 폭리(인지도 이견이 있지만)를 취해온 치킨집 사장에 대한 정의의 심판이 아니라, 또 다른 부조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가 의료영리화를 반대하는 솔직한 심정은, 내가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생존권을 생각하고 지지한 만큼 다른 사람도 나의 생존권에 대해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순진한 마음도 어느정도는 섞여 있다.
그런데 동네 병원이 망하는 문제는 의사들만의 문제일까? 의사만이 여론에게 일방적으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호소해야만 하는 약자인가? 그렇지 않다. 통큰치킨을 계속 판다면 마트가 문을 닫은 후 치킨을 시켜먹을 데가 없어진다. 시간이 많을때야 직접 마트에서 줄을 서서 통큰치킨을 사먹어 돈을 아낄수 있겠지만, 막상 직접 가서 치맥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치킨이 아니라 건강이라면?
대형마트의 파급력은 기껏해야 반경 10킬로미터 정도일것이다. 하지만 원격의료의 배달범위는 무한이다. 원격의료는 서울의 대형병원이 해남 땅끝마을에 있는 유일한 의원을 문닫게 할 수 있다. 숨 넘어가는 환자가 생겼을때, 기관삽관을 할 수 있는 땅끝마을의 유일한 의사를 이긴 서울의 명의는 이번에는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다.
화면에서 나올 수 있는 사다코가 부러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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