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패션에 관심 있는 베트남인 모두가 알고 있는 쇼핑몰 ‘도시인’을 만들다
리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뭐로 먹고 살고 있습니까?
김상혁(도시인 대표): 베트남에서 패션 e-커머스 ‘도시인’ 대표 김상혁입니다. 로컬 스트리트 웨어, 디자이너 브랜드 입점 몰인데, 한국에는 많이 있지만, 베트남에는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에요.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의 ‘무신사’를 베트남에서 하고 있습니다.
리: 무신사는 거의 몇천억 원 규모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여기도 그런가요?
김상혁: 아직 새 발의 피죠. 이제 시작한 지 18개월 정도 된 신생 스타트업입니다. 무신사 초창기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리: 무신사 초창기면 창업 멤버 몇 명이 열심히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사진 찍고, 매거진 만들고 이런 서비스 말하는 건가요?
김상혁: 비슷해요. 베트남 로컬 패션 브랜드 소식과 글로벌 패션 뉴스를 페이스북과 웹사이트로 전달해 주고, 분기별로 오프라인 매거진도 발매하고 있어요. 이걸 기반으로 베트남 로컬 브랜드들이 저희 쇼핑몰에 입점해서 팔고 있고요.
리: 거기에다 쇼핑몰까지… 무신사의 스텝을 그대로 따라가는군요.
김상혁: 네. 웹진과 브랜드 몰이 병합된 온라인 플랫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리: 장사는 좀 되나요?
김상혁: 매출액은 최근 1년간 거의 10배 성장했어요. 그보다 더 고무적인 건 이제 스트리트웨어에 관심이 있는 베트남 사람 중 도시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베트남의 IT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내년도 올해 이상의 성장이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베트남 사람들이 e커머스 자체를 처음 쓰다 보니, 10% 쿠폰, 특별 포인트 적립, 이런 이벤트를 해도 쿠폰과 포인트 자체를 낯설어했어요. 그런데 이제 쿠폰 발행하면 10명 중 9명이 사용해요. 그만큼 베트남 전체 e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또 정착하고 있어요.
리: 지금 이제 베트남에서는 어쨌건 2년 정도 일을 했는데, 해보니까 어때요? 진출할 만하다? 진출하기 힘들다?
김상혁: 저도 아직 조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진출은 쉽지만, 살아남기 어렵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야 운 좋게 존버해서 살아남았지만…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게, 시장성이 좋아서 뭘 하든 성공할 거란 거예요. 한국은 인프라가 깔린 상태에서 기술과 자본이 들어오면 서비스가 확 크죠. 하지만 베트남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프라와 정부 정책이 이제 막 구축되는 중이에요. 그래서 베트남에서 스타트업이나 서비스업을 하시려는 분들은 길게 보고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리: 베트남 직원들은 어때요? 갈등 좀 없나요?
김상혁: 교육열이 높아서 똑똑해요. 영어도 한국인들 못지않게 잘하고요. 그런데도 인건비가 엄청 싸요. 우리 회사에서 좋은 4년제 나온 신입이 수습 떼면 월 35만 원 정도 주는데 이게 많이 주는 편이에요. 한국으로 따지면 쿠팡과 삼성 다니다 온 친구도 100만 원 정도고요.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많아서, 실리콘밸리에서 베트남 SI 회사에 아웃소싱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베트남에서만 3번 사업을 말아먹으며 배운 것
리: 어쩌다가 베트남으로 갈 생각을 했어요?
김상혁: 2006년에 친구들하고 베트남 여행을 갔어요. 사람들도 친절하고 이미지가 너무 좋았죠. 베트남 연유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커피 사업을 벌이려 했는데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망했어요. 지금이야 한국에 커피 프랜차이즈들도 많이 들어오며 개인 카페도 많이 정착했지만, 사실 커피가 꽤 섬세하잖아요. 베트남에서 들여오다 보니 품질 관리가 힘들었어요. 만들 때마다 맛도 다르고…
리: 그래서 어떻게…
김상혁: 그때는 너무 어렸으니 그냥 취업했죠. 그래도 워낙 좋은 이미지라서 친구들과 자주 놀러 갔어요. 그 친구들은 아예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2012년에 베트남을 갔죠. 지금은 잘나가는 베트남 최대의 MCN 회사가 됐네요. 크리에이토리라고, 인플루언서 메지니먼트 회사에요.
리: ‘친한 친구들은 다 잘 나가는데 왜 나만 X밥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겠군요.
김상혁: 동기부여가 많이 됐죠. 저는 그때 일개 회사 사원이었고, 옆에 대리님, 과장님을 보면서 10년 후 제 모습을 생각하니까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MBA 마지막 논문 학기 때, 무턱대고 베트남으로 가서 시장조사 하며 논문을 썼죠.
리: 그래서 또 베트남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김상혁: 처음에 오프라인 편집숍을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 사업을 시도해 봤죠. 베트남은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니잖아요? 그러면서 아침에 반미차 앞에서 반미를 사 먹죠. 그걸 보고 간단하게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토스트나 떠먹는 피자를 팔아볼까 생각했어요. 근데 단가가 문제인 거예요. 재료 소싱에 서툴러서 피자 같은 경우는 아무리 싸게 만들어서 팔아도 2000원더라고요, 500~ 700원인 반미 먹던 베트남 사람들이 이걸 사 먹겠어요?
리: 아니, 본인이 저질러놓고 저한테 그렇게 물으면 어쩌라고…
김상혁: 그때 정말 작은 커피숍 하나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죠. 망하고 나니, 초반부터 비용이 발생되는 오프라인 사업보다는 초기 비용이 안 드는 온라인 콘텐츠 사업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여성을 타깃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콘텐츠를 올렸는데,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남자인 제가 여성 타깃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 또 금방 접게 됐죠.
리: 어찌 베트남에서만 3번 말아먹었군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김상혁: 그래서 남성 스트리트 스타일이라는 명확한 주제를 다루기로 했죠. 그때 무신사가 한국에서 엄청 뜨고 있었는데, 이걸 베트남에 접목해보자 했어요. 베트남에 스트리트 브랜드는 엄청 많은데 그걸 골라주는 플랫폼도, 제대로 된 커뮤니티도 없었거든요.
한국의 패션 콘텐츠 스타일, 베트남에서도 통해서 수십만 팬을 확보
리: 새로운 시작은 어땠나요?
김상혁: 웹사이트는 만들 줄 모르고 돈도 별로 없으니까, 돈 안 드는 페이스북으로 매거진을 만들었죠. 그때 한국에 유행하던 게 카드 뉴스였어요. 그걸로 정보를 주니까 바이럴이 엄청 일어나는 거예요. 신나서 이번에는 딩고를 흉내 내 영상을 올려보니, 또 30만 뷰 이상씩 나오는 바이럴 비디오가 되고… 그러면서 베트남에 ‘도시인’이라는 곳에서 나온 콘텐츠가 재밌고 정보도 알차다, 이렇게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가장 비싼 신발 탑 7, 한국 스타일을 좀 흉내내자 35만 회 재생이 터졌다
김상혁: 베트남 인구가 1억 가까이 되고, 평균연령이 이제 갓 30세를 넘어섰어요. 젊은 층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카카오톡 아이디가 있듯이 베트남은 모든 사람이 페이스북을 써요. 페이스북만으로 젊은 층이 패션 정보를 충분히 받아볼 수 있던 거죠.
리: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어떻게 커머스까지…
김상혁: 한 달도 안 돼서 페이스북 팬이 10만 명을 넘어섰어요. 대다수가 젊은 층이었죠. 근데 계속 패션 정보를 올리다 보니 자꾸 메시지가 오는 거예요. 이 옷 어디 옷이냐, 어디서 살 수 있냐… 그래서 정보를 알려주다 보니, 알려달라는 메시지가 계속 늘어났어요. 이럴 거면 아예 우리가 직접 옷을 팔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 그때 플랫폼 사이트를 만든 건가요?
김상혁: 최소 2,000만 원은 드는데 돈이 없었어요. 지인 통해 만난 분께 “저 돈 없어요. 300만 원밖에 없으니 맞춰서 해주세요” 했더니, 젊은 놈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최소 기능만 딱 맞춰 만들어주겠다 하더라고요. 쇼핑몰에 들어갈 주요 기능은 없었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엑셀로 정리하며 팔 수 있었어요.
리: 오픈하니 반응이 좀 어땠나요?
김상혁: 막상 오픈하고 나니, 베트남 로컬 브랜드에서 가져오는 제품 사진들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한국 쇼핑몰은 보기만 해도 사고 싶어지잖아요?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그냥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는 거예요. 스트리트 웨어 핵심은 간지인데 간지는커녕 더러워 보이는 거죠.
리: 어떻게 해결했나요?
김상혁: 그래서 아예 브랜드 옷을 싹 다 가져와서 찍고 업로드하고 다 해줬어요. 알고 보니 베트남은 모바일부터 인터넷을 시작한 분들이 많아서 데스크톱의 복잡한 CMS를 굉장히 힘들어했더라고요.
4번째 좌절: 아무도 옷을 사지 않은 이유
리: 대망의 오픈! 좀 팔리던가요?
김상혁: 오픈하고 3일 동안 하나도 못 팔았어요. 불쌍했던지 제 친구가 하나 사주더라고요. 그때 저희가 페이스북 팔로워가 한 20만 명 있었거든요. 그런데 구매전환에 참패한 거죠. 알려달라고 묻고 살 것처럼 하더니, 정작 우리가 파니까 안 사 가는 거예요. 1달 동안 4~5개 팔았나? 정말 멘붕이었죠.
리: 입점 브랜드들한테도 민망했을 것 같은데요.
김상혁: 엄청 민망했죠. 무신사 보여주면서 이렇게 할 거야 그랬는데… 그래서 그 친구들이 저희를 약간 “얘네 뭐야? 있는 척은 다 하더니…”, 이렇게 보는 느낌?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와서 뒤통수도 종종 맞는데, 반대 경우도 있어서 저를 사짜처럼 본 베트남 분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리: 사업모델만 보면 돈 많이 벌 것 같은데… 왜 돈을 못 벌었죠?
김상혁: 처음에 큰 오해를 했던 게, 베트남도 한국처럼 쇼핑몰을 열면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구매를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진출한 2년 전만 해도, 저희 타깃인 10-20대는 인터넷에서 직접 쇼핑을 하기보다 친구들과 매장에 직접 가서 입어보고 현장 구매를 하는 분이 대부분이어서, 트래픽은 모아도 구매로 전환이 되지 않았어요.
리: 베트남도 스마트폰은 다 쓰는데 왜 인터넷에서 구매를 안 해요?
김상혁: 저희 타깃 구매층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어서 인터넷으로 무료 콘텐츠만 소비했지, 돈 쓰고 사는 건 아직 경험해본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베트남 인구 70%가 현금만 써요. 신용카드 문화가 정착이 되지 않은 상태죠. 그래서 인터넷에서 옷을 사도, 물건이 도착하면 배송기사에게 현금으로 돈을 지불해요. 웹사이트에서 결제를 하기보다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현찰로 구매를 하는 게 보통이었죠.
리: 그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김상혁: 트래픽은 늘어났지만 판매는 안됐죠. 그래도 팔로워는 꾸준히 늘어났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레 입점 브랜드도 같이 늘어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다 비용이었어요. 돈은 안 들어오는데, 우리가 찍어줘야 하는 사진은 늘어나고… 그래서 접을까 말까 하던 차에, 한 로컬 브랜드가 제안을 하더라고요. 우리에게 돈을 줄 테니 룩 북을 만들어달라고.
리: 오… 얼마를 받은 건가요?
김상혁: 콘텐츠 하나당 베트남 돈으로 300만 동, 한국 돈으로 겨우 15만 원 정도였어요. 그래도 회사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졌어요. ‘이제 우리 사이트가 돈을 내고 사용할 가치가 생겼구나’, ‘고객이 드디어 우리를 인정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룩 북이랑 영상을 잘 만들어주니, 다른 브랜드에서도 PR 의뢰를 했어요. 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덕택에 로컬 브랜드와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됐죠.
작은 변화들이 준 자신감: 계속해서 등장하는 긍정적 신호
리: 그래도 결국 옷이 팔려야 하는데… 이후 장사는 좀 나아졌나요?
김상혁: 3개월 차에도 고작 10개 정도 팔렸어요. 옷이 가장 잘 팔리는 12월은 왔는데도 안 안 팔리니까 ‘내가 잘못했나? 커머스 시장에 너무 빨리 들어왔나?’, 이런 생각만 들더라고요. 포기하려던 차에, 마침 한 베트남 로컬 브랜드에서 저희한테 룩 북 비디오를 만들어주면 익스클루시브 상품(사이트 단독 판매)을 내놓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1월 1일에 타임라인을 걸어놓고 250장 한정으로 카운트다운 세일즈를 했죠.
리: 결과는 어땠나요?
김상혁: 놀랐어요. 서버가 다운된 거예요. 한 번도 동시 접속자 10명이 온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100명, 200명이 몰리니까 서버가 마비된 거죠. 30분 만에 250개가 다 팔렸어요. 너무 가슴이 벅차고 희열을 느꼈죠.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느낌이 오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버가 자꾸 마비가 되면 내가 어떻게 컨트롤하지?’ 그런 식으로 만감이 교차했죠.
리: 이후 서버는 또 다운됐나요?
김상혁: 아뇨. 하루에 3~4개씩?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죠 (웃음). 하지만 월 10개 팔리다가 100개 넘게 팔렸으니 일단은 1,000% 성장이잖아요? 웹사이트 트래픽도 계속 늘어나는데, 그 트래픽만 봐도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리: 존나 좋군?
김상혁: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한국 가서 VC 분들을 좀 만났는데, 막상 보여줄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기울기는 좋지만 한국처럼 e커머스 선진국에서는 이 정도는 숫자로 보이지도 않았던 거죠.
리: 왜 VC들이 투자하지 않았을까요?
김상혁: 그땐 제가 많이 부족했었던 것 같아요. 제 사업에 대해 스스로가 의심할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질문을 받으면 핵심이 없는 말만 늘어놓았던 것 같아요 “사업의 코어가 뭐예요?”라고 저희 비즈니스의 핵심을 물으면 ‘베트남’ ‘최초’로 웹진과 브랜드를 ‘병합’한 ‘입점몰’을 만들었고, ‘커뮤니티’를 통해 브랜드와 소비자가 ‘교류’한다… VC들은 데이터, 숫자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분들이 베트남을 잘 몰라서 이야기가 안 통한다고 생각하고 반박하니 자꾸 어긋난 거죠.
리: 사실 투자자에게는 현재의 모습보다 앞으로가 훨씬 중요하잖아요. 어떨 것 같아요?
김상혁: 앞으로 베트남 패션 e커머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예요. 지금은 COD(cash on delivery), 현찰 박치기지만 신용카드 건너뛴 중국이 그랬듯 모바일 페이먼트가 보급될 거예요. 이미 텐센트, 알리바바 같은 중국 대형 자본들이 라자다(Lazada), 쇼피(Shopee), 티키(Tiki)… 한국으로 따지면 쿠팡 같은 곳에 엄청나게 투자 중이에요. 그런데 저희처럼 하나의 특정 카테고리를 파고드는 플랫폼은 없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도시인도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하는 단계가 올 거로 생각해요.
리: VC가 항상 물어보는 게 있잖아요? “그러면 대자본이 들어와서 이걸 만들면 어떻게 할 거냐?”
김상혁: 스트리트 웨어는 스트리트 컬쳐라는 문화로 만들어져요. 지금까지 무신사가 잘 운영되고 있는 건 자체 커뮤니티의 파워, 패션을 문화를 소비하는 젊은 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소비자와 인터랙션이 없는 플랫폼은 밀려나게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대자본이 금방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 3~5년 후에 대자본으로 누가 들어온다고 하면 그때는 제가 대자본이 되어 있겠죠. (웃음)
리: 그러면 지금은 흑자를 내고 있나요?
김상혁: 아직입니다. 소액 투자도 받고 한국에서 벌었던 돈, 적금, 이런 거로 메꾸면서 근근이 꾸려나가고 있어요. 그래도 판매량과 트래픽도 늘고, 오프라인 페스티벌도 참가하고, 그렇게 매출과 인지도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희망을 갖고 하는 거죠. 제가 힘들 때마다 그런 사소한 변화들이 도시인을 못 놓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30대 초반 청년의 야망: 언젠가 무신사보다 더 잘나가고 싶다
리: 그러면 앞으로 도시인은 어떻게 성장시키려 하나요?
김상혁: 겉으로의 변화보다 좀 더 IT스러운 내실을 기하고자 해요. 지금은 워드프레스로 형태만 갖춘 사이트로 운영하고 있는데, 내년 1분기 안에 회원 등급제, 적립금, 쿠폰,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려 해요. 또 CMS도 획기적으로 개편해서 브랜드들이 직접 사진을 찍고 쉽게 올릴 수 있게 하려고 해요.
리: 님들 지금까지 쿠폰도 없었어요-_-???
김상혁: 다 수동으로 처리했어요. 솔직히 재고 관리 시스템도 없어서 수동으로 카운트해야 했고요. 덕택에 로컬 브랜드들이 느낄만한 불만을 저희가 직접 손으로 하면서 알 수 있었죠. 베트남 젊은 개발자들이 아직 기획 경험 등이 부족해서 그렇지, 코딩 꽤 잘해요. 아마 이른 시간 안에 한국 쇼핑몰 시스템 못지않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리: 거래량 증가 외에, 다른 매출 증대는 어디서 일어나나요?
김상혁: 지금까지는 입점 브랜드를 늘리기 위해 수수료 제로를 유지했어요. 그러다가 올 4분기에 들어오면서 수수료 15%를 받기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이탈한 브랜드가 거의 없어요. 이제는 로컬 브랜드들이 그만큼 저희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요. 특히 베트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탑 로컬 브랜드들은 거의 우리와 함께해요. 지금 입점한 브랜드가 60개 정도 있는데, 내년 1분기가 지나면 100개 브랜드까지 무난히 입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은근 신경 쓰이지 않아요?
김상혁: 한국에도 입점 몰 많지만, 거기 있으면 홍보 잘 되니까 서로 들어오려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저희한테 입점하면 매거진을 통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로 브랜딩이 돼요. 패션을 좋아하는 젊은 층이 30만 명이나 구독하고 있고요. 실제로 로컬 브랜드가 저희랑 콜라보를 할 때마다 항상 완판이 됐어요. 이미 베트남 패션 매거진 중 2위로 확실히 자리 잡았어요. 1위는 하노이에 있는 곳인데, 저희랑 친해서 콜라보도 종종 하고요.
리: 자리 좀 잡힌 김에 여성 시장도 한 번 진출할 생각은 없나요?
김상혁: 아직은 없어요. IT 시스템 개발 및 안정이 첫 번째죠. 현재 저희의 코어는 도시인 브랜드 자체라고 생각해요. 베트남의 로컬브랜드와 같이 성장하면서 쌓아온 유대관계, 그게 커뮤니티의 핵심인 거죠. 1년 반 동안 존버했고 이쪽 업계에서 저희를 모르는 브랜드는 없어요. 물론 여성 시장도 눈여겨보고는 있어요. 이미 한국에서 여성을 타깃으로 한 W콘셉트 등의 입점 몰이 이미 많이 존재하지만, 베트남은 아직 없거든요.
리: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상혁: 아직은 많이 모자라지만, 저는 이 도시인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저만의 확신이 있어요. 이른 시일 내에, 곧 성과를 보일 거라는 믿음 하나로 지금까지 왔고, 그런 믿음으로 열심히 잘하면 정말 무신사보다 두 배, 세 배 더 큰 회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비전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e커머스와 패션에 관심 있는 분이면 편히 연락 주세요.
뽀너스: 베트남에 한국 옷을 팔면 어떨까?
리: 그러고 보니 ‘한국 옷이 예쁘니까 여기 들여와서 비싸게 팔면 되지’ 이런 생각은 처음에 안 했나요?
김상혁: 로컬에서 쉽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한국 옷이 예쁘고 퀄리티도 좋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후디 같은 게 5~8만 원 하잖아요? 그런 걸 도매로 사입해 8만 원에 올리면, 베트남 애들은 8만 원짜리 나이키를 사지 한국 옷을 안 사요. 어쨌든 한국 브랜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 아니라 한국 로컬 브랜드니까요. 테스트는 계속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리: 그래도 한국이 가지는 여러 강점이 있는데 그냥 버리기엔 아쉬울 것 같아요.
김상혁: 한국의 여러 브랜드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제조원가를 낮추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 브랜드 사장님에게 베트남에서 제조를 책임지겠으니, 대신 브랜드 판권을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그 브랜드를 베트남에 런칭했죠. 반대로 생산한 제품은 한국으로 역수출을 했고요.
리: 베트남에서 하면 디테일과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나요?
김상혁: 유명 브랜드들의 생산기지가 이미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다 옮겨가고 있어요. 재봉이나 그래픽 같은 건 한국 못잖은 수준인데, 그동안 속 썩인 문제는 원단이죠. 좋은 원단을 구하려면 제대로 된 공장에 발주를 넣어야 하는데, 소규모 브랜드들은 공장 최소발주량(minimum order quantity, MOQ)를 맞추지 못해요. 그래서 원단 시장에서 싸구려 원단을 구매해서 옷을 만들어서 생긴 문제죠. 그런데 이것도 베트남 로컬 브랜드가 워낙 영세해서 50장 정도 주문해서 그렇지, 100~200장 이렇게 주문하면 해결돼요. 다행히 도시인은 이미 그 정도는 충분히 팔 능력이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