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근무하던 오산 공군기지에는 미국학교가 유치원이 2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가 2개 있었다. 특히 대학교의 경우 미국 본토에서 교수들이 수송기를 타고 날아와서 강의하고 다시 수송기를 타고 돌아가거나, 아예 미군 전세기를 이용하여 강의하러 오기도 했다(천조국의 위엄).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저 교육시스템의 일부인 미국의 학교 급식 체계다.
2.
20년 전 일이다. 하루는 미군 대령 부인과 대화하다가, 아이들 급식 바우처(voucher)에 대한 시스템을 물어보게 되었다. 대령 부인은 발설 금지를 전제로 그들의 시스템을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아이들의 귀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그 시스템은 이랬다. 대령집 아이들은 한 달에 100불을 내고 20장의 바우처를 받는다. 그리고 부사관(중사)의 아이들은 20불을 내고 20장의 바우처를 받는다. 대령 아이들이 내는 밥값과 중사 아이들이 내는 밥값은 5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바우처를 써서 학교에서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 바우처 자체는 동일하므로 대령 아이이건 중사 아이이건 상관없이 먹고 싶은 메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코스는 대개 2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각 정찬과 약식으로 이루어진다. 햄버거와 토스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식이다.
즉 아이들은 아빠가 대령이든 중사이든 동등하게 식사 시간에 본인이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다. 부친의 계급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나에게는 정말로 충격적인 시스템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나라는 대령들이 회식 비용을 내지 않고, 밑의 부하들이 돈을 각출하고 회식비를 충당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대령이 돈을 더 번다고 해서 회비를 더 내지 않았다. 오히려 막내들이 돈을 더 많이 내는 구조였던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텐데, 공군 특유의 ‘와리깡’ 문화도 영향을 미쳤고, 저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특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 공군은 안 그렇다는 충성심 어린 표현은 삼가 주었으면 좋겠다. 어디든지 문제는 있으므로) 당시의 회식문화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 공군 본부에서부터 문서가 하달되기도 했다. 모두가 동등하게 비율대고 갹출하라는 지침도 내려왔던 시절인 것이다.
그렇게 상관이 돈을 덜 내는 문화 속에 있던 나에게, 대령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비싸게 바우처를 사고 중사 아이들은 싸게 바우처를 산다는 점, 그리고 아이들은 바우처를 이용해 스스로가 원하는 코스를 선택하여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최소한 식사를 하는 동안은 아버지의 계급과 전혀 상관없이, 아이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3.
미군 장군들의 경우는 더 엄격한 코드가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쉬는 날에는 관용차를 두고 자신의 차를 운전병 없이 직접 운전하여 이동해야 했다(이는 지나치게 까다로워 보이기도 했다. 장군이 off인 날과 on duty인 날이 엄격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물론 한국군의 경우 24시간 on duty이므로 정서가 다른 점도 있다. 미군의 경우 장군은 off duty 개념이 있다고 들었다). 미군 기지 사령관의 경우는 24시간 운전 군무원과 경호 인력이 배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령관을 제외한 장군들은 모두 자가운전을 한다. 즉 자신의 임무와 책임의 권한과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교하면 한국군은 영관장교들과 장군들에 대해 지워지는 책임이 너무 크다. 즉 사소한 병사들의 사고마저도 모두 지휘관에게 책임을 지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휘관들은 사고를 축소하거나 은폐하고 허위보고를 하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심지어 새로 임지에 부임한 지휘관은 의례적으로 부대 내 영내숙영을 하면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며칠 혹은 몇 주는 영내 생활을 하는 것이 지휘관 임무 준비의 일부인 것처럼 여기는 폐습이 아직도 일선 부대에 남아있는 것이다.
지휘관이 피곤하면 적시에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런데 크고 작은 부대의 사건·사고에 대해 일일이 지휘관리책임을 지우다 보니 지휘관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적어도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식사할 때 아무런 차이와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친구로서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한 바우처 시스템을 보니 그저 놀라웠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특식을 제공하고 싶은 부모가 있다면 누구든지 제공해도 된다. 단, 누구 엄마가 뭘 사 왔다고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렇게 미래를 위한 교육에 남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물론 20년 전 이야기이므로 현재도 저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밝게 웃으며 식사하던 미군기지 아이들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오늘 저녁처럼.
원문: 정창욱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