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은 11월 21일 1면 톱으로 「여성들의 절박한 외침, 공감 못 하는 정부」라는 기사를 실었다. 핵심은 행정안전부가 불법촬영 관련 시위 원인과 해석에 관한 연구로 「2018년 ‘혜화역 시위’에 대한 해석」이라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냈는데, 이것이 대단히 졸속하다는 것이다.
이 일은 보좌관으로서 내가 사실상 진행한 일이라 내가 내막을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석명하는 게 맞다고 보아 글을 쓴다. 소략한 보고서다. 고작 300만 원을 비용으로 지불했는데 그마저도 이것저것 다 떼고 필자에게는 240만 원이 건네졌다. 일은 원래 장관의 지시로 시작되었다.
행안부는 두 가지로 혜화역 시위와 연관된다. 하나는 공중화장실 관리 업무가 행안부에 있다. 이 얘길 처음 듣고 지금 여러분이 피식 웃듯 나도 웃었다. 행안부는 정말 별의별 업무가 다 있다. 즉 공중화장실을 불법촬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건 행안부의 고유 업무다. 또 경찰청이 행안부 외청이다. 당시 시위의 핵심 이슈가 여성에 대한 편파 수사 시비였다.
그러니 장관이 그 염천에 수만 명의 여성이 쏟아져 나와 자기들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치는바, 사정과 배경을 알아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여가부나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라면 여성 문제를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다루어 보았겠지만 행안부는 여성 문제를 잘 모른다.
한편 행안부 직제령 6조 2항 1호에 따르면 ‘장관이 지시한 사항의 연구 검토’가 보좌관의 임무다. 그래서 내가 맡았다. 그런데 나도 잘 모르는 분야다. 기조실과 논의했더니 긴급하게 어떤 사안을 연구해야 할 때를 대비해 연구용역비 500만 원을 남겨둔 게 있다고 했다. 그중 300만 원을 쓴 것이다.
요컨대 장관에게 혜화역 시위에 대한 배경지식을 요점 정리해 보고하는 것이 이 연구용역의 목적인 셈이다. 그런데 행안부는 여성 문제의 주무 부처가 아니다. 그래서 외부에 용역을 준 것이고, 그 내용엔 여성 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부터 담아야 했다. 소략할 수밖에 없는 보고서다. 필자에게도 ‘우리를 좀 가르쳐준다 생각하고 쉽게 써 달라. 돈도 얼마 못 드린다. 자원봉사로 여겨 달라’며 부탁했다.
총 36쪽의 리포트는 장관만 읽고 묵히기엔 아까울 정도로 솜씨 있게 잘 정리되어 있었고, 장관의 지시로 부내 회람은 물론 여가부, 총리실, 경찰청, 한겨레신문 기자, 일부 국회의원실 및 청와대 비서진 등에도 보내졌다. 한겨레는 그걸 읽고 필자와 인터뷰를 했고, 총리실은 7월 12일 장·차관 20명을 대상으로 여성 문제 전문가 두 분을 초청해 1시간 30분에 걸쳐 강의를 들었다.
기자에게도 이런 내용을 다 설명해줬다. 기사를 검색해 봐도 그렇고 직접 통화를 했을 때도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우호적인 관점을 가진 기자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기사는 그걸 부풀리고 비틀어 ‘졸속, 헐값, 생략, 공감 못 하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등의 표현으로 매도했다. 그것도 1면 톱으로…
조용히 두 가지를 복기해봤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서울신문은 기사를 왜 저런 식으로 다루었을까? 도대체 행안부나 나는 뭘 잘못했을까? 여성 문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한 일이다. 그런데 ‘여성 외침에 공감 못 하는 정부’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죽일 놈이다.
원문: 이진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