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11월 29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취임 후 처음으로 ‘40%’대를 기록했다. 지지율 하락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문제는 경제다.
81%에서 51%까지 하락한(한국갤럽 기준) 20대 남성 지지율도 주목을 받는다. 젠더 문제의 요인이 크겠지만, 이 역시 경제문제와 얽혀 있는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 못 하면서 저런 (골치 아픈) 문제만 신경 쓴다. 우리말은 듣지 않는다’와 같은 정서라는 뜻이다. 지지율 하락의 요인을 살피기 위해서는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때’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 즉 한반도 문제가 풀려나가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가장 큰 신뢰와 높은 지지를 받았다. 문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해결사’ ‘수석협상가’ 같은 별칭까지 얻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가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신뢰감 있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소통의 힘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얽혀있는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소통으로 풀어나가는 리더. 촛불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북한에 가서 북한 주민에게 고개를 숙였고,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 주민 15만 명 앞에서 연설했다.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소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또 다른 소통방식은 ‘가장 반대가 심할 상대’들, 즉 트럼프나 김정은을 가장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미국 특사로 갔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등을 바로 중국과 일본에 보냈다. 미국에 간 문 대통령은 (아마도) 김정은을 가장 싫어할 매체인 ‘폭스TV’와 인터뷰했고, 민주당의 ‘큰 어른’ 격인 제시 잭슨 목사를 만나 협력을 당부했다.
자유한국당은 남북정상회담이 겉만 요란하고 성과는 없다고 대통령을 공격했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오르기만 했다. 애초에 국민들이 남북관계를 해결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다.
나는 경제정책에 세세히 판단할 능력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경제 문제도 한반도 문제처럼 풀었으면 어떨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해결해 나간 한반도 문제와 달리 경제 문제에 있어 정부는 중심이 없고 이슈에 따라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최저임금 논란, 부정적인 고용지표, 부동산 문제 등이 그랬다.
“경제 펀더멘탈은 괜찮다” “최저임금 긍정 효과가 더 크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서 그렇다” “산업구조가 문제다” 정부가 내놓은 설명들이다. 이슈를 주도하기보다 방어하고 설명하고 해명하는 위치에 섰고, 논란이 터지면 그때야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동산 문제는 가격 급등이 터지자 대책을 내놓았고 고용지표도 안 좋게 나오자 부랴부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야당과 언론이 소득 주도 성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최저임금, 고용지표를 과하게 공격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여정부 때를 떠올려보자. 참여정부 시절 경제지표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경제위기론’이 등장했고, 정부와 집권여당이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정부가 수치/통계를 둘러싼 진실 공방에 매몰될 경우, 국민들은 ‘정부가 경제 지표 지키는 데만 관심 있고 내가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은 관심사 밖’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통계 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돌아다녔다. 경제지표를 둘러싼 공방에 휩싸인 정부를 비꼬는 말이다.
소통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솔직히 소득 주도 성장이 효과를 보기 위한 경제 체질 개선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과감한 정부 재정 투자를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하겠다고 말한다든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반대할 것 같은 상대부터 만나서 협의했듯 대통령이 직접 자영업자들부터 만나서 최저임금에 대해 끝장토론을 한다든지, 그 외에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경제가 나쁘지 않다는 반박과 해명, 그리고 “연말까지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메시지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한반도 문제와 경제 문제는 달랐다. 한반도 문제에서 메신저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최고지도자인 문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고 움직였다. 그래서 메시지의 신뢰감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참모들이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걸 최소화했다. 반면 경제문제에 있어선 문재인 대통령보다는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의 말이 공방처럼 오갔다. 언론은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메시지의 혼선이 빚어졌다.
물론 경제문제가 한반도 문제보다 훨씬 이해관계자가 많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실제 해결하는 것’보다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종전선언도, 평화협정도, 비핵화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신뢰와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5년 임기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만 제대로 해결해도 성공한 대통령 아닌가?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 분야에서 쌓인 불신이 다른 영역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문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높아지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신뢰도 약해질 수 있다. 야당과 보수언론도 이 약한 고리를 집중 공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