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사회 전체 구성원의 매체 문해력이 증진되면서, 부모와 자녀들이 매체를 깊이 이해하면서 극복되었다.
중앙일보에 쓴 류철균(소설가 이인화) 교수님 칼럼에서 제일 인상적이던 구절. TV와 같은 영상매체의 폭력성과 선정성 문제를 얘기하면서 쓴 표현이다. 생각해 보면 이른바 ‘기성세대’는 그동안 TV를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관리하는 대신 스스로 자녀의 TV 시청시간을 제한하고 TV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관리했다. 아마도 그들이 그랬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같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으니까. 기성세대 또한 TV를 좋아하고 즐겼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가 알콜 중독의 해악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녀가 나이를 먹으면 술을 자연스레 권하고, 심지어 사회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물질로까지 격상시켜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가 술을 즐기기 때문이다. “술은 어른에게서 배우는 거야”라는 얘기는 어른이 통제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 술은 그렇게 해롭지 않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TV와 술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둘 다 세대 구분 없이 즐긴다. 둘 다 과도하게 즐기면 해악이 있지만, 사회는 그 해악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중독 수준에 빠지기 전에 이를 가정과 친구와 사회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사회 전체에 퍼졌기 때문이다.
게임을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게임에 대해 과도한 규제와 두려움을 내보이는 이유는 그래서 하나다. 기성세대가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마치 우리가 마약이나 도박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이기 때문에 마약과 도박을 범죄 취급하는 것과 동일해 보인다. 그런데 게임은 마약과 도박에 맞먹는가, 아니면 TV와 술에 가까운가?
한번쯤 중독물질 규제를 고민하실 시간에 TV를 보고 술을 마시는 것처럼 어른들도 게임을 조금만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심지어 게임은 술과 비슷한 점도 있다. 맨 처음 조금 입에 대보면 쓰지만, 조금만 더 즐겨보면 그제야 그 맛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 주위의 수많은 기성세대는 “난 게임이 재미없더라”며 조금 게임을 해보고는 게임 전체를 이해하는 것처럼 말한다. 소주 한 잔 마셔보고 술 전체를 평가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게임에 시간을 조금만 더 들여보시면 어떨까. 술을 처음 배우던 때처럼, 합리적으로 게임 시간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성인과 함께.
미국과 유럽과 일본에서 21세기에 들어와 게임 중독을 국가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던 가장 큰 이유는 1980년대부터 비디오 게임이 이런 지역 청소년들의 삶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틴에이저였던 그들은 지금 40대 중후반이다. 딱 그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기성세대. 30대 후반인 나 또한 우리 아들의 TV 시청을 제한하듯 게임 사용도 내가 제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자라면서 게임을 참 열심히 했다. 게임이 무조건 좋다거나 게임의 해악이 없다고 얘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난 게임이 무엇인지 아니까 그걸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단계는 벗어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