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명함이 네 장이다. 이직을 자주 해서 그런 건 아니고(…) 회사에서 쓰는 명함이 아닌 다른 명함이 3개 더 있다는 뜻이다. 매달 딴짓을 기획하고 1년에 한 개씩만 남겨보자고 다짐했는데 그렇게 4년이 지나니 몇 개의 프로젝트가 남아 내 주위를 맴돈다.
부업 같은 사이드 프로젝트는 모든 직장인의 염원 같은 존재다. 내게도 그랬다. ‘아, 저 퇴근 후에는 다른 일로 돈을 벌어요 하핫’이라든지, ‘퇴근 후에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죠 후후’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모두가 꿈꾸지 않던가. 그러나 사이드 프로젝트란 놈은 사뭇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이래저래 눈치 볼 상사도 많고, 퇴근하고 나면 피곤해 죽겠고, 막상 뭔가를 하자니 무섭고 두렵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망할 것 같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우리는 기어코 도전을 방해하는 요소를 굳이 찾아내고 찾아내 무기력한 주말을 보내고 제자리에 머무르곤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여러 개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던지곤 한다. ‘집에 가면 발 닦고 자기 바쁜데, 대체 너는 뭐야?’라는 표정이 보인달까. 절반은 신기함으로, 절반은 의구심으로 묻는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나름 노하우가 생기더라. 퇴근 후 캘리그라피 강사, 콘텐츠 에디터, 공간 운영 등을 하며 가열차게 딴짓하는 나만의 몇 가지 팁을 공유해보려 한다.
1. 본업과 딴짓을 연결해 당당하게 공개하라
다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회사에 숨길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는 가정 아래(…) 당신의 딴짓은 반드시 회사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 그때 가서 들키게 되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죄지은 기분이 들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가 두려운 직장인이라면, 본업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걸 오히려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마케터인 나는 디자인과 로고 등의 감각을 키우고 싶다는 이유로 ‘캘리그래피’를 배웠고, 실제로 캘리그래피를 배운 뒤로 꽤 많은 회사 예산을 줄이고 야근은 늘리고 업무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가 시너지를 낼 방향을 찾으면 오히려 회사에 공개하기도 수월해진다. 만약 사이드 프로젝트로 본업에 도움을 주는 날이라도 온다면 그 뒤로는 팀원들과 상사들로부터도 눈치를 덜 볼 수 있다.
다만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면 ‘회사에서는 절대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근태나 업무 퍼포먼스가 떨어지면 모두가 사이드 프로젝트 탓을 하기 쉽다. 공격의 빌미는 주지 않되 본업에 연결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한다.
2. 나를 숨기고 다른 페르소나를 활용해라
그래도 딴짓하는 걸 절대로 회사에 알리고 싶지 않다면 다른 페르소나를 활용해서 나를 숨기는 방법이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문과생존원정대’라는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문생원’이라는 필명을 이용해 3년 동안 정체를 숨기며 콘텐츠를 연재했다.
처음으로 실명과 얼굴이 공개된 것은 모 신문사 기자가 나를 ‘문 씨는’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난 뒤였다… 필자는 ‘고’ 씨다. 차마 부모님 성씨마저 바꿀 수는 없어서.
페이스북 페이지나, 인스타그램 새로운 계정은 얼마든지 내 정체성을 숨기면서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내 개인의 브랜드보다 새로운 페르소나가 더 좋을 수도 있다. 본인이 막강한 인플루언서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나를 버리고 새로운 페르소나를 택하라. 얻는 것은 프로젝트의 자유일 것이다.
3. 작은 결과물이라도 만들고 자주 공유해라
당연한 말이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시작하자마자 잘했으면 애초에 그건 사이드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눈물) 그래서 완벽주의자들은 절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못한다. 본인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 공개조차 하지 못하고, 완벽한 수준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시간 소요를 알기에 애초에 시작하지 않고 무작정 미뤄버린다.
작은 결과물이라도 자주 올려라. 의외로 사람들은 작은 결과물에도 놀란다. 그것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무언가를 해내는 당신의 열정과 체력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며, 애초에 당신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럴싸한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그 순간이 놀랍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의 사소한 놀라움은 내게 큰 동력이 된다. 아주 쓸모없는 짓을 하던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심과 함께 내가 하는 일이 잘 되는지 간단하게 피드백을 받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인스타가 되었든 페이지가 되었든 술자리가 되었든 내가 만든 작은 결과물들을 어떻게든 공유하고 자랑하라. 의외의 뽕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4. 돈을 벌지 못하면 실패라는 편견을 버려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어차피 잘 되지 않는다(…) 필자는 하루가 멀다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지만, 그중에 결국 옆에 남은 것은 서너 개 뿐이다. 4년간 매달 기획했던 48개 중 45개는 망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돈이 되는 것은 단 두 개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돈을 ‘소비’ 하는 것이 실패하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애초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돈을 벌기까지는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나기 위해선 그만큼 소비하고 투자해야 한다.
다만 그 소비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고, 나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더 나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찾아가는 여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 여정이 익숙해지는 어떤 순간에 소득은 선물처럼 발생한다.
5. ‘할 일’과 ‘일정’을 구분하고 할 일을 위한 일정을 만들어라
‘진짜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마치 내겐 시간이 더 있는 것처럼, 당신의 회사는 야근을 하지 않느냐는 순진한 눈빛과 함께 이런 질문을 던질 때면 나도 당황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퇴근 시간이 7시인, 늦잠을 좋아하고 야근도 종종 하며, 사회생활을 위한 소모적인 모임에도 나가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만 남들과 다르게 시간을 활용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친구들을 만나는 모임과 같은 일정처럼 ‘할 일’을 위해서도 일정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오늘은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오늘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서 시간을 내는 날이에요’라고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주말에 모든 계획을 몰아넣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일을 할 것인지는 정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날 때는 꼬박꼬박 시간과 장소를 잘 정하면서 말이다.
딴짓을 위한 시간은 마치 헬스장을 다니는 시간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잘 안 되는 건가 캘린더에 미리 딴짓을 위한 일정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그날 만나자고 해도 딴짓과의 약속을 지켜줘라. 그러고 나면 의외로 주말에도 시간이 많이 나고, 쉴 것 다 쉬면서도 딴짓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6. ‘고민’과 ‘걱정’을 구분하고, 먼저 저질러라
사이드 프로젝트가 45개나 망했지만, 그 과정에서 언제나 ‘걱정’은 없었다. 늘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은 있었지만 말이다. 고민과 걱정은 엄연히 다르다. 걱정은 애초에 ‘실패’를 염두에 둔다. ‘고민’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더 구체적인 태도다.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과연 잘할 수 있을까?’는 걱정이고 그 어떤 것도 진전을 이룩하지 못하지만, ‘유튜브를 하려고 카메라로 얼굴을 찍어봤더니 피부가 너무 안 좋고 생각보다 더 늙어 보이며 말을 버벅이네, 어떻게 하면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는 (슬픈) 고민이다. 일단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걱정을 고민으로 바꿔라. 그러다 보면 어느새 뭐라도 할 것이다.
7. 함께 작당 모의할 동료를 구하거나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하라
예전에 루트임팩트의 정경선 대표가 스타트업을 위한 주거공간을 만들며 했던 말 중에 ‘미친 짓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아 나만 미친 짓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뭔가 위로가 될 것 같아서’ 만들었다는 말을 기억한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뭔가 새로운 미친 짓을 할 때는 늘 공범동료를 만든다.
동료들은 언제나 나의 시도를 부추겨주며, 더 나아가서는 프로젝트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크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내게는 공간 사업이 그랬다. 처음에는 방 1개만 운영하려 했는데, 공범을 영입하고 나서는 어느새 4개 층 건물의 2개 층을 운영하게 되었다. 재미는 두 배, 리스크는 절반이니 이 얼마나 합리적 선택인가.
동료를 만들기 어렵다면 페친이라도 늘려라. 나와 비슷한 관심사에 있는 사람들을 무작정 추가하고, 팔로우하고, 자주 만나라. 내 결과물을 보고 무조건적인 좋아요를 눌러줄 팬을 만들면 내 사이드 프로젝트는 의외로 더 크고 그럴싸해 보인다. 무플이 악플보다 더 나쁘다고 하지 않던가. 애초에 반응이 없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짝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며
개인의 시대라 하지만 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욱 연결되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산다. 회사로부터 탈출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준거집단으로부터 탈출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연결되어야 한다. 더 다양한 프로젝트 주제를 찾기 위해서라도, 내 프로젝트를 무작정 좋아해 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원문: 고재형 aka 문생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