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야수 제레미 해즐베이커(31)가 한국으로 온다고 한다. 영입 구단은 KIA 타이거즈. 일단 KIA는 이름 있는 외국인 선수를 참 잘 데려온다. 호세 리마, 브렛 필, 아킬리노 로페스, 헨리 소사, 필립 엄버, 헥터 노에시, 로저 버나디나는 메이저리그를 보는 사람들에게 무척 익숙한 선수다. 이번 해즐베이커도 그렇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기간은 길지 않지만, 친근한 느낌이 드는 선수다.
해즐베이커는 2009년 드래프트 4라운드 출신이다. 보스턴의 지명을 받았는데, 선수층이 워낙 두터운 보스턴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두 번째 팀인 다저스도 마찬가지. 해즐베이커에게 기회를 준 또 다른 팀은 2016년 세인트루이스였다. 세인트루이스는 해즐베이커를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마이너리그에서 751경기를 뛴 선수의 개막전 로스터 진입은 꽤 화제가 됐다. 부푼 마음을 안고 시즌을 맞이한 해즐베이커는 개막전에서 7회 초 대타로 나왔다. 결과는 삼진. 선발 애덤 웨인라이트 타석에 들어섰기에 7회 말 팀의 두 번째 투수와 바로 교체됐다. 역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던 오승환이었다.
해즐베이커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시즌 첫 35경기 .282 .330 .624(7홈런)로 위협적인 백업 역할을 해냈다. 존 모젤리악 단장은 “지금 같은 모습을 유지하면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다”는 말로 힘을 실어줬다. 실제로 세인트루이스는 루벤 테하다가 부상에서 돌아오자, 해즐베이커가 아닌 그렉 가르시아를 내려보냈다.
메이저리그가 힘든 이유는 ‘적응’이 끝나면 ‘변화’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상대 팀들은 이내 해즐베이커의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발과 백업을 오가며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던 난관에 부딪힌 해즐베이커는 이후 79경기를 초라하게 마쳤다(.200 .270 .374 5홈런).
세인트루이스는 해즐베이커를 DFA(designated for assignment)로 처리했다. 클레임을 걸어서 데려온 팀은 애리조나였다. 그러나 애리조나에도 해즐베이커의 공간이 없었다. 41경기 .346 .443 .577로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또 다른 팀을 찾아서 떠나야 했다.
올해 해즐베이커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했다. 작년하고 달리 트리플A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타율 .203은 300타석 이상 들어선 인터내셔널리그 타자 89명 중 최하위였다.
삼진율도 굉장히 높았다. 33.6%는 리그 2위. 이 정도면 타석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삼진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메이저리그로 치면 화이트삭스 요안 몬카다와 삼진율(33.4%)이 비슷하다. 몬카다는 올해 메이저리그 최다삼진 1위 타자다(217개).
그런데 해즐베이커는 2016-17년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이 .258인 타자다(155경기). 변화구에 약점을 노출하긴 했지만, 빠른 공이나 변형 패스트볼 대응은 준수했다(변화구까지 잘 쳤으면 해즐베이커가 한국에 올 필요가 없다).
해즐베이커 구종별 타율 (2016-17)
- 포 심: 0.333
- 변 형: 0.278
- 변화구: 0.174
이 정도의 타자가 올해 갑자기 무너진 것은 좀 의아하다. 그러면 기술적인 부분보다 심리적인 부분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올해 해즐베이커는 애리조나/탬파베이/미네소타 세 팀을 옮겨 다녔다. 애리조나에선 최선을 다했지만, 자리가 보장되지 않았다. 선수 입장에서는 허무하고 지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만약 성적 하락이 이 점에서 비롯됐다면,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다시 반등할 여지가 있다(성적 하락에도 볼넷 비율이 늘어난 점이 고무적이다). 해즐베이커는 적당한 파워와 스피드를 겸한 선수다. 버나디나가 한국에 오기 전 기록한 트리플A 스피드스코어는 6.7. 올해 해즐베이커의 스피드스코어는 7.3이다. 버나디나와 비슷한 유형인데 해즐베이커는 버나디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
메이저리그에서 해즐베이커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해즐베이커 영입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놀라운 마음이 더 컸다. 올해 급격하게 추락했는데, 아직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결국 해즐베이커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문: 이창섭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