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래퍼 산이의 신곡 관련 글에 어떤 분이 댓글을 남기셨다. “왜 그 곡이 ‘자네보다 어린 남자들을 가사 속의 그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위계와 차별의 지옥으로 떨어트리는 내용’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다. 쓰다 보니 길어진 데다가, 이 시기쯤에 생각을 다시 한번 묶어둬야 할 것 같아서 따로 포스팅한다.
남성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은 같은 남성이다
남성에게 특정한 성정을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은 같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자라면서 주변의 손윗남성들이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남자가 왜 무서워해’ ‘남자라면 싸워서 이겨야지’ 같은 말로 특정한 성정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따르지 못하면 비교하고 놀리며 압박합니다.
자연에서 개체 간의 원초적인 질서는 물리력에 따른 폭력에 기반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이를 정당화해버리면 개인의 고유한 인권이 심하게 침해받습니다. 따라서 문명사회라면 위력에 의한 위계질서는 부당합니다. 그럼에도 남성다움이라는 규정의 바탕에는 좀 더 강한 개체가 가질 법한 특징에 대한 규정들이 깔렸습니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위력이 남성성 체계 질서의 핵심입니다. 강한 것, 즉 폭력성이 내재합니다. 이는 남자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남학생 간 실제 작동하는 주된 질서가 무엇인지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폭력적 위계가 이 체제의 전반적인 속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은 빈번히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이를 장려합니다.
따라서 ‘남자다움’이란 것에 충실하다는 건 폭력성을 내재한 질서를 긍정/지지한다는 뜻이 됩니다. 남성들은 남성성이란 걸 획득할수록 위계 우위에 서니 폭력적 지위를 획득하려는 경쟁에 내몰립니다. 그리고 폭력적 지위의 취득 능력별로 남성성 질서가 제공하는 여러 권리를 획득합니다.
예를 들어 일진이 되면 빵셔틀을 마음껏 부릴 수 있겠죠. 혹은 돈을 강탈하거나 시험 시간에 부정행위를 강요하여 성적을 올릴 수도 있겠죠. 사실상 남자다움이라는 강요된 남성성은 ‘폭력적 권리를 갖기 위한 자격’으로 기능합니다. 특히 어릴 때는 더욱더. 이러한 현상의 허용이 성인 사회에서 비위행위에 대한 허용으로 이어지면 그 사회는 위계에 굴종한 폭력사회가 됩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폭력적 질서가 만연하다는 것은 모두가 압니다. 여기에 정당함을 부여하여 명예와 지위마저 주는 사회는 남성성이라는 이름 대신 ‘현실 세계의 어쩔 수 없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이를 실행합니다. 이렇게 사회가 남성성 위계 추구를 질서의 중심에 두면, 남성성 획득에 골몰하는 남성들로 이루어진 남성중심사회가 됩니다.
폭력적 남성성에 뿌리를 둔 남성중심사회는 약육강식이 통용되고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불평등은 위계에 의한 차별을 용인해줍니다. 이어서 남성다움의 성취 여부는 차별의 이유가 됩니다. 힘, 덩치, 경제력, 자동차, 미녀 파트너, 집 등이 남성다운 성취의 기준으로 작동하며 이의 획득 여부를 가지고 불공평한 인격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 성취기준들에 대해 습관적으로 유통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남자가 한 덩치 해야지’ ‘남자가 차는 있어야지’ ‘남자가 경제력이 있어야지’ 이러한 습관을 비언어로 묘사한 장면을 보면 그 인식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멜로 드라마에서 30대 초반의 초인적인 젊은 남자 주인공(그 많은 실장님들)이 획득하는 것들은 생존능력이 있는 강한 남성이 쟁취할 것들입니다.
이를 강력함의 상징으로 추앙하며 강한 남성상의 전형이라 말할 때, 남성성의 획득이 무엇의 쟁취로 이루어지는지 그 기준을 드라마들은 반복적으로 그려냅니다. 남자주인공의 반대편에 있는 악인은 대체로 그것들을 쟁취하지 못하거나 모두 잃으면서 패배자가 됩니다. 그를 악인으로 상정해야 패배자로 모는 차별이 당위를 확보합니다. 사회적으로 공유한 인식의 습관이 드러나는 겁니다.
특정한 사상이 굳건하면 그 사상에 복무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반복된 행위는 습관으로 저장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말 습관 혹은 인식 습관이 차별의 정당화를 내포한 이상 해당 사상은 사라진 적 없이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실존하는 것입니다.
‘남성성’ 요구에 미달하는 모든 것은 여성과 직결된다
이런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여기에 동의하는 구성원을 계속해서 필요로 합니다. 위계에 복종하는 아랫사람과 자신을 보호해 줄 윗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성중심사회의 위계질서에 순응하는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내면화하는 건 체제질서 혹은 체제윤리의 형태로 굳어집니다. 이 굳건함을 더욱 끈끈하게 하기 위해 가족적 서사마저 부여합니다.
가령 조폭의 내부질서를 대변해 주는 ‘형님’이라는 호칭이 그 예입니다. 이는 단순히 친근한 감정 때문에 형님아우 하는 것과 다른데, 상대를 압도할 정도의 위력을 담지한 ‘남자답다’는 위상을 인위적으로 획득하려는 남성들의 경우 형님아우 서사에 충실한 태도를 보입니다. 형님에겐 허리 굽혀 충성하고 동생들에겐 충성에 걸맞은 보상으로 아낌없는 애정을 교부하려 합니다. 이를 남자다움으로 주장하는 데 거부하면 까칠한 남자, 사회생활 못하는 남자, 샌님으로 종종 비하됩니다.
개인의 체력을 바탕으로 한 노동력과 그 노동력의 집단화가 중요한 옛 사회에선 이러한 인위적인 가족 질서가 생존에 유리했을 겁니다. 가부장제가 그 대표적 예일 것인데, 이런 식의 군집에선 남성성이란 것의 획득이 생존과 직결된다는 의미입니다.
남성들은 강요된 남성성에 미달하면 위계질서의 하부로 떨어지면서 생존을 위협받습니다. 나약하다든가, 덩치가 작가든가, 힘이 약하다든가, 여린 감정을 가졌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부정한 것으로 취급받습니다. 이럴 경우 자신의 존재의의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자기비하가 생겨납니다. 이런 열패감은 그 체제의 약육강식 규칙이 생존과 연결된 특징 때문이며, 또한 그 원리에 동의하고 투신한 자신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다른 것에서 찾게 되면 체제가 가진 문제는 사라지고, 그 체제에 동의한 자신의 잘못도 사라지므로, 결과적으로 자신을 비하하거나 혐오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대한 구조적 원인의 소거는 현실에 편리함과 안락함을 제공합니다.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의 대상에 특정하여 공격함으로써 안전하게 자기 위치를 고수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 대상이 되는 것으로 가장 손쉬운 게 여성입니다. 여성들은 이미 물리적으로 그 질서의 중심에 낄 수 없기 때문에 비남성으로서의 기능에 해당하는 성정만을 요구받습니다. 체제의 부당함이 누적시킨 문제들의 저수지를 담당하는 데 필요한 복종과 수용 그리고 인내. 폭력적 위계의 중심을 남성들이 차지했으므로, 그에 따라 여성은 질서의 변방에 배타적으로 위치합니다.
결국 배타적 보조 구성원인 여성은 폭력의 구정물이 흘러가는 통로 역할을 맡습니다. 그 탓에 위에 쓴 남성성 요구에 미달되는 모든 것들은 위계의 최하부인 여성과 직결되어 설명됩니다. 넌 왜 사내새끼가 여자 같냐, 왜 여자처럼 그렇게 쳐 울어, 사내놈이 덩치가 여자보다도 작냐. 등등. 즉, 남성성의 획득을 절대선으로 보는 질서에서 모든 안 좋은 것들을 전부 여성적인 것으로 평가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여성을 절대선의 반대, 절대적으로 안 좋은 나쁜 것, 악으로 규정하는 모멸입니다. 명백히 여성이라는 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행해지는 비하인데, 여성에게 혐오를 시도함으로써 체제의 폭력이 가진 맹점을 가리고 그 유지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됩니다. 질서의 적극 복무자인 남성이 이 장치를 사용하면 스스로에게 죄를 묻지 않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흐름을 가집니다.
- 미녀를 만나라고 주변 남성들이 권한다.
- 용기 있는 자만이 미녀를 얻는다면서 실패할 시 용기 없는 남자, 즉 남자답지 못한 남자가 된다.
- 반드시 미녀를 획득해야 한다는 강제를 내면화하며 시달린다.
- 그러나 미녀가 나를 만나지 않으면,
- 자신은 남성성 레벨 상승에 실패하면서 존재의의를 잃는다.
- 이때 미녀가 나를 원하지 않는 이유를 자신의 남성다움이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하게 되면, 자신의 체구, 힘, 경제력, 외모, 지성, ‘남자다운’ 화통한 성격 등의 부재를 원인으로 본다. 주변 남자들로부터 배운 게 그것뿐이니까.
- 그렇다면 미녀가 자신의 인간적인 본질보단 외적으로 드러나는 남성적인 것을 판단기준으로 삼았다고 결론 내리고
- “햐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너도 사람 보는 눈은 별수 없구나 나쁜년”
- ‘돈이나 외모만 보는 김치녀’ 또는 ‘순수한 나를 간만 보며 놀다가 딴 놈에게 간 쌍년’의 서사를 완성한다.
- 즉 미녀가 날 인간적으로 무시했으니 얼굴만 이쁘고 머리는 썩은 그런 미녀는 욕먹어 마땅하다.
여기서 미녀를 여자로 고치면 그게 바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댓글로 자주 보던 현상과 일치합니다. 일베는 이 동력으로 굴러가고요. 악의 근원은 김치녀와 쌍년이고, 남성인 자신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애당초 원인은 강요된 남성성을 바탕으로 하는 위계질서를 용인하고 추종하여 그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에 협력한 자신들에게 먼저 있습니다.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라는 말을 한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이 조현병을 앓았단 사실은 폭력적 위계의 남성성이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여성혐오가 실로 병적 수준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부당한 남성성에 기반한 위계질서로 유지되는 남성중심사회
여성이라는 성별에 가해지는 이러한 마녀화는 남성중심사회의 문제를 여성에게 떠넘겨도 될만하기에 일어납니다. 변방의 비남성을 비인격적으로 인식해도 당장 자신에게 위해가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비인격적인 차별 대우를 받아도 되는 것들은 여성이 담당합니다. 그냥 여성이므로 상서롭지 못한 것들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런 인식의 정점이 ‘꽃뱀’ 서사인데, 실제로 꽃뱀이란 방식의 범죄가 일어났다면, 그건 과연 이 사회체제의 폭력적 위계 특징이 중첩된 하부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관계없는 별개의 장에서 별도의 특정 인물이 가진 개성에 의한 갑툭튀 범죄인지 잠깐만 생각해도 답이 나옵니다.
누군가 팔을 다쳐 평소 숟가락을 들던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밥을 먹었더니 옆에서 “넌 왜 X발 하는 짓이 꼭 왼손잡이 같냐”고 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저 곱슬머리라든가, 거무튀튀하게 생겼다든가 하는 것들이 부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 왼손잡이가 욕먹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럼에도 이런 엉뚱한 발언과 동일한 패턴이 여성에게 수시로 벌어지는 게 우리 사회입니다. 남성을 비하할 때 여성이 뻔히 보는 앞에서 “넌 왜 X발 하는 짓이 꼭 여자 같냐?”라는 멸어가 아무렇지 않게 들리는 세상입니다. 태어나 보니 혐오대상입니다.
이렇게 특정 성별을 모멸의 비유로 손쉽게 사용하는 것은 남성성이라는 절대선을 상정한 남성중심질서가 실제 가동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기어들과 장치로 작동하는 구조적 현상입니다. 따라서 ‘나는 여자들 안 미워하는데?’ ‘난 여자 좋아하는데?’ ‘요즘 여자들은 권리가 많이 신장됐어’라는 말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여성 혐오를 전혀 이해 못 하는 상태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남녀 모두 이러한 기존질서를 거부하면, 야만적인 물리력과 폭력적 위계에 노출되는 것이기에 결국 체제에 복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남성중심사회의 방향성에 포섭되고 맙니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복무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회식 술자리에서도 빼지 않고, 윗사람에게 충성하고, 남성성에 혈안이 된 남성보다 더 강한 성정의 우악스러움을 드러내고 전시하면 ‘오 넌 꼭 남자처럼 당당하고 성격 화끈하네.’ 같은 칭찬을 받으며 남성중심질서의 훌륭한 복무자로서 추인하고 회원 자격을 부여합니다.
즉 특정한 규정의 남성성이란 걸 따르는 남성 그 이상을 행위함으로써 자격을 얻고 권리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밟은 여성일수록 같은 여성을 비난하는 언사를 더 많이 하는 걸 자주 목격합니다. 남성이 여성을 구조적으로 비하하는 패턴과 동일합니다.
이런 여성은 여성들도 힘들게 하겠지만 어린 남성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권리를 누리기 위해 불의한 자격을 획득하려 애쓰고 결국엔 그 체제를 옹호하고 종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원래 남자든 여자든 성격이 그럴 수 있는데, 원래 그런 성격인 여성조차 위악적인 행위자로 분류된다는 점이죠. 그냥 자기 생긴 대로 인정받지를 못합니다.
여성이 위악적으로 규정된 남성성을 수용하는 현상은 매우 넓게 확산되어 있습니다. 다소 약화한 발언이 넌 남자가 왜 그리 쪼잔하냐,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지, 집은 남자가 해오는 거 아냐? 같은 말들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들의 이러한 요구와 행태는 폭력적 위계의 남성중심사회가 포섭된 여성들의 입을 빌려 강요하는 발언입니다. 그러니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부당한 남성성, 그에 기반한 위계질서, 그 위계질서로 유지되는 남성중심사회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혐오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산이의 가사를 공유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아직도 구조적 혐오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형이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남자와 여자가 동등해진 사회라고 그릇된 주장을 하고, 남성성을 강요하는 남성중심사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동료 남성들에겐 따지지 않으며,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만 두고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발언에는 발언권이 있는지 자격부터 따지고, 그 자격과 천부인권의 권리를 맞교환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일조해 그 결과 남녀 모두에게 개인의 자유의지를 광범위하게 훼손합니다. 기존체제의 부당함에 저항하려는 이들의 자유도 같이 무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아직 사회적 발언에 대한 힘이 없는 어린 남성들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남성성 강요에 짓눌리게 만들고, 이에 대해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모두가 구조적 여성혐오의 일환이자 가부장적 질서를 벗어나려는 남성들의 권익에 반하는 것입니다.
산이의 랩 가사를 붙입니다. 제 이야기로 이제는 이 가사가 조금은 다르게 읽힐지 모르겠군요.
FEMINIST (Prod.Faust)
1)
I am feminist
난 여자 남자가 동등하다 믿어
봐 여잘 먼저 언급했잖아
엄마 아빠에서 엄마가 먼저 오듯
책도 한 권 읽었지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
멋진 말이었어
여잔 항상 당하며 살았어
우리 남잔 항상 억압해왔고 역사적으로도
But
여자와 남자가 현시점 동등치 않단 건 좀 이해 안 돼
우리 할머니가 그럼 모르겠는데
지금의 너가 뭘 그리 불공평하게 자랐는데
넌 또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남녀 월급 차이가 어쩌고저쩌고
f*cking fake fact
야 그렇게 권릴 원하면 왜 군댄 안 가냐
왜 데이트할 땐 돈은 왜 내가 내
뭘 더 바라 지하철 버스 주차장 자리 다 내줬는데 대체 왜
Oh girls don’t need a prince
그럼 결혼할 때 집값 반반 half
I’m no f*cking prince
나도 할 말 많아 남자도
유교사상 가부장제 엄연한 피해자야 근데 왜
이걸 내가 만들었어? 내가 그랬어?
Sister why mad?
blame system Not men
I am feminist2)
I am feminist
미투 운동 지지해 알지?
김감독 조배우 개*끼들
땜에 남자들 싸잡아 욕먹지
솔직히 but
그런 극단적인 상황 말고
합의 아래 관계 갖고 할 거 다 하고
왜 미투해? 꽃뱀?
걔넨 좋겠다 몸 팔아 돈 챙겨
남잔 범죄자 ㅈ 같은 법
역차별 참아가며 입 굳게 닫고 사는데
여성부 좀 뻘짓 좀 그만하고
건강한 페미들 위해서라도
먼저 없애야 해 남성혐오
워마드
거따 요즘 탈코르셋 (huh)
말리진 않어 근데 (but)
그게 결국 다 남자 frame (what?)
기준이라니 우리가 언제
예뻐야만 된다 했는데
지네가 지 만족 위해 성형 다 하더니
유치하게 브라 안 차고 겨털 안 밀고
머리 짧게 짤러 그럼 뭐 깨어있는 듯한
진보적 여성 같애?
Equality s*x?
nah that’s 열등감 man
난 니 긴 머리 좋아 don’t change
And I am feminist3)
난 여자 편야
난 여잘 혐오하지 않아
오히려 너무 사랑해 문제
너 포함 내 엄마 내 누나 내 여동생
있는 그대로 respect
난 절대 뉴스 기사 나오는 그런 루저가 아냐
난 절대 소리치거나 욕하거나 데이트 폭력?
난 절대적으로 인정해 남자들 잘못에
강남역 밤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자, 건배
어때 좀 다르지?
It’s okay 난 위험하지 않아
난 달라 날 믿어
괜찮아
I am femin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