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이 김상기님은 의료전문기자로 15년을 보냈으며, 현재 라포르시안 편집국장으로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여기.
첫 단추부터 왜곡된 건강보험제도
리승환: 대체 왜 파업이 일어난 건가?
김상기: 의사들은 의료영리화 정책 및 원격의료 저지, 건강보험제도 개선을 걸고 있다.
리승환: 의료영리화? 보통 민영화라고 하지 않나?
김상기: 사실 ‘영리화’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민영화는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 소유가 핵심인데, 이미 한국의 95%의 의료기관은 민간병원이기 때문이다. 또 민영화는 진보 진영에서 많이 쓰는 표현인데, 의사들은 좀 보수 집단이고 하다 보니까 그 용어에 좀 거부감을 가지는 측면도 있다.
리승환: 영리를 추구한다고 하면 의사 입장에서 좋은 것 아닌가?
김상기: 1977년 건강보험제도 도입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그 당시 사회보장제도는 매우 열악했고 북한과의 체제우월성 경쟁도 있어, 어떻게든 의료보험제도에 사람들을 많이 가입시켜야 했다. 그래서 보험금을 거의 걷지 못한 채 다수 국민을 가입시켰고 건강보험 재원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문제가 쌓이고 쌓여 지금의 왜곡된 구조에 이르렀다. 이렇게 왜곡된 건강보험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영리자회사를 통한 편법적 수익 활동을 추구하게 한다면 의료 왜곡만 더 심화시킬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사로 하여금 의료행위 이외의 편법적 돈벌이에 매달리게 만들 우려가 높다는 거다.
리승환: 건강보험 재원이 부족하면 진작에 의사들 다 망했어야 하지 않나?
김상기: 일단 비용에 비해 수가가 오르지 않은 게 문제다. 사실 예전에는 저수가로 인한 수익 손실 보전을 위해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도 많이 했고, 제약사 리베이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눈감아 준 면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에서 비급여와 리베이트에 대해 강하게 제약을 걸고 있다. 의사는 자연히 수익이 줄어들게 되고, 저부담(건강보험료가 적고), 저수가(의료수가가 낮고), 저보장(건강보험 보장 영역이 좁은), 이른바 3저 시스템을 적정 부담, 적정 수가, 적정 보장 체계로 바꾸는 개혁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돈 벌라고 하며 편법만 부추기는 정부
리승환: 그런데 정부가 외치는 ‘영리화’도 의사가 돈 더 벌 수 있게 해준다는 거 아닌가?
김상기: 정부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통한 수익이 아닌,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를 통한 수익 창출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의사협회에서는 오히려 현재의 의료체계를 왜곡시킬 뿐이라 반발하고 있다. 영리화정책은 근본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의사에게 편법적 수단을 동원해 먹고 살라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리승환: 편법적 수단?
김상기: 불법적이라는 건 아니다. 의료기관과 의료인의 본질은 의료서비스 제공이고, 정부는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적정한 진료를 제공하면서 경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의료행위가 아닌 다른 나머지 부대사업을 통해 돈을 벌라고 하니 편법적이라는 뜻이다.
리승환: 성형수술 등 비급여, 비보험 영역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김상기: 그쪽 영역은 정부에서 규제를 가하며 이미 조금씩 위축되고 있다. 건강보험보장성 확대를 이유로 조금씩 건강보험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확대하려는 부대사업이란 게 의료기기 임대·판임, 화장품 판매, 여행업, 건강보조식품 개발ㆍ판매 등이다. 본질적 의료행위와 관계 없는 것들로 돈 벌라는 거다.
리승환: 뭔가 기업 단위에서나 가능한 일 같다.
김상기: 사실 학교 법인에 소속된 큰 대학 병원 같은 경우 이미 그런 사업을 일부 허용하고 있다. 만약 정부의 개정안대로 영리자법인을 허용한다면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200~30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들이 대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외부자본, 기업자본이 들어올 수 있다. 이들은 당연히 수익을 추구하고, 그 대상은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환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의사의 역할, 그리고 의사의 삶
리승환: 역으로 생각해 보면 한국인들이 과잉진료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나 싶다.
김상기: 그건 원인과 결과를 어디에 놓고 보느냐의 문제다. 원래 동네 의원 찾고, 병원,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확립 안 됐으니, 대형병원을 찾는 거다. 대형병원도 저수가 구조 하에서 살아남으려면 박리다매로 규모를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박리다매만으로도 수익이 부족하니, 과잉진료가 생긴 것이고. 이를 두고 의사와 병원만을 비판하기는 힘들다.
리승환: 대형 병원도 박리다매면 어떻게 동네 의원이 살아남나?
김상기: 원래 동네의원이 해야 하는 역할은 주치의에 가깝다. 그러나 대형 병원부터 박리다매이다 보니, 자꾸 비급여 쪽으로 가고 있다. 강남 성형수술 병원만 해도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있는 경우도 많다. 특정 분야만 돈이 되니까, 자기 전문과목 간판을 내세우지 않고 비급여로 먹고 사는 것이다.
리승환: 그렇다면 대형병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상기: 중증질환 치료다. 또 대학 병원의 경우 의사 양성도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저수가 구조 하에서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외래환자를 끌어 모으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대학 병원이 하루 평균 외래 환자가 1만 명 넘었다고 홍보까지 할 정도로 경쟁이 심화됐다.
리승환: 실제로 의사 파산 사례가 많더라, 그 정도로 힘든가?
김상기: 사실 파산이나 폐업 규모에 대해 정확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되며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가뜩이나 병원이 과잉공급 상태이다 보니 찾아오는 환자는 줄어드는 시점에서, 경쟁만 격해지는 상황이다.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초기 개원시 더 좋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기 위해 은행대출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고, 여기서 나가는 이자 비용만도 만만하지 않다. 환자유치 경쟁에서의 비용부담도 높아졌다.
리승환: 그 잘나가는 의사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
김상기: 의사들이 먹기 힘들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확히는 양극화, 빈익빈부익부다. 예전 같은 경우 80% 이상이 잘 먹고 잘 살았다면 지금은 양극화 돼서 중간층이 없어지고, 아주 잘 되거나 힘들거나…
리승환: 특히 신규 개원의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상기: 최근 의사 파업에는 젊은 전공의들이 적극 가세하고 있다. 젊은 의사들 입장에서 교수가 될 확률은 극히 낮고, 새로 병원을 열어도 먹고 살 시장 구조도 안 되는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런 고민과 불안감 가지고 있다가 이번 파업에서 의료제도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며 제대로 터진 거다.
원격진료와 보장성 문제
리승환: 원격의료 이야기 좀 하자, 필요하긴 하나?
김상기: 원격의료가 완전히 불필요하지는 않다. 사실 현행의료법에서도 의료인과 의료인간의 원격의료는 허용되어 있다. 강원도 보건소.보건지소에 찾아오면 다른 멀리 있는 병원 의사와 진료상담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에서 추진하는 의사와 환자 간 직접 원격의료는 노인, 장애인, 도서산간지역에 있는 환자가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서도 원격지 병원 의사로부터직접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리승환: 뭔가 말만 보면 좋아 보인다.
김상기: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방식의 원격의료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원격의료가 허용이 되면 원격진료 전문 센터 같은 게 생겨날 수도 있다. 동네 의원들은 이제 그런 곳과도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원격의료를 동네 의원 중심으로 허용한다고 하지만, 법 개정이라는 게 한 번 규제가 풀리면 이후 범위가 넓어지기는 쉽다. 만약 대학병원 원격진료가 되면 동네 의원 가려 하겠나? 자칫하면 기존에 남아 있던 환자들마저 다 빼앗길 우려가 있다.
리승환: 한국의 의료비가 정말 저렴하기는 한가?
김상기: GDP 등을 다 따져봐야겠지만, 건강보험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가격 구조가 굉장히 싼 편인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주 문제가 없는 건 아닌 게…
리승환: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김상기: 1977년 의료보험제도 시작부터 적정 수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북한과의 체제우월성 문제가 들어가다 보니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가입시켜야 했다. 그런데 정작 국민소득은 낮아서 보험료를 많이 걷기에는 국민들의 조세저항이 두려웠다. 그러다 보니 보험료를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고, 건강보험 재정은 늘상 빈약했다. 그 결과 보장성이 낮아졌다.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모든 국민을 가입시키는 건 좋다. 하지만 보장성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큰 병에 걸리면 대학병원 가서 엄청난 진료비를 부담해야만 한다.
리승환: 결국, 건강보험 제도 개선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김상기: 솔직히 지금 모든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적정 수가로 가는 것밖에 없다. 그래야만 박리다매식 의료 서비스 문제가 사라진다. 환자들 상대로 15분이라도 제대로 진단하고 친절하게 상담해야 당장 아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예방의학적 건강 접근이 가능하다. 지금 저수가 구조로는 계속 편법적 수익 창출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의사 밥그릇 프레임, 진보도 반대하고 뜻을 모으고 있다
리승환: 그런데 왜 이리 해결이 안 되나?
김상기: 이 부분에 대해 좀 이야기가 힘든 게 항상… 적정수가란 이야기만 나오면 그 다음이 수가 인상, 의사들 밥그릇 챙기기 이야기가 나온다. 그 때문에 의협에서도 적정수가 문제는 뒷부분으로 빼고 원격진료, 투자유치 등 의료영리화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일간지에서 결국 수가 인상 요구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이 프레임에 걸리면 대중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의사의 돈 타령으로만 읽는다. 이 때문에 의사들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해하기 힘든게 건강보험제도나 의료제도의 문제점과 불만을 끊이없이 제기하면서 정작 의사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지적하면 늘 수가인상 타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리승환: 여론은 어떠한가?
김상기: 이번 여론은 좀 특이하다. 예전 같으면 의사들이 정부 상대 투쟁하건, 의료개선을 외치건, 저수가 지적하면, 대부분 여론은 또 수가인상이냐, 돈타령이냐… 이런 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굉장히 다르다. 참여연대가 사상 처음으로 의사파업 지지선언을 하는 등, 진보 시민단체가 힘을 보태고 있다. 의사협회와 대척점 관계에 있던 보건의료노조도 지지성명을 냈다. 다들 의협하고 갈등하는 사이였는데 연대하고 있다.
리승환: 참 보기 드문 광경이다.
김상기: 물론 의료영리화 정책 반대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 지점에서는 같이 서로 공통된 생각을 찾아낸 거다. 이 때문에 평소보다 여론이 확실히 우호적이긴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머지 절반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의사 집단 이기주의 같은 이야기 한다. 정부에서도 호도하는 측면도 있고.
리승환: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김상기: 맨날 인터뷰 하다가, 당해 보니 왜 손사래 치는지 알겠다.
의사파업 관련 참조 기사
burberry online shopNew York City’s First Burger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