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후에도 한참을 못 보고 있다가 드디어 봤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퀸 노래를 많이 들려주면서, 그 사이 사이에 스토리를 배치하느냐를 고민한 영상물, 즉 초장편 뮤직비디오에 해당하는 영화이므로 영화 자체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할 얘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내용이 사실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을 분들이 아무래도 80% 이상이라는 점에서, 왜 줄거리가 이렇게 짜여졌는지가 좀 의아해집니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앨범 출시가 퀸의 분열 내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했다는, 별로 믿어지지 않는 스토리가 왜 영화의 축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이죠.
일단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일 수도 있으니, 그만 보실 분은 여기에서 그만두시길.
0.
잠시 영화 진행 리마인드. 매니저 중 하나가 “CBS에서 400만 달러에 솔로 앨범을 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프레디 머큐리의 귀에 속닥거리죠. 여기 솔깃한 머큐리가 솔로 앨범을 내겠다고 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멤버들은 “너는 퀸을 죽였어!” “어떻게 상의도 없이!” 하고 흥분하고 등을 돌리고, 상심한 머큐리는 더욱 매니저의 말만 들으면서 앨범 작업만 합니다.
심지어 매니저는 라이브 에이드에 나가라는 말조차도 차단해서 알려주지 않고, 결국 전 애인인 메리가 나타나서 모든 걸 알려주기 전까지 머큐리와 다른 멤버들의 갈등은 깊어지기만 하고… 그래서 반성한 머큐리가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다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서고… 이런 스토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1.
퀸 멤버 중 솔로 앨범을 낸 건 머큐리 혼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머큐리가 첫 솔로 앨범 『Mr. Bad Guy』를 내기 전 로저 테일러는 이미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밴드 전체의 음악성과 별개의 ‘자기 음악 세계 실현’은 퀸 뿐만 아니라 많은 밴드에서 이뤄진 관행. 그러니 머큐리가 솔로 앨범을 낸다고 해서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니가 그럴 수가!”라고 분개하는 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신해철이나 김종서처럼 밴드를 버리고 아예 솔로 가수로 새 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2.
라이브 에이드가 85년 7월 15일의 일이니 영화상으로 표현된 심각한 갈등과 머큐리의 고립은 85년 상반기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85년 상반기 퀸은 84년 앨범 『Works』의 홍보를 위한 전 세계 순회공연 <Works Tour>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84년 8월 시작된 이 공연은 85년 5월 15일 일본 오사카에서 끝났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야 고작 2개월.
즉 실제로는 매일 같이 먹고 자고 비행기 타고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해서 다시 공연하고 먹고 자고 파티하고 하고 있을 시절인데 영화 속에서는 서로 얼굴도 안 보고 어딘가 따로 떨어져서 남남처럼 지내고 있었다는 얘기죠. 여기서부터 영화와 현실의 시간표는 완전히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3.
『MR. BAD GUY』 앨범은 83년부터 녹음을 시작해 85년 4월 29일 발매했습니다. 그러니까 머큐리가 이 시점에 솔로 음반 발매 계획을 털어놓고, 갈등을 빚고, 멤버들과 소원해지고, 라이브 에이드라는 것이 열리는 지도 모르고, 화해하고, 다시 라이브 에이드에서 멋진 공연을 펼친다는 건 몽창 지어낸 이야기인 거죠.
갈등이 있었다면 『The Works』 앨범을 녹음하기 이전의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83년쯤인데, 이미 그 갈등을 극복하고 <Works> 앨범을 내고, 같이 전 세계 투어도 다닌 다음인 85년의 라이브 에이드에다 이 갈등을 갖다 붙였으니 이건 실제 역사와는 영 딴판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4.
라이브 에이드를 앞둔 화해(?)의 조건이 “앞으로 모든 노래를 니 노래, 내 노래 나누지 말고 모두 퀸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수익분배도 1/4로 하자”는 것이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그 화해(?)의 산물로 나온 86년 앨범 『A Kind of Magic』의 첫 곡 One Vision은 작곡자가 Queen이죠. 그런데 막상 타이틀 트랙인 <A Kind of Magic>은 ‘로저 테일러 작곡’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역시 실제와는 영 딴판인 얘기인 셈입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A kind of magic> 라이브.
5.
퀸이나 핑크 플로이드가 위대한 점 중 하나는 10만 명씩 수용할 수 있는 웸블리 구장 같은 초대형 공연장에서, 어디서 들어도 훌륭한 음향 배치를 독자적인 기술로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어딘가 인터뷰를 보면 브라이언 메이가 이걸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함)입니다. 그런 퀸이 ‘라이브 에이드에 나오라’라는 요청을 받으면 ‘거기는 음향 시스템을 어떻게 해놨대? 드럼 세트 하나로 다 돌려써야 한다는데?’ 싶어서 참여를 주저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
아무튼 현실과 영화의 괴리는 이렇습니다. 그런데 영화 시나리오를 사전에 몰랐을 리 없는 퀸 멤버들이 왜 이런 요상한 갈등(?)을 영화에 넣는 데 반대하지 않았을까 매우 의문이 되네요.…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더 들더군요. 여기서부터는 아셔도 그만, 모르셔도 그만입니다.
1.
머큐리가 내놓은 문제의 솔로 앨범 『Mr. Bad Guy』의 수록곡 중에서 영화에 나온 건 단 한 곡입니다. 바로 <Mr. Bad Guy>죠. 머큐리가 폐인(?)이 되어가며 ‘다들 좋다는 얘기만 하는’ 녹음실에서 솔로 앨범 작업을 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뿜빰뿜빰 하는 그 곡의 전주가 잠시 흘러나왔죠.
(저도 아주 오래전 카세트테이프로 열심히 듣고 다녔죠. 곡들의 면면은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친구들은 모두 이 음반을 싫어했습니다. 물론 그 친구들은 퀸의 <Works> 앨범도 인정하지 않았죠^^)
2.
사실 이 앨범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곡은 많은 사람들이 그냥 ‘퀸의 노래’라고만 알고 있는 <I was born to love you>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곡은 다른 멤버들이 반주를 다시 녹음해 머큐리 사후 발매 앨범인 『Made in Heaven』에 슬쩍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것도 처음에는 일본 발매분에만 넣은 곡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 보시면 반주가 두 가지입니다. 머큐리 솔로 앨범 버전은 전자악기 중심의 약간 저렴한 듯한 반주고, 퀸의 리메이크 버전은 처음에 천둥소리가 나면서 메이의 기타 사운드가 울려 퍼집니다. 아무튼 뭔가 께름칙한 부분이 있었는지, 웬만한 히트곡은 다 들어 있는 퀸의 『Greatest Hits』 1, 2, 3 앨범에도 이 곡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곡’이라고 족보를 제대로 찾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3.
<Mr. Bad Guy> 전주가 잠시 나오는 것 이외에,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밴드의 곡은 아마도 Dire Straits의 <Sultans of Swing>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서기 전, 퀸이 대기 중일 때 이 곡의 일부가 잠시 들리죠. 실제로 Dire Straits는 퀸의 바로 앞 순서는 아니었습니다. 2팀 전이었죠. 그런데 이런 것까지 정확하게 재현한 이 영화의 스토리가 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뭐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 스토리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노래가 주인공이고, 노래가 열일하는데 말입니다.
원문: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