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장을 변비로 오진한 의사 3명이 법정구속 되었다. 의료계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 당장 전국의사총궐기를 예고했다.
사실 의사들이 궐기한다고 바뀔 건 없을 거 같다. 법정에서 받은 실형 선고를 집회로 바꿀 수 있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상고에서 이기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궐기대회를 여는 건,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몸짓의 의미가 크겠다(뭐 여러모로 난관에 봉착해 있던 의협 집행부 입장에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기도 하다).
보라매 안락사 사건, 이대 지질영양제 분주 사건, 그리고 이번 사건까지 의사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굵직한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구속을 비롯한 자유형이 일어난 경우, 거기에 더해서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동질감이 드는 경우다.
쉽게 말해 이렇다. 의사로 살다가는 나 또한 구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들 때 극렬한 반감을 보인다. 자유형이 아닌 벌금형은 액수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런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사건을 심도 있게 살펴볼 자료가 부족하지만, 언론에 나온 판결문 인용에 따르면, 해당 의사들 잘못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형사처벌도 이상할 건 없다. 고의가 없더라도 과실이 있다면 처벌 대상이다. 물론 고의보다는 처벌수준이 낮겠지만, 과실 중에서는 높을 수밖에 없다. 업무상 과실로 들어가기 때문.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같은 직종에는 보통보다 높은 주의의 의무를 요구하는데 그게 업무상 과실이다. 사람 생명이 달린 만큼 항상 집중해 달라는 사회의 요구다. 따라서 업무상 과실은 일반 과실보다 처벌 수준이 높다.
여기서 요구되는 주의의 의무는 일반적인 의사들의 주의수준이 될 텐데, 이 사건의 의사들은 보통의 주의수준에서 봤을 때도 과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처벌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그 처벌 수준이 연루된 의사 모두를 법정구속했다는 점이다. 유례없는 일괄 자유형 선고가 이뤄졌다. 의사들이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거나,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거나,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업무상과실치사만을 이유로 전부 실형을 선고했다면, 이 판례가 앞으로 사회에 끼칠 혼란이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이다.
환아의 주 호소는 복통이었다. 인간이 그렇다. 복통 환자를 보면 생각이 배에 먼저 꽂힌다. 차라리 답이 안 보이면 다른 가능성도 고려하게 되는데, 뭔가 단서가 보이면 오판하기 쉽다. 복부 사진에서 변비 소견이 보이면 정답을 찾았기에 다른 가능성을 살피지 못한다. 편견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변비 처치로 증상이 호전된다면 더욱.
나도 소싯적에 x-ray를 찍어 놓고도 환자의 손등뼈 골절을 놓친 적이 있다. 환자가 손가락을 다쳤다며 그 부위의 통증만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실금이라도 놓칠까 봐 손가락 하나하나 미세한 라인까지 훑어내렸지만, 정작 눈에 띄게 두 동강 난 손등뼈는 눈뜬장님인 양 그냥 지나쳤다. 편견이 끼면 마가 씐다. 뻔한 것도 안 보인다. 당연히 나중에 환자에게 사과하고 빌고. 힘든 나날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흉부 x-ray는 찍어놓고도 아무도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애초에 그 사진을 보고 싶은 의사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처방 자체는 응급실 루틴 오더였을 거 같다. 일단 찍긴 했지만 배 아픈 환아니 흉부 사진을 굳이 확인할 필요를 못 느꼈을 터. 대개 배 아픈 환아의 흉부 x-ray는 복막염(panperitonitis) 감별을 목적으로 찍는지라, 그 부분만 대충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호흡곤란이 없다면 흉부 사진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응급실에서 쓸데없이 루틴을 찍어놨다는 생각에 흉부 촬영은 보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해당 의사들의 부주의로 환아는 탈장을 진단받을 기회를 수차례 박탈당했다. 제대 진단되었다면, 빠른 치료로 사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 의료수준에서 소아가 탈장으로 수술도 못 해보고 죽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탈장을 의심하기 어렵다는 건 핑계다. 누군가 한 번이라도 흉수의 존재를 눈치채고, 흉수 처치의 일반적인 프로토콜을 따라갔다면, 그 과정에서 탈장이 자연스럽게 진단 내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3명의 의사가 안일하게 진료하여, 아까운 생명이 치료받을 기회를 잃었다. 그 결과 아이가 죽었다!
그럼에도 자유형을 선고하는 건 과했다고 생각한다. 의료과실은 가능한 민사로 해결하고, 형사처벌을 하더라도 가능한 벌금형 등이 내려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배상 액수를 늘리더라도.
의사들이 업무상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를 가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직업의 특성상 죽는 환자를 계속 상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생명이지만 의사들에게 날마다 되풀이되는 반복일 뿐이다. 환자를 100명 1,000명 계속 보다 보면 긴장이 무뎌지는 게 인간의 습성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졸리는 게 인간이다.
생명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과실이 자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건 가혹하다. 나 또한 손등뼈의 골절을 놓쳤을 때 구속될 수 있었단 얘기니까. 이런 판결이 나오면 의사들은 아무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생명을 다루는 메이저 과를 전공하는 의사는 더욱 그렇다.
방어 진료는 기본이고 안 좋은 환자는 폭탄 돌리듯 전원시키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바이털을 다루지 않는 피부나 성형외과로 의사들이 몰려간 지도 오래다. 이번 판결로 이런 세태가 더욱 고착화될까 우려된다.
첨언
이 사건의 진료기록 요약을 두 가지 버전 정도 보았다. 비교적 상세한 내용이었지만, 그걸로도 모든 정황을 판단하긴 무리였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환자의 진료기록을 어디서 구했냐’다. 병원에서 모탈리티 콘퍼런스를 할 때도 인적사항은 가리는 법이다. 외부로 유출되지 않아야 함은 기본이다.
판결문에 있는 만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옳다. 어떤 방식으로든 진료기록을 확보했다면 그 자체로 불법이다. 진료기록 공개는 물론 진료기록 확보도 불법이고. 심지어 진료기록에 접근해 열람한 자체도 불법이다. 우려가 크다.
원문: 조용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