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사주면서 앞으로 이것 때문에 후회할 일이 많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그러나 사줘야 할 이유도 있었고 아이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피처폰이 아닌 스마트폰을 선택했죠.
예상대로 아이와 이런저런 갈등이 있습니다. 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게임 하는데 사용하는 것,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오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달려가는 것, 폰을 보는 자세 때문에 생기는 건강에 대한 걱정들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죠. 그럴 때는 스마트폰을 괜히 사줬나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군요. 그런데 동시에 30여년 전 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당시 개인용 컴퓨터가 막 보급될 때였는데, 친한 친구집에 패미콤이란 컴퓨터가 있었고, 또 다른 친구집에는 SPC-1000이란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가끔 놀러가는 친척 형네는 애플 II가 있었구요. 물론 컴퓨터가 없는 집이 훨씬 많을 때였습니다만, 그 컴퓨터들을 만지고 게임 몇 판 하고 오면 신세계를 경험한 느낌이었습니다. 꼭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부모님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꽤 오래’ 졸랐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3년 이상 졸랐던 것 같군요.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컴퓨터가 없는데도 애플 II 기초에 대한 책(지금도 생각나는 빨간색 표지)을 사서 시스템 명령어며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익혔는데 그것만으로도 재미 있었습니다. 그래도 안 사주시더군요. 안 사주는 이유는 ‘그거 사주면 맨날 게임만 하고 공부 안 한다’는 익숙한 이유였습니다.
컴퓨터를 갖게 된 건 그 한참 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때는 이미 컴퓨터에 대한 흥미가 어렸을 때보다는 많이 떨어졌고 입시에 대한 부담 때문에 몰입할 수가 없었죠. 지금도 가끔 이 기억을 떠올리며, 만약 부모님이 내가 처음 졸랐을 때 컴퓨터를 사줬다면 내 인생진로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같은 상상을 합니다. 업계에 전설처럼 들려오는 ‘천재 개발자’가 되었다거나 뭐 그런.
만약 그때 컴퓨터를 사줬더라도 부모님의 걱정처럼 게임만 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게임 외에도 더 많은 가능성을 컴퓨터에서 찾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리고 설사 한동안 밤새우며 게임하고 컴퓨터에 몰입했다고 해서 이후 내 인생에 결정적인 추락이 생겼을까 자문해봐도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걸 경험하며 또 뭔가를 배웠겠죠.
이런 생각을 거치다보니, 첫째가 스마트폰을 쓰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겪는 갈등은 — 분명한 건강상의 피해를 제외하고는 — 부모로서의 기우가 대부분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둡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가 주는 재미와 “실생활이 주는 재미“가 경쟁하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넷 세상과 디지털 게임 속에서는 거의 제한 없는 상상을 손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직접 실생활 속에서 재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두 가지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아이와 생활하며 즐길 수 있는 실생활 속의 재미를 복합적인 방법(디지털+아날로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고, 둘째는 가정 내에서의 올바른 디지털 기기 사용습관을 나부터 익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전자는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후자에 관해 제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 함께 식사할 때는 주변에 핸드폰을 놔두지 않는다. 가족들의 핸드폰을 모아두는 공간을 마련해서 그곳에 모두 함께 보관한다.
- 함께 식사중이거나 대화하고 있을 때는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을 확인하지 않는다.
- 핸드폰을 항상 손에 쥐고 있지 않는다.
- 습관적으로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새 글을 확인하지 않는다.
-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는다. 가족을 확인한다.
- 함께 식사중이거나 대화하고 있을 때 전화가 오면, 정말 중요한 전화가 아니면 받지 않는다. 받는 경우,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다(사실 제일 지키기 어려운 사항이다. 그러나 한참 재밌는 얘기 중에 누군가 전화를 받으러 나가버렸을 때 경험한 불쾌함을 떠올려보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고, ‘전화가 오면 무조건 받는다’는 원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잘 지킬 때도 있고 깜빡 잊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계속 노력해야죠. 그러나, 내가 이렇게 지키기 때문에 너도 지키라고 아이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걸 지킬 때 아이가 잘 볼 수 있게 분명한 행동으로 — 평소보다 큰 제스추어랄까요 — 표현하려고는 합니다.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보면 알겠죠. 그래도 최소한 제 습관은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원문: 공부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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