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유례 없는 선거 러시 지구멸망의 해 2012년
2012년, 세계 각국의 지도자가 바뀌는 해이다. 북한은 올해 4월부터 ‘청년 대장’이 인민을 영도하게 되었고, 중국 역시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였으며 미국에서도 제2기 오바마 정권이 등장하게 된다. 한국은 곧 다가올 12월 19일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한국과 오랜 불화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은 같은 달 16일 총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번 일본 총선거의 결과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으며 정권을 잡고 있던 민주당은 폭삭 가라앉았다. 하나 다른 것은 여론의 예상에 비해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것뿐이다.
일본의 2012 총선, 상상을 뛰어넘는 자민당의 압승
12월 6일 아사히 신문은 여론조사를 통해 자민당은 과반을 훨씬 뛰어넘는 272석(선거 전 118석)으로 약진하고 민주당은 현재의 230석에서 81석으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자민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은 요미우리,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등 다른 성향의 신문에서도 동일했다.
그리고 실제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자민당은 단독으로 288석(정수 480석)을 획득하였으며 계속해서 연립정권을 꾸려온 공명당의 의석을 합치면 323석에 이른다. 이것만으로도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한 의원정수 2/3를 넘어섰다. 반면 민주당은 50여석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해서 2009년 이후 3년 반만에 다시 정권을 잡게 된 자민당은 어떤 당인가?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자민당은 흔히 고이즈미나 아베 전 총리로 대표되는 극우파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아시아 외교와 관련해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악질 정치인’의 집합소와 같은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자민당은 그렇게 단순하게 묘사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 일본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듯이 이 정당은 1955년 창당한 이후 무려 40년 가까이 수권정당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의 처참한 패배를 딛고 부활한 정당이기도 하다.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일본의 정당에서 한국의 정당이 배울 수 있는 점은 없을까? 뻔뻔한 새누리당과 답답한 민주당이 자민당과 일본 정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물론 일본은 의원내각제(양원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 하의 한국 정당정치와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을 떠올려보자. 참여정부는 많은 실패를 반복해 왔는데 그 원인은 정권 자체에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대립으로 정치적 자원을 소모한 정당정치 역시 문제였다. 여소야대 정권에서는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과 같은 존재는 등장하기 어려우며 애초의 구상대로 정권을 이끌기도 어렵다.
이는 현재의 대선 국면에서 각자가 누구를 지지하든간에 주목할 만한 문제이다. 자기가 뽑은 대통령이 강력한 정당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현되기 어렵다. 사학법의 처리과정을 떠올리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정치 하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이 ‘잘 받쳐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자민당의 장기집권과 몰락의 과정을 살펴보고, 이번 총선에서 이루어진 자민당의 화려한 부활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정당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1. 55년 체제: 자민당 영광의 시대
먼저 도표를 하나 보자.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후 첫 총선인 제28회 선거(1958년)부터 2005년에 이르기까지, 자민당은 단 한 번도 1당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 사이에 의석 비율이 43% 이하로 내려간 적도 없다. 자민당은 1993년 이전까지 단독정권을 유지해 왔으며, 93년 총선으로 성립한 호소카와 내각 이후 치루어진 41회 총선부터는 다시 공명당 등과 함께 연립정권을 수립하여 2009년까지 정권을 유지해왔다. 햇수로만 따지면 합계 53년에 이른다.
이 장기집권의 시기 중에서도 55년부터 93년 이전까지의 일본 정치를 이른바 ’55년 체제’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일본 정치는 자민당의 정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서 쩔쩔매는 동아시아 다른 국가의 정치가들 입장에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에 의해 반세기 넘게 정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합법적인 독재’일지도 모른다. 아니나다를까, 일본 내 중국 전문가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중국 공산당은 장기집권의 모델로서 일본의 자민당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권창출을 세끼 밥보다 더 좋아하는 정치가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사례인 자민당은 어떻게 해서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양한 요인들을 들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이 자민당의 장기집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일컬어진다.
(1) 경제성장: 이익유도의 정치
전근대 국가에서 통치에 필요한 정통성이 왕권 등의 혈통에서 비롯되었다면, 근대 민주주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부강한 국가’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목표가 노골적으로 제시되며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국가일수록 국민의 지지를 얻기 쉽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자민당의 장기집권 시기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지속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했기 때문에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정답은 아마도 두 가지가 상호작용을 했다는 것일테다.
자민당은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조달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조달된 지지를 유지 및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경제성장을 통해 급격하게 증가한 국가의 재원은 자민당 정권에 의해 전후 복구 및 다양한 공공사업, 특히 토목공사에 투자되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권화되었고, 자민당은 지역구 의원을 매개로 하여 해당 지방에 필요한 사업을 유치하는 대신 강력한 지지세력을 확보했다. 이것이 이른바 ‘이익유도의 정치’라 불리는 일본정치 특유의 구조이다. 이는 이명박 정권이 당선된 이유에 가깝기도 하다. 다만 한국의 경우에는 소수가 다 처먹어서 문제이지만.
(2) 강한 야당의 존재: 1과 1/2의 정당제
위의 이유와 함께 자민당 장기집권의 비결로 꼽히는 것이 강한 야당의 존재였다. 적어도 80년대 말까지 일본의 야당, 특히 사회당과 공산당은 비교적 큰 지지를 얻고 있었다. 자민당과 보수정당이 의석의 2/3를 점한다고 했을 때, 나머지 1/3은 이러한 혁신 야당이 차지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했다. 이들 당은 자민당의 위협이 되지 않을만큼의 의석을 점하면서, 좌파 성향의 유권자들을 흡수함으로써 보수 대 혁신이라는 구도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1과 1/2의 정당제’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조는 자민당에게 불리하기보다는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혁신 좌파 정당을 ‘과격파’로 보는 상당수의 유권자들, 이른바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결집시킴으로써 정당의 지지기반은 더욱 확고해질 수 있었다. 또한 강한 영향력을 가진 야당과 합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 간의 기구인 ‘국회대책위원회’를 통해 이른바 ‘국대정치(國對政治)’로 혁신세력과 면밀한 협의를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은 혁신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정책으로 반영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다시 자민당의 지지 및 집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3) 파벌의 존재: 포괄정당으로의 전환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 공산당은 국내외 환경이 변화하는 속에서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할 모델로서 일본의 자민당을 연구했다. 이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강력한 파벌의 존재이다. 55년 체제에서 자민당은 단일한 하나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작은 정당이 모인 ‘연립정당’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는 자민당이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의 이른바 ‘보수합동’에 의해 결성된 정당이라는 데에서 연유한다. 55년 이전까지 존재했던 다양한 보수 정당들이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으로 결합하고 이들이 하나로 뭉쳐지면서 정당 내에 다양한 파벌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는 한 파벌의 우두머리로서 총리로 임명된 의원이 지지를 잃었을 경우에 다른 파벌의 우두머리가 총리가 됨으로써 이른바 ‘유사 정권교체’의 효과를 가질 수 있었다.
한 당 내에 동시에 다양한 성향의 파벌이 공존함으로써 자민당은 한국의 어느 정당과 같이 좁은 스펙트럼을 유지하기보다는 보다 폭넓은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이후 자민당의 아시아 외교는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55년 체제 하에서는 한국이나 중국 등의 국가에 비판적인 의원과 우호적인 의원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폭넓은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국내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기업 및 경제인과 농촌에 강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던 자민당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기존에 야당을 지지하던 도시의 유권자들도 포섭할 수 있었다. 이를 흔히 자민당의 ‘포괄정당(catch-all party)’화라고 부른다.
2. 자민당 장기집권의 비결: 민주당에 주는 교훈
이상으로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20여년 전까지 장기집권을 했던 일본의 정당이 한국의 정당에 대해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먼저 인정해야 할 점은, 2012년 한국의 상황에서 더 이상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조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산업구조 자체가 3차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새로운 성장동력도 찾기 쉽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 누군가가 주장했던 7%성장이 가능할 리 없다. 노동임금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기업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고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재화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의 규모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예전과 같이 정부 재원을 통한 이권 나눠먹기로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기 어렵다. 고도 성장을 하고 있을 때에는 국민 전체의 경제생활 수준이 향상되기 때문에 일부에게 더 많은 이득을 분배하는 일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복지’가 화두를 이루었던 것도(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잊혀졌지만) 바로 그러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아마도 이러한 ‘사기’가 가능했던 마지막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번에 대선을 치르는 정당은 어느 쪽이 됐든 간에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야당의 문제를 살펴보자. 모든 국가의 정당정치에 적용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일본의 경우를 보면 ‘너무 강력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견제하는 야당’의 존재가 장기집권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 전제가 되는 것은 야당이 사회의 진보-좌파 세력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이념적 성향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야당이 보수적 성향을 띠기 시작하면 자민당과 같은 보수정당의 지지자를 흡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현재 한국의 유사 양당제 구조가 ‘강한 야당’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새누리당-민주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사 양당제 구조는 기본적으로 ‘중도-보수’에 이르는 폭넓은 지지자들을 두 정당이 나눠서 가지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보-좌파적인 세력이 본격적으로 정책을 펼 수 있는 ‘힘 있는’ 정당이 없기 때문에, 양당 중 조금 왼쪽에 있는 정당이 그 세력들을 조금 흡수하는 대신에 많은 수의 중도층을 오른쪽에 있는 정당에 빼앗기게 된다. 이 문제는 다음에 지적할 ‘넓은 스펙트럼’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세 번째로 파벌 이야기를 했지만 파벌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의 지지확보에 있어 ‘넓은 스펙트럼’이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다수 유권자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는 되도록 많은 유권자들이 만족할 만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때 그 중심점은 되도록 그 사회의 이념적 성향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좋다. 미국의 경제학자 해롤드 호텔링이 제시한 ‘호텔링의 정리(Hotelling’s law)’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호텔링이 제시한 예는 다음과 같다. 해수욕장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두 사람 있다. 이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해변을 절반으로 나누었을 때 각각의 중간점에 위치한다. 그런데 이들 중 A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반대쪽으로 이동하면, B는 원래의 자리에 있더라도 A에 의해 손님을 빼앗기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두 아이스크림 장수는 해변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설명을 정당정치에 투영하면 해변은 유권자의 스펙트럼, 두 아이스크림 장수는 양대정당, 아이스크림 장수의 위치는 정당의 정강/정책이 드러내는 이념적 성향이 될 것이다. 이는 양당제의 경향이 강한 국가에서 왜 두 정당의 정책이 중도적인 방향으로 가까워지는지를 설명한다.
한국의 상황에서 보자면 전체 스펙트럼에서 A, B, C 세 종류의 정당들이 존재하며 A와 B가 중도-보수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그러나 B는 좌파의 성향도 일부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의 확대를 노리기 어렵다. 간단히 말하자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에게 밀려나는 아이스크림 장수에 가깝다는 것이다(위 그림 2번 참조).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보다 보수적 성향을 강화하여 새누리당을 밀어내든가, 아니면 왼쪽으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왼쪽으로 옮겨갈 경우에는 지지층의 확대를 노리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행동은 자신과 대칭되는 야당이 세력을 확대하는 동안 스스로는 보다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북한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전략이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성향이 변화하고 있고 이에 발맞추지 않으면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에 의해 ‘중간점’을 빼앗기고 들러리로서의 야당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안철수의 높은 지지율은 국민들이 정당정치 시장의 중심점에 대해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너무 왼쪽으로 치우친 정책을 바라지 않지만 반대로 오른쪽으로 가 있는 정당을 지지할 생각도 없다. 이러한 한국 국민들의 지향성은 이미 대선 전에 ‘상충적 유권자’의 등장으로 드러난 바 있다(EAI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한국사회의 이념 무드의 변동과 정치적 함의>, 2011.04).
민주당은 이러한 변화를 잘 읽고 지금처럼 야당을 선거 때만 사용하는 ‘비판적 지지’ ATM이 아니라 건설적인 관계설정의 대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이정희를 국무총리로 (…..)
3. 자민당의 몰락과 부활: 한국 정당정치에 주는 시사점
반대로 자민당의 몰락과 부활에서도 한국의 정당정치가 배울 부분이 있다. 자민당의 몰락은 기본적으로 세계의 정치경제적 환경이 급변한 것에 기인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고이즈미 정권 이후 ‘작은 정부’를 표방한 개혁이 전통적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대다수 국민들은 정당정치 시장의 중간점을 표방한 민주당에 표를 줬다. 그러나 제도적 요인을 보자면 1996년 일본이 시행한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제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 지역구에서 2명 이상의 의원을 당선시키는 제도를 중대선거구제라고 하며 지역구 당 1명의 의원만을 당선시키는 제도를 소선거구제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정당정치는 중선거구제였다. 이렇게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사표심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혁신 정당에게도 표가 가게 되며 따라서 다양한 정당에게 의회진출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 이것이 가진 문제점이 부각되었고 96년에는 본격적으로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를 시행한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의원만을 선출하기 때문에 사표심리가 작동하기 쉽고 따라서 거대정당이 당선자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자연스럽게 정당정치의 양당제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민주당은 세력을 확대하기 쉬웠고 2009년의 역사적인 정권교체도 가능하게 되었다.
한국은 군사정권 하에서의 특정 시기를 제외하면 줄곧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왔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된 민주화 이후부터의 흐름을 보면 한국의 정당정치에서 양당제화의 경향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2004년 비례대표제가 시행된 이후에는 소수정당이 지분이 약간 확대되었다).
자민당은 양당제화되어 가는 정치상황 속에서 전통적 지지층을 잃고 선거에서 패배했다. 2009년의 선거에서 자민당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노동조합의 침략을 허락하게 된다. 일교조(한국의 전교조와 비슷한 조직) 때문에 교육이 엉망이 된다”는 식으로 대대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내세웠다. 그리고 보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는 선전을 통해 정당정치의 시장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는 처절한 패배였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자민당이 내세운 공약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현재의 디플레를 동반한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무제한에 가까운 양적완화, 3% 성장률을 목표로 한 대규모 공공사업(도로 정비, 200조엔 규모의 SOC투자), 헌법개정,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칭 변경 등.
현재 일본 총선을 보도하는 언론에는 주로 ‘극우화’ ‘우경화’ ‘독도에 강경자세’ 등의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물론 자민당이 예상외의 대승을 거두었고, 일본의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일본유신회가 약진(11->54석)했다는 점은 충분히 우려해야 한다.
일본의 보수화 경향은 명백하며 이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한국에서 가장 주시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의 언론이 그다지 짚고 있지 않지만) 다음의 세 가지라고 본다.
(1)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아직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59%대로 역대 최저 투표율 수준이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은 많은 수의 일본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당이 집권한 2009년 총선의 투표율이 69.28%에 이르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명백하다.
이번 선거는 대지진과 원전 사고의 수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어떤 정권이라도 이런 역사적 대사건의 수습이 어려웠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에게는 일종의 페널티이다),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국정운영에서 미숙함을 많이 보였다는 점,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들을 종합적으로 심판한 선거였다. 반대로 말하면 자민당은 본인들이 잘해서 표를 얻은 것이 아니다.
(2) 일본은 양원제이며 참의원(상원)의 절반을 선출하는 통상선거가 2013년 7월로 예정되어 있다. 자민당이 자만하여 국정운영에 실수가 생긴다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중의원(하원)에서 통과시킨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을 높이고 자민당의 국정운영이 실패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어질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꼭 승리하리라고 보장하기 어렵다. 양당제 경향이 강화된 현재의 일본에서는 자민당의 실패가 민주당의 정권 탈환으로 이어지기 쉽다.
(3) 마지막으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의 건강 문제를 들 수 있다. 2008년 당시 아베 총리가 사임했을 때의 명목상의 이유는 건강 문제였다. 이는 단순한 핑계가 아니었으며 외신에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만약 이번의 정권교체를 진두지휘한 아베 정권이 건강 상의 문제로 퇴진하게 된다면 그 뒤를 이을 정권은 복잡한 책임문제에 휘말릴 것이다.
이처럼 양당제화가 뚜렷하게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정권의 몰락과 부활이 그 정권의 ‘결과’보다 전 정권의 실패에 대한 심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번 총선에서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는 자민당이 ‘보다 오른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주어진 표라기보다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으로 주어진 표에 가깝다. 그리고 일본 정당정치의 ‘공백’은 주변국과의 마찰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키는 형태, 즉 ‘일본유신회’라는 정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
대선을 앞둔 한국의 두 정당 역시 앞으로 선택의 기로에 설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현 상황을 보면 아직 양대정당의 공백이 존재하며 안철수 현상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새누리당은 이른바 ‘좌클릭’으로 정당정치 시장의 중간지점을 확보하려 했고 민주당 역시 왼쪽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생겨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당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중도-보수는 김빠진 맥주와 김빠진 콜라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부당한 선택 앞에 놓여 있다. 양당제화가 심화되면 이러한 ‘빈틈’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개인적인 예상으로 이번 대선이 새누리당의 패배로 끝난다면 이들은 ‘좌클릭’이 아니라 보수적인 색채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차기 대선에서 필요한 것은 이념에 기반한 대립이 아니라 중간지점의 확보, 달리 말하면 안철수 현상의 정당화이다. 이 문제는 대선이 끝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대선의 준비기간이 시작된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