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역설적이다. 카카오택시를 규탄하기 위한 택시 파업을 한 지난 10월 18일, 카카오택시의 경쟁 차량호출 앱 서비스인 ‘타다’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는 ‘타다’ 서비스를 처음으로 썼다는 간증이 줄을 이었다. 실제 ‘타다’는 직접 다량 구매한 카니발 차량에 깔끔한 정장 차림의 운전 기사분들을 직접 고용해서 서비스를 운영한다.
필자도 카카오택시로 차량배차가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비자발적으로 타다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나서 깨달았다. 카카오택시 말고도 새로운 옵션이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문은 자동문으로 스르르 열리고, 핸드폰 충전기도 종류별로 제공되고, 심지어 차내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 기존 택시와 비교 안 되는 높은 서비스 경험을 안겨다 준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기술이 가져다준 편리함에 인간은 너무나 빠르게도 적응하고 만다는 것을. 파업해도, 정책으로 규제를 해도. 편리함과 효율성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기술의 관성은 거스를 수 없다. 생각해보라. 스마트폰의 폐해를 외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2007년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서 스마트폰을 도시인들의 손에서 강제로 빼앗을 수 있을지 말이다.
신석기 혁명 이후로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기술의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의 역사였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거대한 흐름을 역행하려는 몸부림은 미래의 인류 입장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질 듯하다.
자동차는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진화 중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산업혁명의 본론을 자동차 산업이 터뜨렸다. 지금이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라면, 자동차 메이커 “포드”의 T모델의 대량생산으로 상징되었던 것이 2차산업혁명이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4차산업혁명도 자동차가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새로운 개념으로 재창조되어서 말이다.
자동차는 이제 제조되는 상품으로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경험이 중심에 놓인다. 자동차는 소유되기보다는 공유되고, 제품이라기보다는 서비스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에서 모빌리티 서비스(Mobility As A Service, MAAS) 변화하고 있고, 이미 이 변화는 대세로 굳어지는 중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어졌고, 필자도 저서 『스마트폰으로 코끼리 사기』에서 수차례 강조한 바이기도 하다.
중국 모바일 혁신을 상징하는 공유 자전거 서비스 모바이크는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에 힌트를 제공해준다. 모바이크는 2년 만에 보유 자전거 150여 대에서 800만 대 규모로 급성장했다. 현재 중국 사람들의 습관은 2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자전거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사용하는 콘셉트로 말이다.
과거 자전거 제조 브랜드는 어떻게 변했는가? 모바이크와 같은 공유 자전거 플랫폼 기업들의 외주 제작사로 전락했다. 물론 자신들의 브랜드를 붙여달 엄두도 못 내고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자전거 소유욕을 사실했으니 제품에 대한 브랜드 파워는 무의미해진 이유에서다.
자동차의 미래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 변화가 더 점진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결론은 같을 것이다. 최근 수년간 우버와 디디추싱의 기업가치 성장세만 봐도 얼마나 이러한 추세가 대세로 자리 잡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격, 즉 기업가치만큼 확실한 평가방법이 없지 않나?
우버 기업가치는 2013년도 약 4조 원에서 2014년 상반기 약 19조 원을 기록하고, 2014년 하반기에 그 두 배가 넘는 약 50조 원을 찍었다. 지금은? 약 130조 원이 넘는 가치로 골드만삭스의 상장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전 세계에 130조 원이 넘는 기업가치의 자동차 회사는 도요타 하나 말고는 없다. 모든 자동차 브랜드 제조사가 우버보다 더 작은 회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테슬라와 우버를 모두 혁신적 자동차 연관 기업으로 꼽으면서 모두 찬양할 때 필자는 우버에 긍정적, 테슬라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기준은 뚜렷했다. 데이터를 중심에 두고 가치 판단한 것이다. 우버는 데이터를 가지고 놀고, 데이터를 자산으로 삼는 회사다.
반면 테슬라는 여전히 자동차를 제품으로 접근하는 제조업 회사였다. 결국 현재 테슬라의 성장성은 제조업의 한계에 갇힌 상황이다. 자동차 제조사들과 생산량과 수율, 그리고 제품력으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엔 중국의 전기차 회사들의 도약으로 사면초가 상황에 놓였다고 판단한다.
자동차를 모빌리티 서비스로 재해석하고 있는 우버는 제조업체 간 치열한 경쟁을 즐기면서 모빌리티 최종 소비자인 모바일 유저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자율주행의 신기한 경험은 테슬라가 가장 세상에 먼저 알렸지만, 본격 수혜는 우버를 필두로 한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이 누릴 가능성이 높다.
불가피한 미래, 빠르게 적응해야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에겐 완전 자율주행은 그야말로 엄청난 축복 아닐까? 거꾸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운전 기사님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다. 운전을 업으로 삼는 기사님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작금의 인공지능 자율주행 기술의 빠른 진보와 확산은 참으로 직접적인 생계의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인류 역사상 거꾸로 역행한 적이 없는 명백한 메가트렌드다. 절대 한번 편리함에 중독된 인류는 더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 결과가 얼마나 현 체제에 파괴적이든 간에 말이다.
자동차의 등장 이전을 생각해보라. 마차를 이끌기 위해 수많은 말이 필요했고, 이동수단으로서의 말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엔진으로 작동되는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말의 개체 수는 급감했다. 지금 이 시점에도 동일한 파괴적이고 시대 전환적인 변화가 이뤄진다. 자동차는 더 이상 사람이 운전하면 안 되는 시대가 급속도로 도래하는 것이다.
완전자율주행의 시대는 트럭에서부터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음주운전, 졸음운전, 운전 중 딴짓 등 인간의 잘못된 운전습관이 야기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공지능 자율주행 시스템의 도입이 하나둘 확산될 것이다. 이런 변화가 불가피한(inevitable) 미래라고 한다면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베팅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뱅크의 매우 과감한 미래 길목 차지하기
위에 지속해서 언급한 시대 변화적 기업인 우버뿐 아니라 중국의 우버에 해당하는 디디추싱, 동남아의 그랩, 인도의 올라까지. 전 세계 모빌리티 산업을 지배하는 지역별 1등 차량호출 앱 플랫폼 기업의 1대 주주 혹은 2대 주주를 소프트뱅크가 차지한다.
소프트뱅크를 근 10년째 집중 분석하는 필자에게 손정의 회장의 우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은 참으로 처절하게까지 느껴졌다. 손정의 회장은 우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전방위 포위전략을 펼쳤다. 우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세계의 지역별 1등 업체에 엄청난 투자금을 퍼부으며 ‘반 우버 전선(anti-uber alliance)’을 확고히 했다.
우버에 투자제안을 할 때 손정의 회장이 제시한 두 가지 옵션은 손자병법의 계략에 가깝다(실제 손 회장은 손자병법의 찬미자다). 우버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거의 10조 원에 가까운 소프트뱅크의 막대한 투자금을 받아서 세계 1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소프트뱅크는 동일한 금액을 경쟁사들에 투자해서 우버 타도 전선을 공고화할 것이었다. 당연히 우버의 이사회는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고야 말았다. 최근 소프트뱅크의 실적 발표 전면에는 우버와 디디추싱, 그랩, 올라가 자리 잡았다.
소프트뱅크는 정보혁명의 시대를 1999년부터 외쳐온 회사이다. 2000년에 과도한 투기적 본성으로 소프트뱅크 주가를 수백 배 끌어 올렸다가 다시 원점으로 끌어내리면서 손정의 회장은 70조 원 이상을 단숨에 날려 스스로를 역사상 유래 없는 루저로 만들었다. 하지만 손정의 회장의 메시지는 거의 20년 만에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지금 진행되는 혁신의 크기는 과거 신석기 혁명, 산업혁명에 비견될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다. 인간 경제활동의 근간이 변화하고, 기억하고 소통하고 판단하는 방식 또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길목을 차지하고 지대를 추구하려 하는 것이 손정의 회장의 투자 전략이다.
새로운 종의 탄생: 대기업과 벤처캐피털의 혼합
최근 소프트뱅크의 전략 발표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시대의 변화 속도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기업 전략이 필요하다는 포인트다. 손정의 회장은 ‘스스로 업계 1등을 추구하는 것이 전통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 방정식이었다면, 정보혁명 시대에 적합한 성공 방정식은 각 영역별 1등을 길러내고 고속 성장을 잉태하고 가속화하는 투자 지주회사가 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는 주장을 한다.
과거 대기업은 자신이 지배하려 하다 보니 항상 51%의 지배권에 집착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20~30% 지분율을 이상적 영향력 행사를 위한 방정식으로 제시한다. 충분한 이해관계 일치만 되면 충분하고, 과도한 지분율은 창시자들의 창업 마인드를 해치고 혁신을 저해한다는 관점에서다.
소프트뱅크는 300년 비전을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투자한 대상 기업의 창업자와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정보혁명의 리딩하는 1등 기업을 키워내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충분한 성장을 만들어내서 성숙한 단계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혁신과 성장의 공간이 제약되고 그렇다면 기존 투자 포지션을 청산하고 창업가와도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한다.
이런 방식의 기업이 과연 전통적 관점에서 대기업인가, 아니면 거대한 규모의 벤처캐피털인가 혼란스럽기도 하다. 아니 이러한 혼동은 손정의 회장의 의도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성공적 기업은 대기업도 벤처캐피털도 아닌 그 중간의 무언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뚜렷한 비전과 방향성도 지니지만, 과도하게 지배하지 않고 역동성과 창조력을 극대화하는 조직구조를 추구하는 것이다.
과거 대기업이 95%를 자신의 유기적 성장에 집중하고 신사업을 위해 5% 투자했다면, 소프트뱅크는 95%를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실제 소프트뱅크가 설정한 110조 원 규모의 비전 펀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단일 펀드로 기록되고 있다. 이유가 어쨌든 손정의 회장은 기네스북 제조기다. 사상 최대 단기간에 부를 까먹은 사람으로, 또한 가장 큰 펀드를 설립한 사람으로 말이다.
빠르게 적응해야 도태되지 않는다
다시 카카오택시로 돌아와 보자. 한국의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버와 디디추싱이 그 서비스의 깊이와 품질을 극강으로 올려놓는 경쟁을 하는 와중에 한국에선 불법과 합법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기술 변화에 적응 안 하는 건 선택이 아니다. 적응 못 하는 건 곧 도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우리가 반대해도 세상의 조류는 그대로 흘러간다. 지금 시대에 뚜렷한 가치판단 기준이 존재한다.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를 활용하는가? 데이터를 자산으로 축적하는가? 데이터를 중심에 둔 경제정책, 데이터를 중심에 둔 의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래야 적응하고 도태되지 않는다.
원문: 정주용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