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유치원 비리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대강 읽어보았는데요, 글의 서두는 대강 이렇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비리 문제로 학부모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중략) 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중략)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강력한 처벌과 투명한 회계시스템 및 감사 체계 도입을 대책으로 검토하고 있는 듯합니다. (후략)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하고 뻔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킹갓헬렐렘페러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후반에 나와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분명한 것은 국가가 감독과 통제를 독점하거나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경우 자칫 유치원과 어린이집 운영이 경직화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창의적인 운영과 교육이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자유당에서도 그렇고 조선 같은 언론에서도 ‘보수주의’를 다시 미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아마 이 정부의 경제정책이 부동산, 고용 등에서 삐걱대는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보수주의라는 게 이런 것이라면 뭐… 날 샜다 싶습니다.
시장을 중시하는 것은 물론 좋습니다. 시장은 효율적이고 창의적이고, 정부는 경직되어 느리고 획일적이고. 중고교 경제 수업만 들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만큼 중요한 대원칙이기도 하죠. 하지만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 교육의 공공성입니다.
뭐, 어려운 이야기죠. 교육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공교육 체계는 정말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하고 있는가, 수월성/효율성/창의성과 공공성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나오는 질문이 한 아름이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차치합시다.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국공립 유치원, 어린이집의 필요성
영유아 보육 및 교육에 대한 요구는 과거에는 이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70-1980년대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이후였고요. 1990년대 들어서야 유아교육의 공적 체제를 확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미 자리 잡은 기존 보육 시설과의 갈등으로 실패했죠.
이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당장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가 한 방에 날아간 게 사립유치원 대회에 가서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연설한 바람에(…) 그랬죠. 사립유치원이 조직적으로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막는다는 건 비밀도 아닙니다.
그래서 현재 국공립유치원 비율은 24.5% 수준으로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유치원의 수월성, 효율성을 먼저 고려한다는 건 좀 핀트가 많이 빗나가 있죠.
우리는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일부 (특히 상류) 계층에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취약계층에는 빈약한 교육만을 제공한다면 계층의 격차는 더 커질 것입니다. 여기에 뭐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도 덤이고요.
그리고 또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공교육 체계는 육아와 교육의 책임을 개인으로부터 국가, 공공시설로 이양하는 역할도 합니다. 유치원, 어린이집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까닭이 또 여기 있다 할 텐데요. 그동안 영유아의 교육과 보육은 여성, 엄마의 역할로 맡겨져 왔습니다. 이것이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고 경력단절을 일으키는 큰 요인이었어요.
성 평등 인식이 높아지고 여성 또한 남성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마땅한 목표가 된 오늘날,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할 당연한 권리가 된 것입니다. 국공립 유치원, 어린이집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된 시대입니다.
창의적인 운영과 교육, 말은 좋습니다
보육 시설끼리 서로 경쟁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참 좋을 겁니다. 하지만 보육 및 교육은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는 영역이기도 하죠.
일반적인 서비스는 한 곳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곳으로 가 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런 소비자의 ‘선택’이 있기에 시장의 ‘경쟁’도 작동할 수 있지요. 심지어 의료 분야 등 경직적인 분야도 이런 소비자의 ‘선택’은 어느 정도 작동합니다. 임예인 내과 가던 사람이 임대가르시아 내과 간다고 임예인 내과에서 못 가게 붙들진 않거든요.
하지만 교육은 다릅니다. 내가 원하던 서비스가 아니라고 해서 쉽게 옮길 수가 없습니다. 담임 맘에 안 든다고 무슨 슈퍼 가듯이 전학 갈 수 있나요. 심지어 보육은 더하죠. 그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같이 영유아 대상 서비스가 되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영유아들은 이 서비스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다른 서비스를 제공받겠다고 ‘요구할’ 만큼 성숙된 인격체가 아니에요. 심지어 학대를 당하면서도 그게 학대인 줄 모르고 서비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국가가 감독과 통제를 강화하면 운영이 경직화되어 창의적인 운영과 교육이 방해를 받고 어쩌고저쩌고… 이건 너무 일차원적인 시장주의 사고 아닐까요. 소비자의 선택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메커니즘이 작동할까요.
또 한 가지 문제, 보육교사의 처우
영유아보육시설에서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보육교사의 처우입니다. 일의 난도는 너무 높고 휴식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데 그에 비해 처우는 좋지 않아요.
사실상 영리를 추구하는 사립유치원 등에서는 보육교사의 처우를 좋게 해줄 유인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의 서비스업종이라면 모르겠지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소비자의 ‘선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든요. 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선에서의 최소한의 서비스가 가장 합리적이죠.
물론 사립이 만악의 근원은 아닙니다. 킹갓헬렐렘페러 김병준 위원장의 말처럼 사립은 공립이 시도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운영과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안학교들이 그러하듯이, 또 어떤 고가 보육 시설 등이 그러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립이 탄탄한 기반이 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모든 영유아를 위한 기초적인 교육 및 보육 서비스가 제공되고 부모들이 거기 아이를 맡길 수 있을 때에야 ‘더 나은 보육 서비스’ ‘더 창의적인 교육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요? 국공립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립은 아동학대와 질 낮은 서비스로 심각한 불신을 조장했습니다. 부모들은 국공립 유치원,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경쟁합니다. 그나마 믿을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니까요. 이 상황에서 “창의적인 운영과 교육이 방해받을 우려”라니, 현황을 너무 잘못 보고 계신 거 아닌가요. 아니면 일부러 못 본 척하고 계시거나.
사립유치원 일부에선 폐원까지 거론하며 협박을 합니다. 사실 중장기적으론, 아니, 심지어 단기적으로도, 그냥 폐원시키고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몰라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없는 정치적인 이유가 백만스물두 가지 정도 되겠지요.
그래도 굳은 인식은 필요할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창의적 운영이니 운영의 자율성이니 심지어 사유재산이니(…) 하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빠른 국공립 비율의 강화라는 것을요.
한편 문제의 글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려있더군요. 자유당 지지층의 심각한 수준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유치원 운영은 좌익의 돈주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리나라의 현실
이래서 우리나라는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천교육대가 필요합니다
굉장한 댓글들이었습니다. 이분이 말씀하시는 3천교육대는 3,000명이 아니라… 검거된 것만 6만 명, 개중 4만여 명이 군으로 인계되었다는군요. 한편 인계 과정에선 44명이 사라졌다고… 정말 참 완전 필요한 기관입니다?
원문: 임예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