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의 스캔들
2014 소치 올림픽,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여자 피겨스케이팅 무대는 스캔들로 얼룩졌다. 김연아가 깨끗한 연기를 펼쳐보이고도 은메달에 머무른 것.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피겨스케이팅의 복잡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이 스캔들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만큼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바로 직전 세계선수권 우승자가 완벽한 경기를 펼쳤는데, 올림픽 개최국의 10위권 선수가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건 마치 2012년 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렸는데, 완벽하게 연기한 카나예바를 누르고 실수를 범한 손연재가 금메달을 딴 것과 비슷한 일이다.
어쨌든 사람들이 그렇게 시끌벅적 이야기를 하니 다른 한쪽에서는 뭐가 그렇게 시끄러우냐, 알고보면 소트니코바가 금메달 딸 수도 있었던 거 아니냐, 뭐 이런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즈의 엉터리 기사
뉴욕타임즈는 몇 편의 기사를 통해 소치 올림픽의 여자 피겨스케이팅 부문 결과를 전했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거둔 의외의 승리는 설명하기가 어렵다(Adelina Sotnikova’s Upset Victory Is Hard to Figure)‘라는 기사에는 소트니코바의 승리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는 커트 브라우닝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는 캐나다의 TV 해설자이자 그 자신이 4차례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위대한 피겨스케이팅 선수이기도 하다.
한편 ‘어떻게 소트니코바가 김연아에게 승리했는가, 동작별 분석(How Sotnikova beat Kim, move by move)‘라는 기사를 통해서는 소트니코바가 더 고난이도의 점프를 선택했고 스핀과 스텝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그 승리를 설명했다. 이 기사는 소트니코바의 승리를 정당화한 것으로 평가되었는데, 사실 기사의 질이 너무 엉망이었다.
사실 이 기사는 분석이랄 것도 없고 분석의 수준도 조악하다. 이 스캔들은 “어떻게 소트니코바의 기술이 김연아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가”가 핵심인데, 신문은 그냥 “소트니코바의 기술이 김연아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대답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론 판정 스캔들과 별도로 점수표의 세부 내용을 전달하는 건조한 기사로서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으나, 분석의 틀이 엉터리라 그런 의미조차도 퇴색된다.
이 기사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진짜 기술적 분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2-3 컴비네이션 점프 비교다. 소트니코바는 더블 악셀 – 트리플 토루프 점프를, 김연아는 트리플 살코 – 더블 토루프 점프를 놓고 비교했다. 그러면서 소트니코바가 2회전 점프 중 가장 어려운 더블 악셀을, 김연아가 가장 쉬운 더블 토루프를 뛰었으며, 소트니코바의 점프 도입과 높이, 비거리 등이 더 좋았다며 소트니코바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숨이 나오는 분석이다. 더블 악셀 – 트리플 토루프 점프와, 트리플 살코 – 더블 토루프 점프는 다른 기술이다. 그러니까, 다른 메커니즘으로 구사하는 기술이다. 도입 자세가 서로 다른 게 당연하다. 비유하자면, 두 역도 선수의 기술을 분석한답시고 한 사람은 인상을, 한 사람은 용상을 자료화면으로 가져다놓고 “이 사람이 더 빨리 역기를 들어올리므로 이 사람이 기술적으로 우월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꼴이다.
그나마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당연히 ‘같은 기술’을 놓고 분석했어야 했다. 두 선수 모두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루프 점프를 구사하므로, 두 점프를 놓고 비교했다면 적당했을 것이다. 아니면 똑같이 트리플 플립 점프를 구사하니 이 두 점프를 놓고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물론 그렇게 분석했다면 소트니코바의 승리를 설명할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뉴욕 타임즈의 엉터리 기사는 당연하지만 종종 망각하곤 하는 사실 하나를 환기시켜준다. 아무리 무게있는 언론이라 해도, 언론의 모든 기사가 자동으로 그 무게에 걸맞는 권위를 갖는 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물론 다양한 정보에 접할 기회가 많긴 하겠지만, 기자는 만물박사가 될 수 없고 그렇게 스스로를 여겨서도 안 된다. 한국의 언론이야 오역에 오보를 매일 쾌변같이 쏟아내니 그렇다 쳐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뉴욕 타임즈마저도 엉터리 기사를 내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소트니코바가 더 많은 3회전 점프를 뛰었다?
더불어 몇몇 영미 언론에서 “소트니코바가 3회전 점프를 7개 뛰어, 6개 뛴 김연아보다 하나 더 뛰었으므로 이기는 게 맞다”고 분석한 것도 마찬가지로 한숨이 나오는 분석이다.
이 논리는 국내 인사들도 그대로 받아들여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지희 부회장도 같은 이야기를 했으며,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가 연 ‘소치올림픽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체육계의 문제점’ 긴급토론회에서 이준호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감독이 익명의 피겨 평론가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결과를 설명하는 건 일차원적이고 수준 낮은 분석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3회전 점프를 8개나 뛰었다. 게다가 개중에는 여성이 뛸 수 있는 점프 중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트리플 악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분석대로라면 아사다 마오가 적어도 5~6점 이상 여유있게 1위를 차지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는 3회전 점프라 해서 다 같은 3회전 점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3회전 점프는 악셀, 러츠, 플립, 루프, 살코, 토루프 등 메커니즘이 여섯 가지나 된다. 그에 따라 점수 차이도 확연하다. 가장 어려운 트리플 악셀은 기본점수가 8.5점이나 되지만, 가장 쉬운 트리플 토루프는 4.0점밖에 안 된다. 또한 같은 점프를 뛰어도 그 수행 수준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각각의 기술에 수행 등급을 매기고 점수를 가감한다. 같은 3회전 점프라도 점수차이가 크다.
실제 소트니코바와 김연아의 기술 기초점 차이는 일부 인사들이 얘기하는 것만큼 크지 않으며, 약 1점대에 불과했다. 게다가 소트니코바의 기술적 하자나 김연아가 뛰는 점프의 완성도를 고려할 때, 그 기초점 차이는 사실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트니코바에게 주어진 홈 어드밴티지가 심판들로 하여금 두 사람의 기술적 완성도 차이를 무시하게끔 만들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그 하자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조악한 분석틀이 자꾸 나오는가? 그것도 아마추어가 아니라 미국 NBC의 해설위원이니, 국제 심판이니 하는 전문가들 입에서 말이다.
아마 그건 분석이 먼저고 결과가 나온 게 아니라, 결과가 먼저고 그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분석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엉터리 결과를 정당화하려 하니 엉터리 분석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피겨스케이팅 뿐만이 아니다. 사후분석은 늘 이런 위험성을 내포하며, 복잡한 사안에 대해 단순한 원인을 제시하는 사후분석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 경우가 많다. (살인사건을 일으킨 이유가 이스 이터널을 했기 때문이라든가.)
더불어 피겨스케이팅을 위해서는 심판의 판정이 엉터리라고 말하는 게 궁극적으로 올바른 해답이겠지만, 스포츠라는 가면 뒤에 숨어있는 진짜 얼굴 – 그들끼리의, 오직 그들만을 위한 정치를 위해서는 어리석은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당장 그 자신이 국제 심판이기도 한 빙상연맹 이지희 부회장이 ‘감히’ 판정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기대일 것이다.
기왕 까는 김에 알고 깝시다
뉴욕타임즈의 엉터리 분석 대신 보다 엄밀한 분석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몇 가지 추천할 글이 있다. 당연히 이 상황에 가장 분노하고 있을(…) 김연아 팬사이트 ‘피버스케이팅’에서 편파판정 관련 자료를 모아놓았으니 참고할 만하다.
김연아의 팬사이트에서 모은 자료인만큼 김연아에게 유리하게 치우쳐져 있을 가능성을 우려한다면, (영어의 장벽을 뚫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인사이드 스케이팅(InsideSkating.net)의 기사가 자세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두 가지 글 모두 피겨스케이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내용이 많은 고로, 개중 쉽게 와닿을 만한 내용 두 가지를 추려보았다.
첫 번째는 PCS의 급등 문제다. 피겨스케이팅 점수에는 PCS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데, 이건 원래 스핀이나 점프 같은 구성요소에 붙는 점수가 아니라 스케이팅 기술 등 기본적인 기술 수행 수준에 붙는 점수라 경기 내용에 관계없이 점수 편차가 크지 않다. 그런데 소트니코바는 1년 동안 14점이나 점수가 급등했다.
예를 들어 ‘기본 스케이팅 기술’ 항목 점수를 보면,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는 10점 만점에 7점대를 받았던 게 2014년 올림픽에서는 9점대로 올랐다. ‘기본’ 스케이팅 기술 점수가.
두 번째는 점프의 질 문제다. 피겨스케이팅의 점프는 6종으로 나누어지고, 스케이팅날 전체로 뛰는가 날 끝을 찍어서 뛰는가, 어디로부터 도약력을 얻는가, 도약력을 얻는 메커니즘에 따라 날 바깥쪽을 쓰는가 안쪽을 쓰는가 등이 다르다.
소트니코바는 개중 러츠라는 점프를 잘못된 메커니즘으로 뛰는 선수다. 실제로 그동안 출전한 대회에서 늘 잘못된 점프라는 뜻의 ‘롱 엣지(Wrong Edge)’ 판정과 그에 따른 감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뜬금없이 똑같은 점프가 제대로 뛴 점프로 채점이 되고, 감점은 커녕 가점을 받았다.
이외에도 편파 판정을 의심할 만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만 바로잡혔더라도 김연아가 넉넉한 차이를 두고 소트니코바를 눌렀을 것이다. 아마 피겨스케이팅 관계자들은 피겨스케이팅이 축구처럼 인기 스포츠가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규칙을 잘 모르고 이 스포츠를 감상한다는 데 안도할지도 모른다. 아니,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스캔들을 기획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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