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안 갈 이유가 있나요?
언제나 균등한 제품의 퀄리티가 보장된다.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정확한 수치로 계산된다. 사소한 상황까지 계산된 매뉴얼은 고객이 겪을 불편을 최소화한다. 여기에 대기업 특유의 서비스 기획력이 더해지면 굳이 다른 곳을 갈 이유를 찾기 어려워진다.
대형마트가 그렇다. 소규모 상인이 갖지 못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제품을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발품을 팔 필요 없이 다양한 브랜드가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다. 그것마저 정말 귀찮다면 본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당일 배송되는 신선한 음식을 받아볼 수도 있다.
대형마트의 존재 여부는 지역 집값의 변동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경기도 하남의 경우 신세계 그룹의 ‘스타필드’가 들어선 이후 아파트값 상승률이 15%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경기도 평균(7%)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사람들에게 대형 마트는 마치 학교, 도로, 항만과 같이 일종의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더 편해지면 더 좋은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지방에 대형마트나 대형마트에서 운영하는 SSM이 새로 들어선다고 하면 설립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린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한다고 눈치를 봐야 할 필요가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시식도 해볼 수 있다. 대목마다 할인 이벤트, 사은 이벤트가 열리니 자주 갈만한 동기도 충분하다. 주차 걱정도 없고, 제품의 질도 보증되어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통계도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다. 9월 광고경기전망지수(KAI) 조사에 의하면,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한 상품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62.4%)이었으며 가격이 저렴하다는 응답(12.4%)도 적지 않았다. 재래시장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주차 문제(57.2%)가 가장 높았고, 정찰제 판매가 아니라는 점(25.4%), 제품의 질(9.6%), 소량구매의 어려움(7.8%) 등이 꼽혔다.
이런 의미에서 대형마트는 더 많이, 더 멀리 생겨야 하지 않을까? 지역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렵지 않게 장을 볼 수 있도록. 굳이 멀리까지 5일장, 7일장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도록. 하루에 얼마 없는 버스 타고 무거운 짐 들고 먼길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집 앞에 더 많은 ‘프렌차이즈’가 생기면 이 모든 게 해결되는 것 아닐까? 특히나 일할 곳이 없다는 지방의 경우, 일자리 창출도 하고, 그야말로 창조경제 아닌가?
아니, 이는 서울 내지 수도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프렌차이즈 생태계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있다면 이런 오해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지방은 점차 빈곤해지고, 서울은 계속해 부유해진다. 이것이 지역에 프렌차이즈 매장이 없어서일까? 글쎄.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지방이든 서울이든 지금도 계속해 프렌차이즈 매장이 생겨나고 있고, 그 비율은 지방의 인구 대비 결코 적지 않은 것 같다. 롯데리아를 예로 들어 보자. 전국 1347개 매장 중 수도권에 위치한 매장은 단 604개뿐이다. 대한민국 인구수의 절반인 약 2,560만 명의 인구가 사는 곳인데 말이다.
다른 프렌차이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편의점은 지방과 서울을 가리지 않고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이는 다른 업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방과 서울의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린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방에서 벌어들인 돈을 서울에 있는 본사가 가져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도촌불균형이 큰 문제가 되는 시점에 지방이 살아날 기회를 만들기는커녕, 대기업이 이 불균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이다.
지방의 소멸은 곧 국가의 존폐와 연결된다
그래서 그게 무엇이 문제냐고? 이는 곧 지방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읍면동 3곳 중 1곳은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학교는 문을 닫는다. 분교가 아니라 폐교다. 아이들은 인근 대도시로 유학을 간다. 이런 늙어버린 마을에 사는 아이와 청년들은 어떻게 자라게 될까. 같은 나라에서 같은 세금을 내고 살아감에도 지역민들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박탈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내면화된 박탈은 앞으로 계속해 한국사회에서 갈등의 핵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또한 낙후된 지역은 게토화되고, 이 지역들이 점차 늘어난다면 궁극적으로 한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라. 아시아의 사룡 중 하나로 꼽히던 싱가포르는 결국 국토와 인구의 한계로 성장을 멈추고 말았다. 만약 지역을 버리고 대한민국의 서울의 나라로 만들 셈이라면 글쎄,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도 싱가포르와 그다지 다르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은 서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경남의 한 군이 소멸된다고 했을 때, 부산광역시 역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지역의 대도시들은 주변 지역으로 인해 존재할 수 있었다. 영남의 수많은 읍면동들로 인해 존재할 수 있었던 부산의 큰 병원이나 대학들도 연쇄적으로 존폐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더 멀리 보자. 서울이 낮은 출산율에도 경제적 부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타 지역의 인구를 계속해 흡수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인구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면? 서울은 인구를 재생산해내지 못하고, 인구 절벽은 곧 서울까지 낭떠러지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생할 수 없는 지역들에 투입될 세금 역시 천문학적인 액수일 것이다. 지방소멸의 문제는, 곧 국가 존립의 문제다.
사회적 경제와 마을 기업
물론 지역 자생을 위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광주에 위치한 송정역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현대카드는 지난 2015년 쇠퇴해가던 광주 송정역전매일시장을 새롭게 개선해 지역 살리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한계는 명백하다. 이런 식으로 한 기업이 모든 지역을 케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것만이 본질적이면서, 또 모범적인 방법이다. 주민이 없는 곳도, 지자체가 없는 곳도 없으니까. 지역주민이 외부의 지원이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자원을 이용해 소득과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만큼 완벽한 것이 없다. 이는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경제’의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인구절벽을 마주한 강원도의 사례를 보자. 정선군과 같은 곳은 최근 25년 사이에 인구가 무려 50% 감소했다. 강원도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의 일례인 마을 기업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루미가 우는 곳, 뚜루뚜루 철새교실
철원에서 활동 중인 마을 기업 ‘뚜루뚜루 철새교실’이 대표적이다. 두루미가 우는 소리를 의성화해 이름이 붙여진 뚜루뚜루 철새교실은 농촌의 자원을 바탕으로 학교 교육과 연계된 교육프로그램 활동을 제공할 뿐 아니라, 쌀 생산에서부터 가공 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체험농장이다.
뚜루뚜루 철새교실에서는 ‘두루미가 먹는 오대쌀’ 뚜루뚜루오대쌀을 상품으로 내걸고, 지역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체험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쌀, 미니 파프리카 수확 등의 1차 산업 체험, 천연 비누 만들기, 에코백 염색 등의 2차 산업 체험, 레포츠 레프팅, 일제강점기-6·25 유적 관광가이드 등이 3차 산업 체험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일명 ‘6차 산업’을 펼치고 있다.
뚜루뚜루 철새교실이 처음부터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번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오픈 이후 몇 년은 적자가 계속됐다. 철원은 아마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장소는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이들도 많지 않다. 그러나 뚜루뚜루 철새교실과 이병희 대표는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흑자를 만들어냈다.
뚜루뚜루 철새교실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ㅍㅍㅅㅅ와 직접 만난 뚜루뚜루 철새교실 이병희 대표는 이렇게 얘기했다.
기존 철원 지역의 체험 프로그램은 많이 식상했어요. 하지만 저는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쌀에 주목했죠. 돈이 안 될 테니까요. 지금은 필요 이상으로 예술과 문화가에 집중하죠. 뚜루뚜루가 교실이 아니라 외부를, 현장을 찾는다는 것도 다른 곳과 차별되는 점이죠. 겨울에 논에 가서 놀면 두루미와 자연에 대해서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는 뚜루뚜루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뚜루뚜루의 좋은 점은 자연이에요. 철원의 겨울과 철원의 새, 철원의 생태.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죠. 철원의 꽃이 엄청 예뻐요. 그뿐인가요. 철원의 별과 풀, 나무. 정과 마을과 농촌, 쌀과 비무장지대. 이제는 평화지대가 되겠죠. ‘비무장지대가 좋아.’는 제가 뚜루뚜루를 처음 시작하며 쓰기 시작했던 슬로건이에요.
이병희 대표는 철원이 가진 장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지역 외부의 지원과 자원이 아니라 철원만이 가진 자원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 고민 끝에 뚜루뚜루는 내적 자원을 통해 수입을 만드는 성과 있는 마을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테마, 브랜드 이런 걸 하나도 몰랐을 때요. 그냥 (마을기업으로서의 뚜루뚜루를 성장시키고 싶은) 생각만 있었죠.
우리의 마을기업에 청년들이 필요한 이유
물론 이병희 대표의 고민도 적지 않다. 인구절벽을 맞이한 강원도와 철원에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농민들은 생산에만 집중하면 좋죠. 하지만 가공도 해야 하고, 체험도 해야 하고, 팔기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젊은 친구들이 오면 좋죠. 젊은이들은 다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으니까요.
그는 마을기업이 젊은이들을 단지 고용하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도 말한다.
농민의 역할은 생산이에요. 젊은이들이 기획하고, 운영하고, 투자를 받고 만들 수 있어야죠.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도 그래요.
지역에 있는 많은 젊은이는 여전히 서울에 본사를 둔 기업과 프렌차이즈의 분사로 향한다. 하지만 그것이 꼭 정답일 수는 없다. 그럴수록 지역은 더 가난해질 것이고, 지역 출신 청년들은 경쟁력을 갖기 힘든 서울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청년이 마을기업으로 방향을 옮긴다면 청년들도, 지역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프렌차이즈에 취업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의 프렌차이즈 속에서 낙향하는 것은 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쉬움 속에 모두가 머지않아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은 뻔히 보이는 결과다. 지역이 꼭 서울의 프렌차이즈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마트가 없어도, 편의점이 없어도 지역은 생존할 수 있다. 아니, 의존하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 서울의 대기업 프렌차이즈에 기대지 않고 자생하는 것이 눈앞에 놓인 지방소멸과 인구절벽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서울공화국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다. 대학도, 기업도, 문화도, 정책도 모두가 서울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지역마저 그 흐름을 따를 필요는 없다. 지역은 지역의 자원을 통해 생존할 수 있고, 또 생존을 넘어 성장할 수 있다. 뚜루뚜루의 지금 모습처럼 말이다. 다른 많은 마을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꼭 서울에서 내려온 프렌차이즈에 취업하지 않아도 우리는 살 수 있다. 뚜루뚜루가 그랬던 것처럼, 서울의 대기업이 지원하지 않더라도 지역의 힘으로 자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한 마을 기업이었으면 좋겠다. 뚜루뚜루 이병희 대표의 마지막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다.
온라인을 하면 좋겠지만, 거기에 매달릴 수 없죠. 행사도 해야 하고, 교육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청년들이 우리 뚜루뚜루의 CEO가 된다면 어떨까요? 분명 달라질 겁니다.
※ 해당 기사는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