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대답들 가운데 일부가 대중의 편견을 자극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다른 어떤 원리보다도 더욱 긴요하게 애착을 요하는 헌법의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생각의 원리다. 우리에게 동의하는 사람을 위한 자유로운 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말이다.”
– United States v. Schwimmer (1929, 미 연방대법관 홈즈의 소수의견)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이 사건 진행과정에서의 정치적 하이라이트는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과정이고, 사법절차는 부차적인 것이라 본다. (필자가 사법절차의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1심재판과정에서든, 위헌정당해산심판 과정에서의 변호인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필자가 존경하는 변호사 선배분들께서 모두 각 사건에서의 소송대리를 맡고 있고, 그 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민주당, 완벽하게 진 프레임 전쟁
이 사건의 진행과정서 많은 진보진영 인사들이 체포동의안 처리에 대해서 반대했다. 체포의 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들도 있었고, 내란음모에 대한 충분한 증거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진보당 일부의 ‘의견’정도를 가지고 보수 프레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야당의원들 중에서 일부도 체포동의안의 반대, 기권, 무효에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다수 의원의 생각이 ‘종북프레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정치적 고려가 이러한 의견들을 압도했고, 결국 새누리당과 정부가 원하는 대로 체포동의안이 처리됐다. 여기서 민주당의 정치적 고려에 대해 실망한 진보진영이 민주당과 재차 거리를 두게 되는 불화를 남기게 된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큰 손실일 것이다.
체포동의안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새누리는 종북 몰이에, 민주당은 종북 프레임에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을 썼다. 정치적으로 새누리당의 완벽한 승리이다.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통해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에 대해서 야당이 원하는 개혁의 프레임으로 부터 한발짝 떨어진 이른 바 ‘국정원 자체 개혁’의 프레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민주당을 ‘국정원 개혁과 같은 민생에 중차대하지 않은 이슈만 파이팅하고, 민생개혁엔 항상 발목잡는 정당’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게다가, 이석기 의원 자체를 종북의 상징, 이석기 의원의 민혁당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사면하는데 관여한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이자 야권 단일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 의원을 최소 종북의 방조자로 엮어내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민주당은 이 사건을 통해서 얻은 것이 거의 없다. 2012. 4. 총선에서의 약진의 상징인 야권연대의 프레임도 ‘종북연대’라는 프레임 속에서 깨지게 되었다. 게다가 가칭 ‘안철수 신당’ 탄생에 따른 정치적 위기까지 생각하면, 민주당으로서는 127석을 얻었지만 127석의 가치를 그만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민주당이 18대 국회에서 89석을 얻었다가 127석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민주당의 패배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너진 기존의 야권 프레임, 새로운 흐름은 없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종북이라는 기존의 프레임에 대해서 시민들의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크게 세 가지의 ‘민주-진보 개혁 정치’의 프레임의 변화를 느끼게 됐다.
첫째, 시민들이 더 이상 통합진보당이라는 ‘낡은 좌파’의 프레임에 대해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 통합진보당에 대한 프레임은 종북이라는 딱지도 문제이거니와, 당내 부정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결합된 것이라고 본다. 이번 1심판결과 위헌정당심판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나던 간에, 통합진보당은 더더욱 존재가치가 위축될 것이다.
물론 법원에서는 선거법위반등 법률위반의 점에 대해서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레임 전쟁에서는 더 이상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기존의 야권연대의 프레임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 단순한 정치공학적 연대만으로는 야권연대라는 명분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야권연대의 틀이라는 것 또한 구정치의 프레임의 한 단면일 뿐이다.
현 정치체제가 소선거구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불완전한 대안’일 뿐이었다.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비롯한 선거구제 개혁을 통한 대안정치 모델이 여럿 있었음에도, 18대 국회내에서의 합의 도출을 통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정치적 한계를 야당으로서는 체험하게 되는 것 뿐이다. 그 상황에서 정치적인 한계를 가진 야당의 돌파구로서 야권연대의 틀의 한계를 새롭게 보여준 셈이 되었다.
셋째,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이 원하는 새 정치의 프레임 요구에 따라 대두되는 신당 역시, 새 정치의 프레임을 짜나가는 방식이 여전히 ‘야권연대’라는 기존의 정치공학적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
신당의 추진 세력 역시 기존의 틀을 무시하고 새로운 틀을 짜나갈 수 없다는 정치적 한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당이지만 신당같지 않다는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입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속에서의 다양한 배경속에 성장한 정치인의 등장의 길을 좁히는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종북 프레임 벗어나기 앞서 가치에 충실해야
민주당을 비판하는 주요한 논거로 ‘자기 색채’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과연 이 정당이 보수정당인지, 중도개혁-실용주의 노선의 정당인지, 아니면 사민주의 정당인지. 이러한 프레임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면, 결국 민주당은 새누리당과도 진보정당과도 차별화된 정당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수권이 어려운 정당으로 국민에게 자리매김할 뿐이다. 기존의 소수 야당으로부터의 차용한 정치적 프레임을 결별하면서, 민주당이 지향하는 가치가 정말 무엇인지를 찾아나갔으면 좋겠다. 중위수를 겨냥한 투표전략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신당과 경쟁에 있어서 민주당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다음으로, 범 야권연대의 틀, 진정한 야권연대의 틀을 지켜나가라는 주문을 부탁하고 싶다. 이러한 종북프레임으로부터 민주당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길, 그리고, 대안야당의 존재의 범위를 넓혀주는 제1야당으로서의 모습을 찾아나가라는 것이다. 그것의 핵심은 선거구제, 즉 게임의 프레임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정치적 의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19대 국회에서 다른 의제보다, 이 의제를 선점하는 것이 민주당이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를 민주당이 외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를 외치는 국민을 부당한 국가기관의 압력이나, 왜곡, 선전, 선동으로부터 막아주는 것은 민주당이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 그리고, 단순히 종북프레임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습만을 국민들은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프레임에서 당당하게 벗어나는 첫 단추로 위와 같이 두 가지의 실천적 모습을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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