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피겨스케이팅에서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피겨스케이팅의 판정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터진 초유의 ‘심판 매수’ 스캔들, 그리고 공동 금메달 수상이 그 정점이었으나 –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늘 이 스포츠의 판정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은 기록 경기가 아니다. 심판의 판정이 의심스럽다 해도, 그건 늘 의심으로 끝난다. ‘객관적으로’ 심판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판정 시비는 없다
피겨스케이팅의 점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총 요소 점수(TES, Total Elements Score)와 프로그램 구성 점수(PCS, Program Component Score)가 그것이다.
흔히 예술 점수로 잘못 번역되는 프로그램 구성 점수(PCS, Program Component Score)는 다섯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스케이팅 스킬(Skating Skills), 연결(Transitions), 연기/수행(Performance/Execution), 안무(Choreography), 해석력(Interpretation)이 그것이다.
나름 이런저런 규정이 있지만, 사실 이 점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여겨져왔다. 음악을 누가 더 잘 해석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있을까? 하지만 이를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피겨스케이팅은 기술이자 예술이기도 하다는 것이 많은 피겨스케이팅 전문가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술점수라는 항목이 대놓고 존재했던 구식 채점제에 향수를 가진 인사도 많다.
그럼, 기술적인 면을 채점하는 총 요소 점수(TES, Total Elements Score)는 객관적인가? 프로그램 구성 점수보다는 좀 나을 것이지만, 이쪽도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다. 여기에는 트리플 러츠 점프는 6점, 트리플 플립 점프는 5.3점 하는 식으로 기본 점수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기술이 얼마나 잘 수행됐는지를 평가하여 GOE라는 추가 점수를 매긴다. 예를 들어 최상의 질을 보인 트리플 러츠는 2.1점의 GOE를 추가로 받아 8.1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GOE를 평가하는 법도 어렵다. 예를 들어 점프의 GOE는 공중 자세, 착지, 연결동작, 비거리, 높이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가점을, 나쁜 모습을 보이면 감점을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항목이 그리 잘 채점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정도 자세면 공중 자세가 좋다고 평가할까? 누구의 연결 동작이 더 충실했을까? 어느정도의 비거리를 좋은 비거리로 평가할 것인가? 심판들끼리는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만, 그 기준이 모두를 만족시킬 것 같지는 않다. 점프의 높이와 비거리를 측정해 소수점 단위로 점수를 준다면 모를까, 평가 항목이 ‘좋은 비거리’ 같은 식으로 뭉뚱그려져있어 더욱 그러하다. 결국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김연아의 점프는 교과서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도입 자세와 공중 자세가 완벽에 가까우며 착지 또한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다. 그의 스케이팅 속도는 여성 피겨 스케이터 중 최고 수준으로 그로부터 나오는 점프의 비거리와 속도가 폭발적이다. 반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점프는 김연아의 점프에 비해 규모가 작고 도입 자세가 좋지 않다. 하지만, 심판의 눈에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점프가 더 낫게 보였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심판을 매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결국 초유의 공동 금메달 수상이라는 결과를 낳은 2002년 솔트레이크 스캔들. 이 스캔들이 예외가 되었던 까닭은 바로 심판의 입에서 매수 이야기가 직접 나왔기 때문이었다. 심판이 스스로 오심을 고백하지 않는 이상, 이 스포츠에는 판정 시비가 나올 수 없다.
결국 모든 건 의심으로 끝난다. 시니어 데뷔 이후 김연아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아왔다는 것도, 그리고 그 끝에 2014년 소치에서 끔찍한 채점이 나왔다는 것도. 카타리나 비트, 딕 버튼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판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많은 팬들이 분노하더라도, 심판의 판정에 ‘객관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뒤집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판정의 일관성도 없다
물론 그와 별개로, 이 스포츠에 있어 심판의 권위가 그리 강건한 것 같지는 않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프로그램 구성 점수(PCS)는 올림픽 시즌 들어 급격히 높아졌다.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60.63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60.47점이었던 것이 2014년 유로 챔피언십에서는 69.6점까지 높아졌고 올림픽에서는 74.41점까지 뛰었다. 물론 올림픽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인 것은 맞지만, 프로그램 구성 점수는 점프나 스핀 같은 기술의 성공 여부를 보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스케이팅 스킬이나 안무, 해석력 등을 평가하는 점수다. 갑자기 스케이트의 신이 내려 일 년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긴 하지만 – 이 경우가 그런 경우 같지는 않다. 게다가 소트니코바의 점수 뿐 아니라 같은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의 점수도 마찬가지 추이를 보이는 등, 이런 비정상적인 양태가 매우 흔히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그 외의 부분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방식으로 도약하는 것으로 유명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의 러츠 점프가 제대로 뛴 것으로 채점된 것은 물론 넉넉한 가산점까지 챙겨받았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러츠 점프에는 심판에 따라 +3점에서 -1점까지의 수행 등급이 책정되었는데, 이런 일관성 없는 중구난방식 채점 역시 심판의 권위를 크게 해친다.
이런 판정의 비일관성은 비단 이번 올림픽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강대국 선수들의 점수가 이런 추이를 심하게 보인다. 심판의 판정을 ‘객관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뒤집을 방법은 없지만, 그들이 그들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먹었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심판이 점수를 채점한다는 점 때문에 스포츠로서의 의의가 퇴색하는데, 심판들이 거기에 아예 똥물을 끼얹는 셈이다.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아사다 마오가 받았고, 올림픽에 들어서서는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받았으며, 이제 앞으로는 아마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받게 될 한국 피겨스케이팅 팬들의 날선 비난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집힐 수 없는 판정. 갈 데 없는 분노는 아마 그 수혜자를 향해 돌아갔을 것이다. 그들이 수혜를 받았다는 사실조차도 결국 의심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 이상한 스포츠 앞에서 말이다.
오늘 피겨스케이팅에서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어이없는 판정에 대한 분노, 허탈감, 그 어떤 것이든지, 사실 피겨스케이팅은 늘 이런 모습이었다. 스포츠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다 못해 더 남아있을 것조차 없는, 스포츠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재롱잔치.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오늘의 올림픽같은 끔찍한 결과물을 수 년에서 수십 년이나 경험해왔다.
이건 본질적인 한계다. 심판 판정을 뒤집을 방법은 없고, 판정에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너무 크다. 이를 바꾸려 해도, 피겨스케이팅은 예술이기도 하다는 전문가들의 생각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거기에 이해할 수 없는 비일관적인 심판들의 채점 양태는 이 스포츠의 권위를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뜨려버린다.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
아디오스 김연아. 스포츠의 가면을 쓴 이 쇼 비지니스 무대에, 이제 그녀를 대신할 어릿광대들이나 보내주오.
물론 나는 그 어릿광대들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지만.
woolrich parkaDaphne in the Brilliant Blue Collection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