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만들어진 건지 알 수 없는 종목
피겨스케이팅 팀 경기는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신설된 종목이다. 룰은 간단하다. 남녀 싱글 스케이팅, 페어 스케이팅, 아이스댄스 등 피겨스케이팅의 네 가지 종목을 모두 치른 뒤, 이를 종합하여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국가가 승리하는 것이다. 선수가 같이 나와 호흡을 맞추고 이런 거 없다. 경기는 그냥 다 따로 치르고, 성적만 종합할 뿐이다.
이 경기는 올림픽은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라는 올림픽 정신에 반한다. 다른 종목, 예를 들어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같은 종목은 선수 사이의 팀워크라는 요소라도 평가할 수 있지만, 피겨스케이팅은 그런 것도 아니다. 게다가 피겨스케이팅이란 종목 자체가 비용이 많이 들고, 북미와 유럽, 일본 일부 국가 외에는 인프라도 제대로 없어 네 종목 전부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는 국가가 선진국 일부로 한정적이다. 결국 강대국끼리의 메달 나눠먹기가 될 요량이 크다.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사실은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러시아 소녀, 날아오르다
어쨌든 이 팀 경기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선수는 바로 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의 소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다. 그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72.90점, 프리 스케이팅에서 141.51점이라는 고득점을 얻으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두 점수를 합치면 무려 214.41점인데, 이는 김연아가 지난 세계선수권에서 ‘레미제라블’이라는 기념비적인 프로그램과 함께 성취한 218.31점과 약 4점 차이밖에 나지 않는 고득점이다.
리프니츠카야의 급부상으로 김연아에게는 밴쿠버 때보다는 어려운 경쟁이 된 건 분명하다. 올림픽 직전 일 년 동안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으며 라이벌으로 불리는 선수와의 점수차도 컸던 밴쿠버 때와 달리, 김연아는 이번 시즌을 사실상 패스했으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리프니츠카야와의 점수차도 그리 크지 않다.
다만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밴쿠버 올림픽 때도 그랬듯이, 올림픽에서는 점수가 인플레이션 경향을 보인다는 것. 또 지난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사실상 2년을 쉬고 나온 탓에 판정에서 다소 불이익을 받았었다는 것. 따라서 두 사람이 모두 무난하게 경기한다면 아마 김연아에게 금이 돌아갈 것이나, 빙상의 격언처럼 빙판은 미끄러운 법이기 때문에,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너무 낮게 날아오른다
다만 메달의 향방과 무관하게 실력만 따지자면, 두 선수는 클래스가 다르다. 스핀의 속도와 유연성 등에서는 리프니츠카야가 뛰어난 면을 보이지만, 가장 높은 점수가 걸린 점프의 완성도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프니츠카야의 점프는 낮고 스케일이 볼품없기로 유명하다.
사실 리프니츠카야가 거둔 점수는 충분히 편파 판정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아니, 소치가 그의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심했다. 푸틴이 여차하면 xoxo를 oxox할 거라고 심판을 협박했을 거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의 점프는 스케일이 매우 볼품없다. 김연아가 그야말로 새처럼 날아오른다면, 그는 그야말로 폴짝 하고 뛸 뿐이다. 도약과 착지도 불안정하며, 특히 도약이 덜컹거리는 것도 큰 흠결이다.
그러나 그는 덜컹거리며 도약해 폴짝 뛰고 내려온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루프’ 점프에서 무려 1.4점의 가산점을 받아챙겼는데, 이는 김연아가 지난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같은 점프와 같은 가산점이었다. 게다가 그의 아직 미숙한 스케이팅에는 전설적인 선수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PCS(프로그램 구성 점수, 스케이팅 스킬과 안무 등 종합적인 프로그램 구성 요소를 채점함)가 붙었다.
그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려면 상당히 심각한 편파판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에 그러했듯이 말이다.
새로운 라이벌리에 대한 호들갑
한국 언론은 곧바로 아사다 마오를 버리고 이 선수를 ‘라이벌리’ 팔아먹기의 소재로 쓰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발언을 갖다 쓰거나, 몇 달 전에 했던 얘기를 적당히 짜깁기해서 그를 천하의 몹쓸 놈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리프니츠카야는 ‘러츠’ 점프를 잘못된 방식으로 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국내 언론은 그가 인터뷰에서 “요즘 누가 정석으로 러츠를 뛰느냐”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 인터뷰의 출처를 제대로 제시한 언론은 찾기 어렵다. 어떤 언론은 1월에 이 인터뷰가 있었다고 하고, 또다른 언론은 이번 올림픽 경기 후 이 인터뷰를 가졌다고 한다. 이처럼 심지어 인터뷰 시점조차 천차만별이다.
(사실 이런 뉘앙스의 발언이 없었던 건 아니고, 아마 1월 유럽 선수권 쇼트 프로그램 후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가 이 발언의 출처인 것으로 보인다. 단 사베쯔키 스파르트(Советский спорт) 등 일부 매체에서만 문제의 발언이 정확히 확인되는 바, 발언의 의도나 진위 여부를 확실히 확인할 순 없었다.)
라이벌리가 아무리 잘 팔리는 상품이라지만, 급조된 라이벌리다운 티가 난다. 선수의 발언을 인용하려면 최소한 그 발언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는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어록’ 따위를 짜깁기해 기사를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게 만든다.
우리는 올림픽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기묘한 이벤트다. 도통 존재 의의를 모를 이벤트, 아무리 홈그라운드라지만 넋이 나갈 정도의 판정, 급조된 라이벌리, 그리고 그를 적으로 포장하는 국내 언론. 올림픽에서 아마추어리즘이 실종된 지 오래라지만, 이제는 스포츠마저 실종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올림픽이야말로 그 어떤 무대보다 스포츠정신이 가장 퇴색된 곳이 아닐까 싶다.
피겨스케이팅은 2002년 올림픽에서 초유의 공동 금메달 사태를 발생시킬 정도로 ‘판정 시비’로 얼룩진 스포츠였다. 이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실로 기상천외하다. 당시 1위를 두고 다투던 팀은 캐나다 팀과 러시아 팀이었다. 그런데 서구권 국가 심판은 캐나다 팀의, 동구권 국가 심판은 러시아 팀의 승리를 선언한 가운데, 프랑스만 유독 튀는 판결을 내렸다. 박빙의 승부 가운데, ‘프랑스’ 심판이 ‘동구권’ 국가 편을 든 게 이상하다며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했던 게 스캔들의 시작이었다.
또 피겨스케이팅은 유럽 백인들만의 ‘귀족 스포츠’로 여겨졌고, 흑인을 비롯한 소위 유색인종은 판정에서 대놓고 불이익을 받곤 했다. 인종차별이 금기시된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편파판정에 항의하며 빙판에서 금지 기술을 선보이고 은퇴해버린 수리야 보날리의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하며, 여전히 흑인은 이 스포츠에서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 빙판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것인가? 대국을 고향으로 둔, 그리고 그 고향에서 경기를 치르게 될 금발의 백인 소녀는 열광적인 자국 팬의 지지를 얻으며 심판 판정의 노골적인 수혜자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극동의 작은 반도국에서는, 자국 선수의 앞에 나타난 이 소녀를 라이벌리 팔아먹기에 써먹기 위해 인터넷을 대강 뒤져 양산한 기사 아닌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여전히 나는 김연아의 금메달을 응원한다. 하지만 아마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진 않을 것 같다. 그냥 기원하고, 경기가 다 끝난 후에 편한 마음으로 돌려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추어리즘은 커녕 스포츠 정신마저 퇴색한, 냉전과 인종차별 따위의 구세대의 잔재가 함께 깔린 빙판에서, 이제 나는 왜 김연아를 응원하기 시작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불모지에서 홀로 선 그의 노력을 찬미해서일까, 그가 최고이기 때문에 최고의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것일까, 바깥 세상보다도 더 더러운 빙판 위에서 그래도 스포츠 정신이 승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기자들의 라이벌리 팔아먹기에 나 또한 낚였기 때문인 것일까. 이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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