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입주를 시작하고 올해 말까지 입주를 완료할 애플의 새로운 본사, 애플파크 Apple Park.
비록 기존 애플의 리테일 스토어처럼 일반 대중들이 쉽게 방문하여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2011년 스티브 잡스의 죽음 이후 혁신이 없다고 여겨졌던 애플의 이미지를 바꿀 첫 제품은 어쩌면 애플파크가 될지도 모르겠다.
역사상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의 건설비용 약 5.5조 원, 수용 규모 12,000여 명, 4층 높이, 71헥타르의 면적, 수용 규모 11,000대의 지하주차장 등 조금만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뻔한 사실들 말고 이 건물이 진짜 매력적인 이유를 스티브 잡스의 영혼의 동반자였던 조나단 아이브를 통해 들어본다.
1. 마치 또 다른 애플 제품을 만들듯이
애플파크는 조나단 아이브가 여태껏 진행해왔던 프로젝트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존 제품들이 한꺼번에 수천만 대를 생산했다면, 애플파크는 오로지 한 개뿐이다. 또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거나, 주머니에 쏙 들어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브는 애플파크 프로젝트를 마치 애플 제품을 만들듯이 똑같은 디자인 프로레스를 적용하여 만들었다. 그중 핵심이 되는 것이 ‘프로토타이핑 (Prototyping)’인데 이는 비전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또 최종 결과물의 문제점을 미리 예상하기 위해 항상 해오던 것이다. 바로 이 과정을 애플파크에 적용시킨 것이다.
2010년 애플파크를 구성하는 Pod 중 한 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는데, 바로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사무실의 벽에 소리가 반사되어 조금만 말을 해도 너무 시끄러웠던 것이다. 이때 Foster의 건축가 중 한 명이 묘안을 냈다. 벽에 엄청나게 작은 크기의 구멍을 수없이 뚫고 구멍이 뚫린 나무 벽 안쪽에는 소리를 흡수하는 소재를 붙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최초의 컨셉 디자인을 최대한 유지한 상태로, 심미성과 기능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또, 프로토타입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실제로 건물을 짓고 나니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고 한다. 애플파크 주변의 조경이 워낙 잘 되어 있다 보니 나무와 잔디에 반사된 빛이 건물 외벽에 있는 캐노피에 다시 반사되어 건물 내부에서는 마치 수목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단다.
2. 잡스가 관여한 마지막 대형 프로젝트
애플파크는 마치 부모가 자녀들에게 상속계획을 세우듯, 스티브 잡스가 미래의 애플 직원들을 위하여 시작했다.
현 CEO 팀쿡에 따르면 애플은 계획을 세우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순간순간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한다. 애플이 그동안 많은 것들을 잘해왔지만 일하는 공간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애플파크는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란다. 현재 애플은 실리콘밸리에 100군데가 넘는 사무실이 있고, 분명히 이렇게 여기저기 떨어져 일하는 것은 애플이 지향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고, 애플의 문화를 반영하지도 않는다고.
이 프로젝트를 8년이 넘게 총 지휘 중인 노먼 포스터는 스티브 잡스가 처음 자신에게 새로운 캠퍼스의 비전을 처음 설명한 2009년을 생생히 기억한다. 잡스는 이 캠퍼스가 어땠으면 하는 매우 명확한 비전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빌딩이 자연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을 수 있는 낮은 건물을 원했고, 공조 파이프나 수도 파이프처럼 복잡해 보이는 그 어떤 요소들도 건물에 없기를 바랬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문손잡이부터 건물 구석구석의 소재까지 신경을 썼다. 나무도 특정 종의 메이플 나무만 고집했다고 한다. 그냥 고집한 것이 아니라, 건축업계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도 놀랄 만한 디테일들을 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벽의 사례를 다시 들자면, 스티브 잡스는 “저는 메이플나무로 벽을 만들었으면 해요”와 같은 수준으로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우 구체적으로 수액과 당이 가장 적은 상태의 나무를 얻기 위해 쿼터컷으로 겨울에 벌목이 되어야 하고 이상적으로는 1월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요구를 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유리라는 소재를 통해 실내와 외부의 연결성을 강조하고자 했는데, 단순히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내 식당의 유리문이 12초안에 완전히 열릴 수 있게 만들어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장벽이 쉽게 없어지게 하는 것에도 강한 집념을 보이기도 했단다. 실제로 4,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은 날씨가 좋을 때 유리를 완전 개방하여 직원들이 자연의 공기와 햇살을 만끽할 수 있게끔 하였다.
3. 환경에 대한 욕심이 만들어낸 디자인
지붕 전체에 태양 전지 패널이 덮여있다. 이를 통해 건물 에너지의 80%가 공급될 예정이다. 또, 실내 온도는 20~25도 사이로 유지될 것이라 하는데, 에어컨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최첨단 배기 시스템을 통해 바깥 공기가 건물을 감싸고 있는 유리의 틈으로 흘러들어오게 한 후, 차가운 물로 공기를 차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하늘 방향으로 열려있는 기둥을 통해 내부의 더운 공기를 밖으로 보내기도 한단다.
또 인테리어의 많은 부분은 재활용 나무로 채웠고, 건물 내의 물은 재활용된 물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노력들은 미국의 전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알 고어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알 고어가 애플의 이사회 멤버인 것은 안 비밀)
이미 수년 전부터 전문수목관리사와 함께 캠퍼스 내에 과수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며, 캘리포니아가 겪고 있는 극심한 가뭄에 강한 9,000여 그루의 나무들을 올해 말까지 모두 다 심을 예정이다.
4. 완성도와 디테일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애플파크의 문손잡이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회사들에 따르면, 새 문손잡이 디자인이 소방법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산타클라라 소방청과 15번의 회의를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소방법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장애물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애플이라는 클라이언트를 넘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프로토타입을 보여줄 때마다 애플은 끊임없이 수정 요구를 했고, 프로젝트의 말미에는 나노미터 단위의 정확도가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문손잡이 프로젝트를 2년이 넘게 진행한 후에야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회사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고, 문손잡이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에서도 장담컨대 2년씩 프로젝트가 진행된 사례를 극히 드물 것이다.
또, 수입된 나무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30페이지가 넘는 매뉴얼을 읽어야 했다고 한다. 모든 노동자들은 자재를 조심히 다루기 위해 장갑을 껴야 했다. 이런 프로세스의 디테일들을 논하기 위해 몇 달씩 회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것들이 당연히 공사의 딜레이, 때로는 중단을 야기하기도 했다.
5.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영원히
캠퍼스 내에 있는 가장 큰 오디토리엄은 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6미터가 넘는 높이의 유리 실린더 형태, 지름 50미터의 카본 파이버 지붕, 그 지붕을 받히는 기둥이 하나도 없는 첨단 건축공학을 이용했다. 이곳의 지하에 위치한 것이 바로 애플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스티브 잡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Steve Jobs Theater이다.
애플의 신제품은 앞으로 이곳에서 발표한다고 하니, 애플의 신제품 발표 시마다 관객과 발표자 모두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 의도도 기가 막힌다.
+1.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닌 공간, 그리고
조나단 아이브는 애플파크를 단순히 숫자들로 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미식축구장의 49배 규모에 피트니스 센터에 900억 이상 투자하며 커브드 글래스를 이용하여 이 정도의 규모의 빌딩을 만든 것도 당연히 엄청난 작품이고 통계학적으로도 무척 인상적인 빌딩이지만 그것 자체가 성취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며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이 빌딩을 짓기 위해 들어간 것들이 아니다. 앞으로 이 빌딩에서 만들 바로 그것들이다.
원문: 최종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