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쳐는 디지털 잡지 구독 플랫폼으로 GW, 타임,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요커, 빌보드, 뉴스위크, 등 약 200개 이상의 잡지를 월 9.99불(약 1만 원)에 무제한 보여주는 서비스다. 현재 발행되는 호뿐 아니라 과월호도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서비스의 성격과 콘텐츠를 모아놓은 형태가 마치 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와 유사해 잡지계의 넷플릭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애플이 잡지계의 넷플릭스, 텍스쳐를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애플이 항상 그랬듯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2014년 텍스쳐가 사모펀드 KKR에게 일부 지분을 주고 600억가량 투자받은 것을 고려하면, 인수가는 약 1-2조 원 사이로 추정된다.
하드웨어업체에서 콘텐츠 회사로
애플은 아이폰 론칭 이후 완성도 높은 기기를 통해 그동안 사용자들에게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UX와 GUI를 통해 훌륭한 경험을 제공해왔지만, 좋은 영상 콘텐츠나 뉴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뮤직과 뉴스 같은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였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서비스 시장의 성장성과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 산 것이다.
하지만 뉴스 앱을 론칭한 이후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나쁘지 않은 기사들을 제공해온 애플에게 이번 텍스처의 인수는 기존 뉴스 앱의 콘텐츠를 강화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블로그 성명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로부터 제공되는 양질의 기사를 아름답게 디자인해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겠다.
최근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들이 주는 폐해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 신중히 질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통 잡지를 구독하는 서비스를 인수한 것이라 더 시의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얼마 전 SXSW에서 애플의 서비스 담당 임원인 에디 큐(Eddy Cue)는 양보다는 질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애플의 콘텐트 펀드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개발, 제작, 인수·합병하기 위한 목적으로 1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고 한다. 아마존의 에코 펀드는 1,000억 원 규모인데 애플은 1조 원으로 10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인기 시리즈인 매드 맨(Mad Men)의 한 시즌 13개 에피소드 제작비용이 450억 원 정도로, 비현실적인 목표로 보이지는 않는다. WSJ에 따르면 HBO의 역대급 히트작, 왕좌의 게임과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소니의 임원이였던 제이미 엘리치(Jamie Erlicht)와 재크 반 앰버그(Zack Van Amburg)를 고용한 것도 본격적으로 이 게임에 뛰어든 신호로 보이며, 다른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나 HBO와 전검승부를 펼치기 위함일 것이다. 실제로 현재 스타워즈의 제작자이기도 한 J.J. 에이브럼스(J.J. Abrams)의 새로운 SF 시리즈 계약권을 따내기 위해 HBO와 경합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 차트에 따르면 애플이 쉽게 생각하듯이 오리지널 시리즈만 가지고 매출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리지널 콘텐트를 많이 소비한다고 알려진 넷플릭스의 이용자조차 60% 이상이 라이센스 콘텐트 및 영화를 시청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는데 애플이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오리지널 콘텐트를 만든다고 해도 경쟁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인수합병 후보
그래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1월 시티은행의 짐 수바가 내놓은 리포트에 따르면 애플이 넷플릭스를 인수할 확률이 40%라고 한다(디즈니는 리포트가 발행된 후 폭스(Fox)를 인수해 몸집이 더 커져서 논외로 하겠다).
물론 2달이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 애플이 ‘아직’ 넷플릭스를 인수하지는 않았지만, 위에 오리지널 콘텐츠만으로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것을 고려하면 언제든 이 가설이 현실이 되어도 놀랍지 않다.
이 리포트가 쓰여진 1월에 넷플릭스의 회사 가치는 약 90조였고 현재는 더 올라서 약 130조이다. 애플의 사내 유보 현금이 270조가 넘으니 여전히 재무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리고 매년 평균 약 50조의 현금이 누적되고 있으니 지금도 못 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세율이 높아 그동안 90%가 넘는 애플의 현금이 해외에 있어서 미국 내 인수합병을 위한 현금확보 문제가 있었는데, 이마저도 최근에 해결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서명한 감세 법안에 따르면 해외 자본을 미국으로 다시 끌고 오기 위해 한시적으로 일종의 ‘귀국세’ 15.5%만 내면 됐는데, 시행되자마자 애플은 기다렸다는 듯이 1월 중순에 해외에 있던 약 220조의 현금을 300억 달러(32조)의 세금만 내고 들여온 것이다.
텍스쳐는 애플이 현금을 미국으로 가지고 들어온 후, 첫 인수합병이다. 그리고 이 풍부한 현금으로 넷플릭스나 디즈니와 같은 콘텐트 공룡을 인수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경쟁사에 짧은 조언
만약 이 분석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고, TV 외에 다양한 기기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유보 현금이 많은 회사라면 더 늦기 전에 넷플릭스 인수를 고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 같다. 물론 무턱대고 인수할 것은 아니다. 애플은 긴 안목을 가지고 2014년 PRSS를 인수해 준비를 철저히 한 후 2015년에 뉴스 앱을 론칭하고 3년 가까이 운영하며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2018년에 텍스쳐를 인수했다.
뮤직 서비스 론칭은 더 오랜 기간 준비를 했고 진화 중이다. 2013년 Topsy를 인수해 이용자의 전화기 사용패턴을 분석했고, 2014년 6월에는 음악 스트리밍 업체 Swell 인수, 8월에는 Beats를 인수해 음악 관련 액세서리를 보강했다. Topsy만으로 부족했는지 2015년 1월에는 음악 청취 패턴 분석을 위해 다른 데이터 분석업체인 Semetric을 인수했고, 6월에야 뮤직 서비스를 시장 내놓았다. 2017년 12월에는 음악 검색 서비스인 Shazam을 인수해 애플 뮤직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켰다.
위와 같이 회사가 비전을 가지고 진행한 서비스가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렵고, 그 어려운 부분을 넷플릭스가 채워줄 수 있다면 인수를 고려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장 내에서 한 회사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면 소비자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에 제목처럼 애플이 넷플릭스를 인수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원문: 최종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