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의 정의
우선 용어를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으니 사전 정지 작업부터 해야겠다. 빌드업과 티키타카는 다른 개념이다. 빌드업은 공격을 전개하는 행위를 뜻한다. 후방에서 전개하든, 상대 진영에서 강하게 압박해 그곳에서 전개하든 후방에서 중원을 생략해 곧바로 전방으로 보내든 전부 빌드업이다. 반면 티키타카는 의도적으로 삼각형을 형성해 볼을 돌리며 좋은 공격 기회를 노리는 축구다.
넓게 보면 빌드업이 더 큰 개념이다. 하지만 상대 공격 진영에서 페너트레이션(최종 공격)을 할 때도 티키타카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겹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그냥 따로 생각하는 게 낫다.
빌드업, 전 세계의 트렌드
2경기만 치렀지만 벤투 감독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진 대충 알겠다.
후방 빌드업을 통해 볼을 운반하고 좌우 측면을 아우르며 공간을 넓게 쓰는, 빠른 축구.
한국에 실정에 맞지도 않는데 왜 후방 빌드업을 하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거 잘하는 팀들이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트렌드는 후방 빌드업이다.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현대 축구의 도도한 흐름에 표류할 뿐이다. 후방 빌드업이 유행하는 데는 압박 트렌드와 관련이 있다. 압박과 빌드업은 불가분의 관계다. 아군이 빌드업을 할 때 상대방은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군의 볼을 뺏어내기 위해 조직적인 압박을 가하며 저지하려 들 것이다. 상대의 압박 라인 위치, 압박의 강도에 따라 빌드업 전술이 달라질 수 있는 까닭이다.
1960년대 후반,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풋볼로부터 압박이 태동했다. 1980년대 후반, 아리고 사키가 압박 전술을 정교하게 완성했다.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의 간격은 25M 이내여야 하며 1명을 상대할 땐 2명이 L자 모양으로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 요체다. 두 팀은 공통적으로 라인을 높게 가져간다. 상대 진영에서 압박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물론 이 두 감독의 주문을 오늘날 감독들이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 건 아니다. 상대 진영에서 조직적으로 압박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만 실수해도 뒷공간을 내줄 수 있다. 라인을 위로 올리는 만큼 광활한 뒷공간이 열린다. 두 감독이 지휘하던 팀보다 라인을 조금 내릴지언정 그렇다고 ‘상대 진영에서의 압박’이라는 기조를 완전히 포기하는 강팀은 오늘날엔 없다. 즉, 강팀과의 경기에서 우리 팀이 우리 진영에서 상대의 강한 압박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군의 수비진영이 그나마 상대의 압박이 ‘덜’한 지역이다. 전술했다시피 압박하는 상대 역시 뒷공간을 생각 안 할 수 없다. 따라서 압박이 가장 강한 지역은 미드필드다. 뒷공간도 상대 진영에서 압박할 때보다 크게 열리지 않을뿐더러 압박에 실패했다하더라도 재빨리 수비진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말은 후방 빌드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후방을 생략하고 중원에서부터 빌드업을 한다면? 상대의 엄청난 압박에 볼 소유권을 잃을 공산이 크다. 중원 생략하고 곧장 상대 진영으로 볼을 보낸다면? 상대는 쉽게 볼을 컷팅한다.
결국 선택지는 아군의 수비진영 즉 후방이다. 여기도 압박이 강한 건 매한가지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게 그나마 상대에게 볼 소유권을 안 내주고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길이다. 발밑이 좋은 골키퍼와 수비수가 각광받는 이유다. 장현수를 쉽사리 버릴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그가 앞으로도 계속 실수를 연발한다면 벤투의 선택지에서 제외될 것이다. 하지만 장현수만큼 발기술 좋은 선수도 별로 없다.
벤투의 후방 빌드업 전술은 선진적인 현대 축구다. 이 색깔을 쉽게 장착하긴 힘들 게다. 장현수를 위시한 많은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적응만 한다면 한국도 김판곤 위원장이 말하는 ‘능동적인 축구’를 구사할 날이 언젠간 올 것이다. 선수와 감독들을 길게 보고 믿어보자.
원문: 강기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