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번호의 유흥업소 출입기록을 알려준다는 ‘유흥탐정’이라는 사이트가 지난주 큰 화제가 됐다. 이 사이트는 기존에 손님을 위장한 경찰이나 진상을 걸러내기 위해 업소에서 사용하던 앱의 DB를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비록 사이트는 폐쇄되고 경찰 조사 대상에 들어갔지만, 유흥탐정이 성매매 시장에 일시적이나마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은 확실한 듯하다.
남초 카페에 올라온 ‘현직 업소 종사자가 밝힌 유흥탐정 현황’이라는 글을 보자. 유흥탐정이 논란이 되면서 갑자기 단속이 심해졌고, 업소 실장들이 유흥탐정 운영자를 때려잡으려고 대동단결하고 있다는 ‘카더라’다. 그런데 굳이 내부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성 구매를 위해 업소를 예약할 남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적어도 배짱 좋게 전화나 카톡 등으로 예약할 생각은 못 할 것 아닌가.
뜻하지 않게 유흥탐정 논란은 성 구매가 ‘불법’이며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성 구매는 한국 남성에게 굉장히 일상화된 일이다. 말하기는 껄끄럽지만 적당히 정당화할 수 있는 딱 그 정도. 그러나 이젠 성 구매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평온한 삶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30~40대 남성의 절반(30대 45%, 40대 47%)이 성 구매를 외도로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를 보면 겁조차 안 먹고 떵떵거리진 않을까 걱정스럽다(‘헤이데이’ 한국인의 성생활 설문조사, 2016년)
유흥탐정처럼 이이제이(?)식으로라도 성 구매에 대해 경각심을 줘도 시원찮을 만큼 성 구매는 너무나 많이 이뤄진다. 성 구매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한국 남성의 젠더의식 개선도 요원해진다. 여성의 성을 ‘접대’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술 마시면 고민 없이 어깨동무하고 성 구매하는 문화가 견고한 가운데 ‘건강한 남성’을 길러내기는 어렵다.
50.7%, 남성의 두 명 중 한 명은 성 구매를 한 적이 있다. 1년 사이에 성 구매를 한 남성은 25.7%였다(2016 여성가족부 조사). 12조 규모의 성매매 시장(2015년 허버스코프닷컴 조사)은 괜히 유지되는 게 아니다. 심지어 강남의 한 유흥업소 업주는 “강남을 누가 먹여 살리는지 잘 따져보면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은밀한 호황』, 41쪽). 성 구매는 명백한 ‘남성 문화’다. 그것도 매우 주류적인.
성 구매가 얼마나 주류적이고 기득권적인 행태인지는 성 구매자들이 기소유예 받는 조건으로 가는 ‘존스쿨’ 이수생 52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은밀한 호황』 중 2010년 성 매수 실태 조사 보고서 인용)를 통해 알 수 있다. 성 구매를 하다가 걸린 이들의 연령 중 절반이 30대, 또 직업별로 보면 사무직과 전문직이 절반이 넘는다. 학력은 대졸 이상이 절반, 결혼 관계는 미혼이 절반이지만 기혼도 43%다.
즉 30대 이상 대졸자 화이트칼라가 성 구매자의 다수를 이룬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주류 헤게모니를 내면화했음은 물론,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이 기득권을 갖게 되어 훗날 한국사회의 질서를 만들어나갈 집단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의 사회 곳곳의 리더가 됐을 때, 성 구매를 적극적으로 근절하려고 할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50%는 나쁜 사람이고, 나머지 50%는 멀쩡한 사람일까? 그렇진 않다. 사실상 성 구매를 안 했던 남성들도 우연히 안 했던 것에 불과하다. 남자들은 ‘성 구매를 해도 괜찮은’, 아니 오히려 조장되는 환경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젠더의식도 없고 여자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20대 초반부터.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을 매개로 연대를 맺는 남성문화는 그런 식으로 젊은 공범들을 만들어나간다.
나 역시 20대 초반의 내가 하던 행동이나 말들을 지금 떠올려보면 끔찍하다. 나는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었고, 여자들과의 소통이 어려웠다. 자연히 여성혐오 정서가 상당했고 성 구매를 해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은 상태였다.
남자들은 군대 가기 전이나 휴가 중에, 친구들끼리 술을 진창 먹거나 혹은 혼자 가서 성 구매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군부대가 서울에 없었거나, 또래 집단과 어울리며 술을 먹었다면 나도 거리낌 없이 성 구매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성 구매는 남성집단에서는 터부시되는 일이 아니고, 자랑거리에 가까웠으니까.
지금도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있다. 전역을 얼마 안 앞두고 있을 무렵, 관물대에 기대서 TV를 보는데, 후임들이 모여있는 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쌍욕과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명이 성 구매를 해서 성병에 걸려왔단다. 그런데 심지어 그가 ‘어디 보자’는 친한 선임들의 요청에 성기를 까자 일대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아마 뒤늦게 그에게 다가가 ‘너 뭐 하는 인간이냐’ 식으로 비웃고 말았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가 성 구매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증명하는 상황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성 구매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지는 못했다.
군대에서 선임들은 애인을 두고도 성 구매를 했다는 걸 훈장처럼 떠벌렸고, 안마방 경험을 공유하며 여성의 몸매를 묘사했다. 후임들은 성 구매를 해서 성병까지 얻어왔는데, 그걸 ‘에피소드화’하며 용인했다. 그게 내가 배우고 접한 남성집단의 모습이었다.
남성들이 망각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사실이 있다면 성매매 시장은 여러 부분에서 여성을 착취하는 형태를 띄고 있고, 이것은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성매매와 분리되지 않는 남성문화는 필연적으로 ‘여성혐오’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남성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비호 속에 커왔고, 접대니 우정이니 남성연대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끊임없이 정당화되어왔다. 남성의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에서 수많은 여성이 희생당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며 적어도 예전처럼 남성들이 대놓고 ‘성 구매 경험’에 대해 떠드는 일들은 줄어든 듯하다. 페미니즘이 ‘성 구매를 큰 축으로 하는 남성문화’를 압박한다면 남성들도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조응해줘야 한다.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를 부제로 단 책 『은밀한 호황』은 전·현직 성 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인용하며 “여성들은 남성들의 변화를 요구한다”고 전한다.
꿈: 구매자들이 처음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지금 거길 나와서 생각 해보면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 사람들에게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루: 구매자에 대한 다른 전략이 필요해요. 지금 성 구매자들을 다 범죄자로 몰아가는 식이죠. 그렇게 되면 성매매하지 않는 남성들은 ‘나는 아니다’라고 반항하고, (성 구매)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안 한다’고 거짓말하고. 이제는 사람들을 살살 녹여 가면서 성매매를 반대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야 해요.
지금은 ‘변화하기’ 좋은 때다. 여성을 희생양 삼았던 구조의 ‘공범’이 되기 싫은 사람들이 나서서 대안을 마련하고, 더 많은 남성을 현재의 ‘남성연대’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 친구들이, 현재 10~20대 남성들이 ‘성 구매를 하거나, 정당화하는 남성’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함께 고민해나가고 싶다.
덧
남성분들은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서 나온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을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원문: 박정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