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났을 때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계단이 있는 대피로에 연기가 가득 차 이용할 수 없거나, 몸이 불편한 경우에는 탈출슈트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미끄럼틀처럼 생긴 튜브를 통해 야외로 빠져나올 수 있는 피난 장치다. 한국에서는 화재 시 임시 탈출슈트를 설치해 대피를 돕는 경우도 있다.
건물에 탈출슈트를 상시 설치해둘 수도 있다. 호주의 이스케이프 슈트 시스템(Escape chute systems)에 따르면 탈출슈트는 화재, 테러, 범죄, 산업재해로 인해 갇힐 위험이 있는 모든 장소에서 사용할 수 있다. 정부청사, 학교, 은행, 병원, 고층건물, 소방서 등에서 쓸 수 있으며 광업과 에너지산업 분야에서는 중요한 비상 탈출구로 활용한다. 건물뿐 아니라 광산 트럭처럼 높은 차량에서도 탈출슈트를 통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다.
탈출슈트는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으며 시각장애인도 사전 훈련만 거치면 실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다. 미끄럼틀처럼 비스듬히 미끄러져 내려갈 수도 있고, 수직 하강할 수도 있다. 두 방법 모두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것이 이 회사의 설명이다. 탈출슈트의 주요 제원은 다음과 같다.
- 탈출 속도: 1분당 최대 25명
- 길이: 최대 120미터(약 50층)
- 임계온도: 550~600℃
해상크레인 근로자를 위한 탈출슈트
스웨덴의 모빌텍스(Mobiltex evacuation systems)도 탈출슈트를 만드는 회사다. 프랑스 아리안스페이스 로켓발사기지, 핀란드 헬싱키 국제공항과 바사 중앙병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멕시코대학 등에서 이 회사의 탈출시스템을 적용했다. 탈출 속도는 초속 평균 2.5m로, 내려올 때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빌텍스는 대우조선해양의 거제 조선소에서 탈출슈트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해상크레인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구명보트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제품이다. 앞선 제품과의 차이점은 미끄럼틀처럼 직선으로 하강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내려가듯 지그재그로 직접 내려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상을 보면 탈출 속도가 너무 더뎌 빠르게 대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모빌텍스가 거제 조선소의 해상크레인에서 탈출슈트를 시연한 모습. 출처: 유튜브 영상 ‘탈출슈트 테스트’
우주에 설치될 뻔했던 탈출슈트
탈출슈트의 역사는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탈출슈트는 캐나다의 한 공립학교에 설치된 금속 탈출슈트였다. 이처럼 초창기 제품은 금속으로 돼 있었으나 화재 시 금속에 열이 전달돼 화상을 입을 수 있어, 최근에는 케블라 등 특수 섬유를 사용한다. 금속에 비해 보관이 용이하고 신속하게 배치할 수 있으며, 불에 타지 않도록 처리해 안전하다.
1948년에는 미국 조지아침례병원(현재 애틀란타 메디컬센터)에서 대형 탈출 슈트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NASA에서도 우주비행사가 유사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탈출슈트 시스템을 개발했으나, 실제 현장에 적용되지는 않았다.
원문: 산업정보포털 i-DB / 필자: 이혜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