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학년 때 난 내가 게이라고 생각했어. 우리 삼촌이 그랬었고 내가 내 방을 워낙 잘 정돈하기도 했거든.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야. 그랬더니 엄마가 그러더군, “벤, 넌 유치원 때부터 여자애들을 좋아했었는데?”
아, 그렇네, 엄마 말이 일리가 있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고정관념들. “아, 그래, 난 리틀 야구도 잘 했었지!” 하는 식으로 계산했던 기억이 나.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어떤 특정한 경향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지.
우익의 보수들은 이게 선택의 문제라고 말해. 치료받고, 신을 믿으면 고쳐질 거라고 얘기하지. 주어진 성향을 재조립하겠다고? … 그건 신을 두고 장난질 치는 거지.
위대한 미국께선 아직도 우리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 같아. “신께선 그의 자녀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얘기는 잊어버리고, 대신 삼천 오백 년 전에 쓰여진 책을 멋대로 주해하곤 하지.
난 모르겠다.
모두가 다 아는 그래미 수상자, 다프트 펑크
2014년 그래미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오랜만에 복귀한 일렉트로니카의 대표주자 다프트 펑크(Daft Punk)였다. 그들은 신보 ‘Random Access Memories’로 그래미의 대상격인 ‘올해의 앨범’을 손에 쥐었고, 그 첫 싱글 Get Lucky가 주요 4부문 중 하나인 ‘올해의 레코드’까지 차지하면서 주요 4부문의 절반을 독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주요 4부문의 나머지 하나는 빌보드 9주 1위를 기록했던 로드(Lorde)의 ‘Royals’에 돌아갔다. 작년 전 세계를 강타한 최고의 인기곡인 이 노래는 ‘올해의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부문, 평생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 일컬어지는 ‘올해의 신인’ 부문은 긴 언더그라운드 활동 경력을 갖고 있는 힙합 듀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 Ryan Lewis)에게 돌아갔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
다프트 펑크야 말할 것도 없고, 로드의 노래도 카페나 옷가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주요 4부문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 이 듀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이름은 어딘지 낯설다.
랩을 하는 맥클모어와 프로듀서 라이언 루이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06년. 처음에는 라이언 루이스가 맥클모어의 프로모션에 포토그래퍼로 합류했다가, 두 사람이 친해지며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2012년 10월, ‘The Heist’를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이름으로 발표. 이것이 그들의 데뷔 앨범이다.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 1위, 빌보드 200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한 이 앨범을 통해 그들은 평단의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Same Love
Same Love는 이 앨범의 네 번째 싱글이다. 이 노래는 ‘워싱턴 주민투표 74’ 진행 과정 동안 녹음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놓고 치러진 워싱턴 주의 주민투표로, 2012년 6월 공고되어 2012년 11월 치러졌다. 투표 결과 유효투표의 53.7%가 법안에 찬성, 46.3%가 반대하여, 워싱턴 주는 동성 결혼이 허용된 주가 되었다.
Same Love는, 당연한 얘기지만,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앨범 자켓에는 두 명의 노신사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7인치 비닐 레코드 판의 앨범 자켓은 두 쌍의 여-여, 남-남 커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실루엣을 그리고 있다. 서두에 소개한 글은 바로 이 노래의 도입부 가사다.
맥클모어는 이 노래에 대해 “힙합 문화에서는 여성 혐오와 호모포비아 같은 억압이 용인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이제는 “책임이 필요하며”, “사회 전체로서, 우리는 계속 발전해왔고, 힙합은 늘 바로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보여줘왔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힙합 문화에 만연한 동성애 혐오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다.
33쌍의 결혼식
그들은 그래미 시상식 무대를 장식할 노래로 바로 이 ‘Same Love’를 선택한다. 한국 언론은 음악적으로 보수적인 그래미의 이례적인 무대였다고 평가하지만, 사실 그래미는 부시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보수 언론의 맹폭을 받았던 딕시 칙스를 주요 부문 수상자로 결정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퍼포먼스를 종종 벌여왔다. 어쩌면 그래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곡이었을지도 모른다.
뭐, 선곡 자체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그저 그런 그래미의 입맛에 맞는 선곡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공연의 진짜 백미는 공연 종반에서야 그 베일을 벗었다. 남편과 아내, 남편과 남편, 아내와 아내, 성과 인종을 완전히 초월해, 서른 세 쌍의 커플이 바로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이 결혼식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진짜 결혼식이었으며, 거기 선 모든 여-여, 남-남, 여-남 커플이 모두 그 자리에서 결혼을 서약하기로 한 진짜 커플이었다. 이 결혼식을 위해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와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퀸 라티파가 주례사로 나섰으며, 그는 캘리포니아 주가 부여한 권한을 통해 서른 세 커플의 성혼을 바로 그 자리에서 선언했다. (그래미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 주다.)
한국 언론은 이 결혼식을 보도하며 ‘동성 결혼 퍼포먼스’ ‘동성애 퍼포먼스’ 등으로 그 의미를 격하시켰다. 아마 선정적인 기사를 쓰기 안성맞춤인 소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작 이 퍼포먼스의 주인공인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이름 대신 공연 후반에 깜짝 등장한 마돈나의 이름만 언급되는 경우도 많았다. 마돈나와 동성애 퍼포먼스라니, 팔릴 만한 검색어잖아!
그러나 실제로 이 공연은 단순히 동성애 퍼포먼스라 말할 수 없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서른 세 쌍의 커플이, 인종을 초월하여,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비로소 성을 초월하여 똑같이 가치있는 사랑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똑같이 가치있는 결혼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그야말로 Same Love인 것이다.
“사회는 진보하고 있고, 힙합은 지금 우리 사회를 대변해왔다”
맥클모어는 사회 전체가 진보하고 있으며, 힙합이 바로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여줘왔음을 믿었다. Same Love. 그것은 지금 미국이, 그리고 세계가 갓 받아들이기 시작한 가치다. 또한 늘 그랬듯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투쟁하고 싸워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여기 ‘Same Love’의 가사를 조금 더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이후로도 노래는 라임과 플로우의 파도를 타고 ‘같은 사랑’의 가치를 역설하다가, 끝에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한 것. (주일마다 울라는 게 아니라.)”
내가 게이였다면, 힙합이 날 싫어한다고 여겼을 거야. 요즘 유튜브 댓글 본 적 있어? “이봐, 게이같은데(that’s gay)” 같은 말이 매일같이 쏟아져. 우리가 뭘 말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감각해진 거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문화를 세워 놓고는 정작 동성애자를 받아들이지는 않아. 키보드 뒤에서 서로를 호모새끼(faggot)라고 부르지. 증오가 뿌리깊게 박힌 그 낱말로.
그런데 아직도 이 장르는 이 문제를 무시해. “게이”는 “열등함”의 동의어가 되었어. 종교 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똑같은 바로 그 증오야. 성별에서 피부색까지 똑같은 투쟁이 사람들을 파업과 농성으로 이끌었어.
인권이란 모두를 위한 거야, 아무 차이가 없어.
“살아 줘, 너 자신으로서!”
내가 교회에 다닐 때, 그들은 나에게 좀 다른 걸 가르쳤어. 증오를 전한다면, 그 말들은 결코 성스러울 수 없으며 당신이 적신 그 성수에도 독이 스미기 마련인데.
다른 모두가 권리를 빼앗긴 이들을 위해 싸우는 대신 침묵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낄지라도 나는 그렇게는 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우리가 진정 평등해지기 전까지 자유라는 건 있을 수 없어. 이를 지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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