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 박사님의 첫 여행기 『잡학다식한 경제학자의 프랑스 탐방기』를 약 2~3시간 만에 다 읽었다. 달변가 답게 내용도 쉽게 쉽게 풀어서 썼고, 사진도 많아서 누구나 2~3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한 바를 몇 가지 정리해 봤다.
1. 왜 아들과 단둘이서 여행을 했을까?
홍 박사님에게는 아내도 있고 작은아들도 있다. 그런데 큰아들만 데리고 여행을 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와 10년 지기인 친구 ‘작업남(필명)’의 이야기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친구 또한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고 했다. 4인 가족이 전부 여행을 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말이다.
- 숙소를 4인실로 잡아야 하는데, 4인실은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보통 2인실 2개를 잡는다든가 해야 한다.
- 4명이서 움직이다 보면 가고 싶은 곳에 가볍게 가는 게 쉽지 않다.
-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여러 명이서 함께 하면 대화나 주제에 집중할 수 없다.
- 배낭여행은 교통편이 불편하다. 그래서 소규모로 이동할수록 편리하다.
그래서 그 친구는 본가 어머니만 모시고 여행을 갔다가, 그다음에는 와이프만 데리고 여행을 갔다가, 그다음에는 큰 아들만, 그다음에는 작은아들만 데리고 여행을 간다고 한다. 나도 그 방식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본가 아버지나 본가 누나들과 함께 여행을 갔고, 무척 좋은 경험을 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냐면, 그동안 다른 가족들 눈치 보느라 속속들이 털어놓지 못한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눈치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모두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본가 누나들 또한 매형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시댁 욕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ㅋㅋ 만족도가 무척 높은 것 같았다.
홍 박사님의 프랑스 탐방기에서 첫 번째 시사점은 홍 박사님처럼 가족 전부와의 여행 대신 구성원 한 명씩 데려가는 둘만의 여행을 다녀보시라는 것이다. 물론 전체 여행은 여행대로 가고, 한 번씩 이벤트로 다녀오라는 것이다. 반응, 정말로 좋을 거다.
2. 왜 프랑스였을까?
이 책은 2016년 프랑스 여행을 바탕으로 쓴 여행기이다. 그런데 왜 프랑스였을까? 베트남도 있고, 괌도 있고, 하와이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짐작되는 바가 있다. 우연찮게도 나도 2016년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온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프랑스 여행 이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똑같이 생긴 고속도로가 독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서독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그와 똑같은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1961년까지 사용한 민법 역시 일본 민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일본 민법은 또 독일 민법을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제도 상당 부분이 일본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고, 일본 제도는 독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일본, 혹은 독일과 같은 유럽에서 찾아보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춘욱 박사님이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 제도의 원형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홍 박사님은 경제학자이시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인 측면의 프랑스를 아들에게 많이 설명해 주셨던 것 같다. 반면 나는 법치나 제도적인 측면을 아이들에게 많이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국회는 조선시대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의 유래도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서 내려온 방식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나 국회를 구성하여 법을 만들어 통치하는 방식 역시 유럽의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조선 말 독립협회 이후의 공화정을 토대로 유럽의 제도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킨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은 유럽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의 제도가 유럽의 것이라 해서 꼭 유럽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용하는 유럽적인 제도에 문제가 생긴다면, 원조인 유럽에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고, 유럽 여행은 1~2년에 한 번씩 다녀오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3. ‘학습된 무기력’과 토지 개혁
학습된 무기력이란 말 그대로 ‘넌 안 돼’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점점 힘이 빠져 결국 부진한 성과를 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반대로 주위에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 모여 있고, 또 서로 격려한다면 점점 더 큰 성과를 낼 수도 있죠. 특히 청소년 시기에는 주위 환경과 격려, 사회 집단의 압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학습된 무기력이 이주민 집단의 청소년의 장래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본문 211p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당시 전체 유럽과 붙어서도 승리한 이유는 토지 개혁으로 땅을 불하받은 국민병의 용맹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프랑스 인구가 4천만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는 데 있습니다. 당시 영국의 인구는 1천 2백만, 가장 강력한 적수였던 오스트리아의 인구는 2천만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 본문 54p
이 책의 저자 홍 박사님의 걱정이 무엇인지 짐작 가는 부분니다. 나 역시도 그렇고,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요새 아빠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이것이다.
졸라 열심히 공부해라!
…이렇게 이야기는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도 ‘인서울’은 힘들다. 어떻게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 설마 취업했다고 해도 문제다. 주위 친구들이 대기업 들어가서 개고생하다 나오는 걸 보면서, 과연 대기업 취업이 끝이겠냐는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부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다른 적성을 찾아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래저래 많은 고민 속에서 여행을 하면서, 애가 스스로 자성을 하거나 깨우치기를 바라는 심리가 있었을 수도 있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유럽도 다녀오고 북미, 남태평양, 인도양까지 다녀왔다.
갈 때에는 좀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애들은 다녀온 후 다시 밤 10시까지 학원 다니고, 독서실에서 12시까지 공부하다 돌아온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저렇게 공부한다고 인생이 달라질까?’하고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는 건 애가 아닌 아빠인 나다;
이에 관련해서, 이 책에서 슬쩍 넘어간 부분이 위 소제목에서 인용한 ‘토지 개혁’이다. 내가 최근에 관심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방 이후 완전히 평등한 나라가 되었나?
우리나라는 1949년 시작해서 1950년 3월 ‘농지개혁법’을 완료했다. 그리고 이것이 완전하게, 완벽하게 성공한 세계에서 가장 유일한 나라이다. 일찍이 나폴레옹은 토지 개혁을 통하여 자영농이었던 프랑스 국민들이 프랑스의 군인이 되도록 했고, 자영농을 기반한 프랑스 군대는 그렇게 유럽 최강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우리나라의 ‘농지개혁법’이라는 혁신적인 법이었다. 이 입법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지주와 소작농의 갈등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구 지주 계급은 완벽하게 몰락하였다. 구 지주 계급에게서 일정 정도의 농지를 제외한 땅은 ‘지가 증권’으로 지급한 후 몰수했는데, 이 지가 증권이 한국전쟁 통에 발생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대한민국은 모두가 자영농이 되어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그 평등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모두 ‘가난’으로 평등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시골 농부까지 모두가 가난하여 평등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50년, 60년이 지난 지금은 ‘불평등하고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 문제라면 우리 아버지 대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런 식이다. 한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가난했다. 그러나 그중 한 친구는 아주 열심히 일을 해서 부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 그 친구의 역량이지, 제도적인 문제는 아니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출발선상부터 다르다. 강남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귀하게 태어난 친구와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친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출발선상부터 달라 버리니,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참 뒤처지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 우리 자식들은 구조적인 무기력증에 빠져드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4. 개천에서 난 용, 그런데 용이 낳은 새끼가 미꾸라지더라
내 주위에는 소위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가 많다. 집안은 지지리도 가난했는데 자신의 자력으로 용이 된 친구들이다. 그런데 막상 그 용들이 새끼를 낳으니까,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 새끼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들의 푸념은 그렇다. 자기는 정말 배운 것 없는 부모 밑에서 어렵게 어렵게 공부해서 명문대를 나왔고, 좋은 직장을 잡아 높은 지위에도 올랐다. 돈도 자랑할 만큼 벌었다. 그런데 자신의 새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서울’은 커녕 경기도 소재의 대학도 들어가기 어려워 보인다. 주식투자 하는 법이나 재테크 비결도 알려주고 싶은데, 아예 배우려는 자세가 없어 보인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유럽도 데리고 가고 미국도 데리고 갔더니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고 있다. 유명 박물관에서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명작을 보여줬는데 하품이나 하고 있다. 웅장한 성당을 보여주며 성당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애들은 멍하니 다른 곳이나 쳐다보고 있다. 다리 아프다고 불만이 폭주한다.
언제까지 걸어 다니냐고 투덜거린다. 더워 죽겠단다. 유일하게 관심있는 건 이 근처 어느 맛집에서 점심을 먹느냐 하는 것 정도다. 구글맵으로 검색이나 한다. 그러다 보면… 참 자식새끼는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생각만 든다….
그런데 이 책의 아들은 아빠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아빠는 이에 대해서 답을 열심히 해준다. 역시 단둘이 여행을 했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고 똑같이 프랑스로 여행을 다니며 아들이나 딸에게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해 주면, 싸움 날 확률이나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나도 중학교 때 그랬다. 아버지는 당신께서 보시는 곳마다 6.25 때에는 저기가 어쩌고저쩌고 이야기하시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 전쟁 때에는 정말 힘들었구나. 우리 할머니 고생이 여간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공감한 건 아니었다.ㅋㅋㅋ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 부모님도 날 그렇게 키웠듯이, 나도 그렇게 키우는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가벼운 책으로 토요일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했다. 가벼운 책이라 딸에게 기말고사 끝나고 보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한다. 그 알겠다는 말이 “아빠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다”는 것인지, “아빠 말대로 책을 읽겠다”는 뜻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원문: 김철광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