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태용 한 명 때문에 월드컵을 말아먹었다는 소리가 나온다. 신태용 말고 다른 명장이 왔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말은 애교고 할 수 있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주관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는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결과는 복합적인 원인에 기인한다. 선수단 장악, 전술, 체력, 기술, 건강, 심리 등. ‘영원한 최강팀은 없다’는 축구계의 지상명제도 이 때문이다.
2.
이번 결과에 대한 설왕설래는 이해가 간다. “최초 목표가 16강이니 18 대표팀은 실패했다 vs 우리가 언제 16강을 당연하게 가는 팀이었냐. 독일 꺾었잖냐” 어떤 부분을 포커스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양쪽 다 일리가 있다.
신태용 경질 vs 유임에 대한 논쟁 역시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 스웨덴전에서 신태용이 보여준 전술적 한계, 선수단 관리 능력 등을 종합해봤을 때 앞으로 4년을 믿고 맡기기엔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건 객관적인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경질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야 맞다.
개인적으론 유임했으면 좋겠다. 정 경질할 거면 한국 축구를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월드 클래스 감독이 와야 맞다. 어중간한 감독이 올 바에야 국내 사정을 잘 아는 감독이 낫다는 뜻이다. 언제까지고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경질할 순 없는 노릇이다. 국민들 눈높이를 못 맞춘다고 경질할 거면 어게인 2014다. 당장 조4위로 마감한 독일의 뢰브 감독도 유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판국이다.
3.
물론 신태용 감독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존재한다. 의외로 짜임새 있는 수비 전술을 보여준 건 칭찬할 만하다. 전방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이 좋았고 최후 방어선 또한 견고했다. 결과적으로 3실점했다. 정상급 팀이 아닌 이상 3실점으로 끝내긴 쉽지 않다. 그러나 잦은 포메이션 실험은 선수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가뜩이나 수십 개의 부분전술을 외우는 것도 벅찬데 여러 포메이션을 단시간 내에 체화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두줄 압박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아리고 사키 감독이 천명한 두줄 압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 주위에 두 명 이상의 선수가 포진해 공을 가진 상대를 괴롭힐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 점이 부족했다. 종종 측면과 수비-미드필드 라인의 공간을 허용해 위기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란과 우루과이를 본받아야 한다.
역습 축구야 원래 신태용이 잘하던 거다. 스웨덴전에선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 시 선수들이 굼뜬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독일과의 경기에선 신태용 감독의 색깔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봐야 맞다. 한국 축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인 셈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4.
내 분야의 전문가는 곧 다른 분야의 아저씨다. 다른 분야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를 적극적으로 파고들 것을 권장한다. 한 가지에만 관심을 쏟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축구판에서도 공격수가 수비하고 수비수가 공격하는 게 대세인 요즘이다. 하지만 모르면 전문가에게 배우는 게 맞다. 조각조각 얻은 지식으로 전문가가 틀리고 자기 말만 맞는다는 식으로 우기는 건 지식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인상비평을 할 게 아니라 전문성을 어느 정도 섭렵한 뒤 논하라는 거다. 가령, 신태용이 황희찬(공격수)을 빼고 고요한(미드필더)을 투입한 건 경기를 던지겠다는 거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수를 빼고 미드필더를 투입하면 경기를 포기한다는 건데, 축구는 이렇게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발 빠른 율리안 브란트를 막기 위해 고요한을 투입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지 않으면 측면이 계속 뚫렸을 테고, 뚫리는 측면을 걱정하느라 제대로 페너트레이션(최종 공격)을 하지 못했을 게다. 페너트레이션은 중앙과 측면을 동시에 이용할 때 유려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체 전술이 주효했다는 건 결과가 증명한다.
신태용 감독보다 더 잘 안다는 듯이 주관적인 근거로 대거리하는 건 한국 축구에 도움 되지 않는다. 정말 축구를 사랑한다면 자신의 말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전문성을 갖춘 다음에 공론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원문: 강기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