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과 관련된 콘텐츠를 매일 만든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층은 한국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상은 주로 30~50대 한국인 남성이다. 필자는 이 연령과 성별에 속하지 않음에도 이들이 나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에 이들의 취향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참 어려운 점이 하나 있다. 30~50대 남성에게 유독 먹히지 않는 주제가 있다는 점이다. 30대~50대 콘텐츠 사용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주제를 보다 보면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인다.
일단 동물. 애견인·애묘인들도 분명 계시지만 이들에게 강아지와 고양이란 상당히 마이너한 주제다. 반려동물의 보호 내지는 반려동물의 권리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나 보호에는 자못 둔감하다.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가 죽었다거나 하는 글에 공감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중국에서 애견, 애묘시장도 엄청나게 큰 시장인데도 말이다.
단적인 예로 ‘개고기 대회가 중국 위린이란 곳에서 열려서 운동가들이 매년 반대 운동을 펼친다’는 글을 쓰면 댓글에는 ‘개고기 맛난데…’와 같은 류의 글이 달린다.
그다음은 교육. 교육이나 육아 관련 콘텐츠는 정말 안 읽힌다. 거의 유일하게 관심 보이는 건 “중국 베이비시터 월급이 대기업 사원만큼이나 높다”와 같은 류의 내용이다. 흔히 뷰티(beauty), 비스트(beast), 베이비(baby) 이렇게 3B가 나오면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다고들 하는데 유독 중국 콘텐츠에서는 ‘베이비’가 안 통한다. 귀여움의 척도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아이를 직접 키우거나 교육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보건 및 헬스케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건강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주제를 잡으면 유독 클릭이 저조하다. 특히 실버산업은 클릭이 정말 낮다. 돌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성들은 언젠가는 자기 일이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궁금해서라도 눌러보는데 말이다.
이런 경향은 주식이나 기업 분야에도 적용이 된다. 중국 산업을 분석하는 다양한 글을 싣는데 철강, 선박, 조선, 해양, 반도체, 제조, 기계, 건설 등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은 남성 독자들이 좋아하는 주제다. 그런데 의약이나 바이오 주식에 관한 글들은 어쩐지 잘 안 읽는 경향이 있다. 재미난 사실은 건강과 관련된 것이라도 유기농 화장품 등으로 주제를 살짝 틀면 많이 읽힌다. 건강을 건강 자체로만 쓰게 되면 재미없게 느껴도 중국의 소비시장과 엮으면 클릭이 올라온다.
여성을 소재로 한 글에 대한 분석을 봐도 이들의 취향을 읽을 수 있다. 악녀 프레임(대표적인 예가 측천무후, 서태후 등)이나 엄청난 미녀(중국 4대 미녀), 돈 버는 미녀(여사장 중 미모의 소유자, 내지는 여자 연예인 수입 순위) 이런 글이 먹힌다.
필자가 여성이어서 그런지 남녀평등권에도 관심이 있는 편인데 중국 콘텐츠와 남녀평등을 연결하면 재미난 현상이 벌어진다. 중국은 남녀평등이 꽤 진행되었고 여성을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 주제가 한국 남성들에겐 대단히 불편한 주제였는지 30대 후반 남성이 “왜 이런 걸 중국 정보를 보는 글 주제로 편성을 하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있는 현상 보여주는 건데도 싫었던 것 같다. “여성에게 잘해주는 중국 남성 같은 정보를 한국 여성들에게 흘리지 마라!”는 입장이었던 걸까.
같은 주제여도 ‘결혼’이나 ‘소개팅’ ‘연애’ 등의 주제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그래서 ‘중국의 데이팅 앱 스타트업이 잘 되는 이유,’ ‘중국인들은 드레스도 붉은색을 입는다’ 혹은 “중국은 부모가 나서서 맞선 대상을 찾는다” 이런 글은 인기가 없다. 자신과 해당 사항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
반면 이혼율·위자료 이런 키워드가 들어가면 엄청나게 눌러본다. ‘이혼 시 위자료 적게 주는 법’과 같은 제목은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글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미투 운동이 불러온 파장과 관련된 글에서도 여성들의 힘들었던 삶은 관심 밖이고 ‘미투 당하지 않는 법’ 같은 것만 조용히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유저층에게 인기 없는 주제는 인권이나 약자, 농민공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보도다. 대신에 ‘감시’ ‘보안’ ‘테러’ ‘통제’ ‘안면인식’ ‘진압’ 이런 키워드가 들어간 글에는 굉장히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매번 중국과 관련된 콘텐츠를 쓸 때 백주(중국 술, 바이주), 음식, 삼국지, 밀리터리, 4차산업혁명, 금융, 골프… 이런 소재 위주로 선택하게 된다.
부동산도 엄청나게 좋아한다. 분석 기사는 흥미가 떨어지는지 평당 8억 원을 호가하는 홍콩 부동산 이런 기사에 즉각 반응한다. 이런 주제는 자신과 관련이 그닥 없음에도 대리만족을 찾는 심리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대표적인 게 슈퍼카 기사다. 무조건 슈퍼와 빅샷을 좋아한다.
얼굴은 무조건 마윈 아니면 시진핑이 나와야 반응한다. 이쯤 하면 그만하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마윈과 시진핑 얼굴에 반응하는 이유는 이들이 경제 그리고 정치 원톱이기 때문일 것이다. 샤오미가 대단한 기업이지만 레이쥔 사진을 보여주면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바이두의 리옌훙이 아무리 멋지게 생겼어도 마윈보다 당연히 소구력이 떨어진다. 징둥닷컴의 류창둥의 경우는 그의 아름다운 아내 밀크티녀(이름은 몰라도 밀크티녀는 안다)로 기억된다. 그래서 중국 콘텐츠는 한 번 물꼬를 어떻게 텄는지가 그만큼 크게 작용한다. 물론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매번 이런 콘텐츠 채우면 재미가 덜하다는 점에서 아쉽다.
후배 중에는 20대 여성이 많기 때문에 이 친구들은 발제해도 봉사활동, 훈훈한 이야기, 미담, 의인 이런 걸 발제하는데 문제는 이런 게 잘 안 먹힌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하나 콘텐츠 자체의 측면에서 걸리는 점이 중국의 훈훈한 이야기는 우리네 1960년대 상황 같아서 옛날 동화 같고 실감이 잘 안 난다는 점이다.
중국식으로 말하자면 ‘레이펑 정신’ 스토리가 많다. 레이펑은 인민을 위해 복무했다가 죽음을 맞이한 인물인데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모범시민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의 희생 이후로 중국에는 ‘레이펑 정신’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반면 한국인들은 투스카니 의인 같은 현대적 감각의 의인 기사에 반응하는지라 어지간한 중국 미담에는 꿈쩍 않는다.
즉 3050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효자효녀 이야기를 쓰면 많이 볼 거 같지만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속 썩이는 중국 재벌가 아들딸’ 이런 기사는 많이 본다. 이른바 ‘푸얼다’이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도 신세를 망치는 사례들을 보면서 ‘어휴 그래도 내 자식은 저 정도는 아니네’ 하는 위안을 주는 걸까.
남자 아이돌 이야기도 싫어한다. 방탄소년단, 워너원 등이 걸어 다니는 기업임에도. 그렇다고 여자 아이돌 관련 기사를 눌러보는 것도 아니다. 중국판 워너원, 중국판 소녀시대 이런 기사에도 잘 감응하지 않는다. 아이돌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연배와 상관없이 아이돌 산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분은 앞으로도 새로운 걸 받아들일 각오가 된 분이라고 봐도 된다.
중국 전문가라면서 자세히 보면 계속 똑같은 비슷한 주제로 ‘타령’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런데 3050 나이대로 중국을 어느 정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는 이들의 ‘타령’이 뜻밖의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왜냐?
그게 자기도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땐 안 그랬어~’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중국? 나 있을 땐 담배도 막 피우고 쓰레기도 막 버렸고 사람도 부리고 골프도 맨날 치고 그때 참 돈 쓸 맛 났지~” 이런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역사 참 좋아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것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이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재미없다고 여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중국을 계속 소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최신 중국에 대한 정보도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한 듯하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식당에서 QR코드 보고 놀라는 정도의 충격’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창피는 당하기 싫고 안줏거리는 필요하니까.
그리고 승부욕이 강하고 대결 구도를 좋아한다. 이기고 지는 거에서는 평가전문가다. 누가 더 크고 센지, 무기는 어느 정도 급인지에 대해서 열심히 평가하면서 열을 올린다. 조오련과 물개가 헤엄치면 누가 이겨? 라는 인식이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기본에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과 한국 중 어디가 잘하나,’ ‘이젠 반도체마저 중국이 잠식하나’ 등 위기감을 조성하는 기사에 반응한다.
재밌는 게 한국에 대한 스탠스. 한국은 중국에 비해 이런 거 부족하다고 하면 화내고 한국은 이런 면은 잘한다고 분석하면 어느 기업에서 돈 받았냐(?)며 화낸다.
어떻게 해야 유저들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보람된 콘텐츠를 쓸까? 우리 콘텐츠 중에서 인기가 있던 포스팅을 하나 소개한다. 원래는 ‘사막을 횡단하며 운석 모으는 아가씨’ 이런 식으로 제목이 되어 있길래 운석의 경제적 가치에 포커스를 맞췄다. ‘사막에서 줍는 황금보다 비싼 이 돌’ 그리고 젊은 여성이 섬네일로 나오니 비로소 읽어보더라.
저 글은 운석을 모아 무료로 참관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든 멋진 중국 여성의 이야기다. 유저들은 ‘나도 사막 가서 돌 줍고 싶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다채롭게 주제를 발굴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실험해보는 것 외엔 정답이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