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오늘-첫 동시 지방선거, 지역 분할 구도 완성
1995년 6월 27일, 처음으로 전국에서 동시 지방선거가 시행되었다. 투표율은 68.4%. 이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지방자치 단체장(기초와 광역)과 지방의회(기초와 광역) 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었으나,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2년마다 걸러 치르려고 이 첫 선거 당선자의 임기는 3년으로 한정되었다.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1996년에 치러질 예정이었는데, 1995년 동시선거를 통과한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3년 후인 1998년에 2회 동시선거를 치르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임기는 1998년 제2회 동시 지방선거부터는 원래대로 4년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 선거는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제1공화국과 2공화국 사이에도 세 차례에 걸쳐 지방자치 선거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들 선거는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선거일을 달리하거나, 지방의원들만 뽑고 단체장 선출은 간접선거, 임명하는 방식을 절충한 것이었다.
박정희, 전두환에 막힌 지방자치, 35년 만에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최초
1960년, 4·19 후 장면 정부에서 시행한 제3회 지방선거를 끝으로 지방자치는 자취를 감추었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가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하여 그에 저촉되는 지방자치법의 효력을 정지시켰기 때문이었다.
이 임시조치법이 박정희 정부에 이어 전두환 정부에서도 시행되면서 지방자치 제도는 형식과 명목으로만 존재했다. 특히 1972년 유신헌법은 부칙에 지방의회의 구성을 조국의 통일 때까지 유예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또, 1980년 헌법도 지방의회의 구성을 지방 자치 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고려하여 순차적으로 하되 그 구성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는 부칙조항을 두었다.
지방의회의 구성에 관한 유예 규정이 철폐된 것은 1987년 헌법에서다. 1988년에는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지방자치의 부활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지방선거는 1991년에 31년 만에 부활했지만, 이 선거도 지방자치제도의 원칙에서 얼마간 벗어나 있었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선거일이 달랐고 단체장은 아예 선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95년 6월 27일에 시행된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명실상부한 지방자치 선거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 15개 특별시ㆍ광역시ㆍ도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이, 230개 시·군·구에서 기초단체장이, 15개 광역의회에서 활동할 광역의원 875명을 뽑았다. 기초의원도 45841명이 뽑혔으나 제3회 지방선거까지는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제는 시행되지 않았다.
선거 결과는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참패, 민주당의 선전, 자유민주연합의 돌풍으로 요약되었다.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는 민자 5, 민주 4, 자민련 4, 무소속 2로 여당인 민자당이 가장 많은 지역에서 당선하긴 했지만 여야로 따지자면 5:10의 완패였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은 물론, 광역의원 또한 민주당이 여당보다 앞섰다. 1993년 취임 이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각종 개혁을 밀어붙이던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민자당은 경기, 인천, 부산, 경남, 경북 등 다섯 곳에서 이겼고 민주당은 전남, 전북, 광주에다가 서울을 손에 넣었으며 자민련은 충남, 충북, 대전, 그리고 강원에서 승리했다. 나머지 지역인 대구와 제주는 무소속 후보가 가져갔다.
광역단체장으로 보면 3당합당 이전의 지역구도로 회귀
광역단체장으로 볼 때 영남은 민자당, 충청은 자민련, 호남은 민주당이 석권한 이 선거의 결과는 1990년 3당 합당 이전의 정치 구도, 이른바 지역분할 구도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민주자유당은 여당인 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이 김영삼이 이끄는 제2야당 통일민주당(민주당), 김종필의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공화당)과 합당하여 창당했다.
그러나 1992년 김영삼이 민자당 후보로 대선에서 승리하였지만 이어진 계파 갈등으로 김종필이 탈당하여 자민련을 창당함으로써 이 호남을 배제한 지역연합은 깨어졌다. 결국, 6·27 지방선거는 영남-호남-충청의 지역분할 구도를 재현하는 결과를 낳은 셈이었다.
6·27 지방선거에서는 몇 가지 파란이 있었다. 경북, 경남, 대구에서는 기초단체장 가운데 무소속 당선자가 제일 많았는데 특히 포항시에서 민주당 박기환 후보가 민자당 후보를 꺾고 당선하였다. 뒷날 구미시장으로 3선을 하게 되는 김관용 후보조차도 자민련과의 대결에서 가까스로 이길 수 있었다. 남해군에서는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불과 37세의 나이로 당선되면서 민선 최연소 단체장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때 완성되어 명맥을 이어 오던 지역분할 구도는 그로부터 23년,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그예 무너진 듯하다. 비록 대구와 경북지역에서는 지역 기반의 자유한국당이 승리하긴 했지만, 기초의회나 기초단체장에 민주당이 선전하면서 이후 변화의 실마리를 살려갔기 때문이다.
다음 제8회 지방선거는 2022년에 시행된다. 당장 2020년 총선에서도 변화가 적지 않을 테지만, 7회 지방선거에서는 지금까지 선거를 통해 이루어낸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