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 400만 명에게 빛을 선물한 아라빈드 안과병원
1976년, 안과의사 고빈다파 벤카타스와미(Govindappa Venkataswamy), 일명 닥터V가 58살의 나이로 은퇴했을 때 인도의 시각장애인은 1,200만 명이 넘나들고 있었다. 이들 중 80% 이상은 가난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시력을 잃었다. 실명을 피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시력을 잃어야 했다. 바로 그 ‘피할 수 있는 실명’을 없애는 데에 은퇴한 노의사는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닥터V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인도의 전설적인 철학자인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였다. 스리 오로빈도는 ‘인간이 신성한 삶을 목적으로 삼고 이를 향해 실천해야 한다’고 설파해 인도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철학자였다.
닥터 V는 시각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인도인들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떤 은행도 그에게 대출해주지 않았다. 은행 관계자들은 말했다.
“당신은 너무 나이가 많아요.”
“당신은 지금 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공짜 수술을 하겠다는 거잖아요. 당신은 펀딩을 받을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An Infinite Vision: The Story of Aravind Eye Hospital’, <허핑턴포스트>, 2012년 12월 5일.)
닥터V는 다시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안과교수로 근무하던 여동생 낫치아르와 손잡고 동생과 함께 사는 집에 침상 12개를 놨다. 가족이 가진 모든 보석을 담보로 잡혀 운영비를 구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안과병원 아라빈드(Aravind)는 이렇게 해서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 작은 도시 마두라이에서 문을 열게 됐다.
첫 2년 동안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소득이 낮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주는 의술을 펼쳤다. 닥터V와 동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이들은 1층에 유료병원을 세워 그 이익으로 나머지 5개 층에서 무료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전부 무료는 아니었다. 3분의1 환자들로부터 정상적인 요금을 받았다. 나머지 3분의 2 환자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제공했다. 이렇게 하니 기부금 등 외부의 도움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시술을 하려면 비용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당시 인공수정체를 써야 하는 백내장 수술에 드는 돈은 100달러. 한 사람당 국민 소득이 430달러(OECD 1980년 기준)인 인도에서 돈을 이만큼 낼 수 있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닥터V는 미국 여행길에 맥도널드 시스템을 보고 표준화된 분업화 시스템을 고안했다. 햄버거의 대량생산을 위해 도입된 맥도널드의 컨베이어벨트 방식 업무처리 시스템을 안과 수술에 도입한 것이다.
우선, 최종 진단을 제외한 단순한 의료검사에는 임금이 낮은 인력을 배치했다. 또,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침상 위에 한 명씩 일렬로 눕히고 미리 수술 준비를 해놨다. 수술대 사이에는 360도 돌아가는 커다란 현미경을 놓아 의사가 환자 한 사람을 수술하고 나서 바로 현미경을 돌려 다음 환자를 수술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하니 고급인력인 집도의들이 낭비하는 시간 없이 반복적으로 더 많은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수술비용도 낮아졌다.
인공수정체 가격을 낮춘 건 다른 사회적기업가였다. 1992년 미국 아소카 재단의 지원을 받은 사회적기업가 데이비드 그린이 세운 ‘오로랩’은 한 벌에 150달러 하던 인공수정체를 단 10달러로 낮추는 데에 성공했다. 최고의 품질은 아니었지만 비용은 15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 덕분에 아라빈드는 다른 병원이 쓰는 비용의 20% 남짓한 돈으로 백내장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대신 유료고객들을 위해서는 최고급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했다.
아라빈드 안과병원의 의사들은 백내장 수술에 있어선 세계 최고의 기술로 올라섰다. 훈련센터와 임상경험이 의사의 실력을 높였다. 여느 병원에서는 의사 한 사람이 한 해에 백내장 환자 250~400명을 수술하는데, 아라빈드에서는 의사 한 사람이 한 해에 백내장 환자 2,000명을 수술한다. 인도 전체 안과 인력의 1%도 안 되는 아라빈드의 의사들은 인도 전체 백내장 수술의 5%를 해낸다.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중 재인용)
이 병원의 한 쪽엔 명성을 듣고 찾아온 유료 환자들로 붐볐다. 다른 한쪽엔 무료수술을 받으려는 가난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매일 1,200여 명의 환자가 찾아왔다. 의사들은 매일 200여 건의 수술이나 시술을 했다. 36년 동안 아라빈드 안과에서 3,200만 명이 진료를 받았고, 그 중 400만 명이 공짜로 혹은 보조금으로 수술 받았다.
12개의 침상으로 시작했던 아라빈드 안과는 7개의 병원과 50개의 시력관리센터를 지닌 대형 전문병원으로 성장했다. 수익성도 높다. 2008년 영업이익률은 40%를 넘어섰다. 고성장산업의 유망기업도 달성하기 어려운 이익률이다.
성공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수술 과정에 맥도널드식 대량생산시스템의 원리를 적용하고, 저렴하게 개발된 인공안구를 사용해 가치 창출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였다. 저품질의 정크푸드를 실어 나르던 시스템에 아라빈드는 고품질의 안과 서비스를 실어 올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한 것이다.
또 하나. 각종 이익 배당은 금지하고 이렇게 확보한 이익 잉여금은 모두 병원 확장, 의료장비 구입, 의료인 추가 고용 등 재투자에 썼다. (라준영, 《사회적기업의 비즈니스모델》)
가난한 환자에 대한 저가 진료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부자 환자한테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하는데도 부자 환자들이 반발하지 않는 건 이 병원이 낸 이익이 사유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아라빈드 안과가 좋은 병원을 넘어 위대한 병원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산타와 그 적들’, 81~84페이지 가운데 발췌.)
원문: 산타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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