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떻게 해야 할까.
1. 무엇을 경험하고 이야기하느냐에 대해.
예전에 1990년대 잡지 중에 만화잡지 <윙크>였나? 그 잡지 뒷쪽 지면에는 독자가 보낸 그림이나 만화 컷을 직업 만화가들이 평가해주고나 조언을 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만화가를 꿈꾸는 소년소녀들에게는 얼굴을 보기 힘든 ‘선배’이자 ‘선생’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인지라 그 곳에 그림을 보내며 노력하게 하였고, 다른 독자들에게도 재미있는 구경거리였기에 꽤 인기가 있었던 코너로 기억한다.
언젠가 고등학생이었나 중학생이었나, 아무튼 나이어린 친구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장정들이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리는 장면, 아마 그런 장면으로 기억되는 장면을 그려서 투고하였는데 그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무직 선생(현재 일본에서 보치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이 그 그림에 대해 평가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평소에도 사회파라 불리울 정도로 과격한 논조를 보이며 사회적인 소재를 다루거나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그였기에 나는 그가 그 그림을 칭찬하며 격려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반대로 아래와 같은 어조의 평가를 내렸었다.
“무언가를 표현할 때는 자신이 경험하였거나 이해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비뚤어진 시선으로 본다면 “어린 노무 새키가 전투왕 시절에 대해 알기나 하냐?” 하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법한 말이지만 나는 그 말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박무직 선생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가 했던 그 말 만큼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저 말을 경험해 보지 못한다면 그리지를 말라는 말로 받아들인다면 세상에 판타지나 SF 소재의 만화는 씨가 마를 것이다. 하지만 실존하는 역사나 사건을 이야기할 때,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한다면 요즘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훈계조 만화나 깨시민 만화들,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학습만화들을 좀 더 잔인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어떠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물론 저런 이야기를 한 박무직 선생이 그린 <대한민국 헌법 제 1조>같은 만화를 보면 씨발 이게 뭔 소리여 싶을 정도로 미친 소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어쨌든 작품활동이 어쨌든 의미있는 말은 의미있는 말이다.
2. 데즈카 오사무
아톰의 원작자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는 2차대전 전에 오사카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전쟁과 함께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문화를 사랑한 부모님 덕분에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보냈던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나 일본의 군국주의 교육은 그를 철저히 조져놓는데 주력하였고, 그러한 교육과 폭격 등을 거치면서 그는 전쟁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와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냈으나 많은 작품에서 전쟁이나 국가의 폭력을 거부하는 이야기를 다루었고, 특히 전범국가인 일본과 독일에 대해서 가차없는 내용을 많이 만들었다.
전쟁터에 나가서 사람 죽이는 일에 동원되는 분쟁지역의 소년병들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던 사춘기의 소년이 총력전으로 삶이 무너져 버린 경험을 하였기에 그러한 문화 생산 활동을 하였을 것이다.
3. 미즈키 시게루
게게게의 귀태랑의 작가인 미즈키 시게루는 2차대전 당시 징집되어 전쟁터에서 지옥을 보고 왔다(전쟁 중에 한쪽 팔을 잃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다지 미려하지 않은 그의 그림체에 독자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갈대밭과 썩은 우물에 시체가 굴러다니는 태평양 전선에서의 경험이 베이스가 될 것이다. 요괴들과 싸우거나 힘을 합치는 모험극인 게게게의 귀태랑 외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이 만화에서 그는 일본군 지휘부의 정신나간 명령으로 무참히 죽어나가는 일본군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전쟁에서 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병사들은 잘 싸웠다’는 풍의 정신나간 만화들도 등장하던 시기였고, 잡지 편집부에서도 의도적으로 그런 내용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가 그리는 만화 속의 일본군 병사들은 귀축양미라 불리우던 눈 앞의 적이 아니라 눈 뒤의 일본 지휘부 때문에 더욱 비참하게 죽어갔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는데, 태평양 전쟁에 관련된 박물관에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그려주기도 하였다. 다만 태평양 전쟁에서 처참한 경험을 하였고 한쪽 팔을 잃었다 해도 살아돌아왔지만 그러지 못한 다른 병사들에 대한 애통함이 그의 활동의 배경이 된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4. 야나세 타카시
얼마 전 타계한 호빵맨의 작가 야나세 다카시 역시 미즈키 시게루와 마찬가지로 2차대전 중 일본군에 징집되었다. 그는 참혹한 최전선은 경험하지 않았으나 보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남동생의 전사 등으로 전쟁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처참한 경험과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호빵맨이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배고픈 사람을 돕기 위해 자기 몸을 떼어내어 주는 호빵맨의 모습을 보고 있는다면 배고픔이야 말로 가장 비참하고 슬픈 것이고 사람을 돕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그의 경험이 작품 활동과 이어지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죽음과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러한 고민을 어린 친구들도 함께 하기를 원한다. 무엇을 위해 태어나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호빵맨 애니메이션의 주제가 가사이기도 한 이 말은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 하면 죽고, 그렇다고 배고픔을 이겨내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화두이다.
5. 뭐 그렇다고요.
모든 작가들이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전쟁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경험의 전무와 철학 부재를 넘어설만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취재가 될 수도 있고 탐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경험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허접하거나 시시한 것도 아니고 취재나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근사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나름 간접 경험도 있고 전쟁을 겪은 세대와의 소통도 있었던 사람이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만든 바람이 분다는 그러한 배경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한편으로 무언가를 경험해 본 사람은 그만큼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 어디 완벽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기묘한 정물같은 것이라 위에 이야기한 세 명의 작가의 작품활동을 모든 사람이 감탄스럽게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소한 나는 저 세 사람이 전쟁을 이야기하는 각기 다른 세 가지 방식 모두 훌륭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혼자 몇 년 동안 조용히 생각하던 글이었는데, 야나세 다카시 선생이 이리 돌아가버리시고 나니 갑자기 속에서 터져나와 버리네.
원문 : Tacticat / 편집: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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