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글쓰기가 안 되는 이유는 글쓰기를 진행하는 A-Z가 머릿속에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군대 갓 온 신병이 뭘 시키든 어버벙한 것처럼 글을 쓰려고만 하면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런 분을 위해서 약간의 꼼수가 있지만 그냥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글쓰기 과정을 소개한다.
『더 나은 비즈니스 글쓰기를 위한 HBR 가이드(HBR Guide to Better Business Writing)』 같은 책을 통해 많이 소개된, 텍사스주립대 오스틴 캠퍼스의 영문과 교수 베티 수 플라워스(Betty Sue Flowers)가 만든 ‘정신병자, 건축가, 목수, 판사(Madman, Architect, Carpenter, Judge) 이론’이란 것이 있다. 그냥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글쓰기 과정이다.
많이 통용되는 이론이란 건 그만큼 쓸모가 있다는 방증도 된다. 나도 대체로 이 과정을 따라서 글을 쓴다. 이 글에서는 이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1단계. 정신병자: 그냥 자유롭게 쓰세요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하면 절대 잘 못쓴다. 처음에는 그냥 쓰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거침없이 적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일단 달린다. 마음 한켠에서 자꾸 ‘이거 논리가 이상하지 않아?’ ‘글이 좀 그렇지 않아?’라고 해도 무시한다. 나중에 손보면 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열정으로 치우치라.
2단계. 건축가: 버릴 걸 고르세요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주제에서 이탈했거나, 써먹기 어려운 녀석들을 버릴 차례다. 쇼핑하는 기분을 생각하면 된다. 세일한다고 해서 사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별로 불필요한 것이다. 알고 보니 이건 집에 있는 물건이었다. 이렇게 집으로 가져갈 아이템을 고른다.
3단계. 목수: 이젠 집을 지으세요
선별된 재료들의 논리적인 순서들을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것은 과연 이 문장이 말이 되는지 판별하는 것이다. 논리가 억지가 되면, 집이 무너진다. 독자보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4단계. 판사: 사소한 것까지 따지세요
오탈자, 비문을 포함한 전체적인 ‘스타일’의 문제를 개선할 차례다.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건 이때다.
약간의 추가적인 팁
1단계는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무드’를 갖춰놓는 게 좋다. 음악이든 장소든 자신에게 ‘영감’이 오는 환경을 만들라. 2단계부터는 정신과 체력이 멀쩡해야 한다. 먹을 것도 충분히 먹고, 가급적 새벽이나 밤늦은 시각부터는 오전이 좋다.
3-4단계에서 정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서부턴 글과 같이 먹고, 자고 해야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러나 글의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요리가 엉망이면 결국 엉망이다. 이때 최선을 다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