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잘 하는 게 글을 잘 쓰는 일의 대부분이다.
-폴 그레이엄
가끔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고 물을 때면 나는 위의 벤처 투자가이자, 수필가인 폴 그레이엄의 ‘Writing and Speaking’이란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문제는 글을 잘 쓰는 게 아니고, 생각을 잘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생각을 잘 할 수 있느냐란 질문이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보통 다음 세 가지 조언을 해준다.
1.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2. 정직하게 쓰라.
3. 신사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글을 쓰라.
아래에서는 구체적으로 이게 왜 생각을 잘 하기 위해, 글을 잘 쓰기 위해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겠다.
1.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습관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원래는 최소한 대학 교육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키워줘야 맞지만, 우리 대학 교육은 여전히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학생들도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만 열중하다보니,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스펙인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훈련엔 관심을 안 두는 경우가 많다. 윗사람이 시키거나,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답을 맞추도록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주어진 사고의 틀을 벗어나 사고하는 것에 대해 한국인 대다수는 불안과 공포를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자기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는 글을 잘 쓰기 어렵다. 남이 한 생각을 가져다 쓰는 것에는 아무 리스크도 없기 때문이다. 그 생각에 미덕이 있든, 오류가 있든,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안전하지만, 그 만큼 보상도 적고, 성장도 없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스스로 해법을 고민해보지 않고, 정답을 보고 문제를 풀면 실력이 늘지 않는 것과 똑같다.
그러나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 글을 쓰면 위험 부담이 있다. 내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틀릴 수 있는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게 된다. 상대를 더 강하게 설득하기 위해, 글의 내러티브와 스타일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면서 실력이 향상된다.
생각해보면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운동은 신체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리스크를 정기적으로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구력, 근력 등이 강화된다.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우리 정신에 리스크를 줘야한다. 남이 말한 답을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내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훈련하다보면, 생각하는 힘이 더 강해진다. 위험 감수가 없다면 실력 향상도 없다.
2. 정직하게 쓰라.
사람은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 아는 척하기 더 쉽다. 그래서 교만하라가 아니라 겸손하라고 조언을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아는 걸 모른다고 쓰기보다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기 쉽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항상 이런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이 같은 유혹에 자주 빠져, 잘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쓰다보면 미필적 고의로 사기꾼이 된다. 그리고 한 번 사기꾼이 되서 신용이 떨어지면, 내 생각을 사주는 사람은 줄어들게 된다. 길게 보고 글을 쓴다면, 정직하게 써야 한다.
구체적으로, 필요가 없는 장식구는 다 빼고, 팩트만 전달하는 게 좋다. 시나 소설 쓰는 게 아니라면, 형용사, 부사는 비문학 글쓰기에서는 의미가 없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해야 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 원인이 하나라면, 대부분 섣부른 일반화다. 그렇게 단순한 현실은 없다. 피곤하겠지만, 인용하는 내용은 꼼꼼하게 따져보고, 확인하는 게 좋다. 사소한 걸로 가루가 되도록 까일 수 있고,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경험을 몇 번 해봤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야 나쁜 버릇을 고쳤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자기 주장은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선입견을 가지고 문제를 접근하면, 발전이 없다. 글은 결론을 확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사고의 과정을 스스로 검토해보기 위해서 써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써서 내린 결론 역시 언제든 새로운 팩트나, 접근법이 등장하면 수정 가능해야 한다. 내가 옳은 것이 아니고, 팩트가, 논리가 옳은 것이다.
장기적 신용을 놓고 본다면, 어설프게 똑똑한 것보다, 분명하게 정직한 것이 낫다. 장사뿐 아니라, 글도 신용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3. 신사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글을 쓰라.
평론가 김우창 선생님은 문명화된 사회의 척도는 갈등의 원인이 된 문제를 폭력이 아니라 말로 해결하는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셨다. 선진국이 별 거 아니다. 얼마나 말로, 글로, 달리 말하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 그 수준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실 글쓰기란 ‘신사적으로 싸우기 위한 수단’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내가 쓴 글에 모두가 동의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건 곱게 말하면, ‘설득’이지만, 거칠게 말하면 내 적으로부터 내 논리와 팩트를 방어하고, 내 목표 상대를 공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엔 총칼 들고 싸우던 걸, 이제는 말과 글로 대신하는 것이다.
글을 쓰기로 했다면, 링위로 올라왔다면, 이 사실을 잊지 마라. 자기 자신의 취미 생활과 정신 수련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남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거라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는 내게 사랑에 빠져서, 나 없으면 못사는 여인이 아니고,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내가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연적이 수두룩하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그런 맥락에서 볼 때는 러브레터를 쓰는 것과 논문을 쓰는 것, 칼럼을 쓰는 것, 책을 쓰는 것이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을 쓴다면, 상대방이 “Yes”라고 대답할 때까지, 더 잘 써야 한다.
실력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실력을 만든다. 대충 노력할 거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게 기회비용상 더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기왕 글쓰기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투자를 살리는 길은, 단순히 좋은 글이 아닌 이기는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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