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토 오도네(Augusto Odone)는 1984년 자기 아들 로렌조가 걸린 희귀병을 확인한 후 죽어가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경제학자로서 아무런 의학적 지식이 없음에도 병의 진행을 늦추는 완화제인 로렌조 오일을 수년간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만들어낸다.
아들의 죽음 앞에 결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아우구스토와 아들 로렌조에 대한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1992년도에 할리우드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로부터 이 병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내가 만난 또 다른 아우구스토와 그의 아들 로렌조 이야기를 통해 비즈니스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감’의 다른 시각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008년, 당시 탐사 보도 TV PD였던 나는 대한민국 정부의 무리한 고환율 정책에 대한 취재를 진행했다.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기업의 수출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고환율 정책 유지를 주장했고, 수출이 증가하면 국민 소득이 증가하고,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해 결국에는 국가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내수 경제 안에서만 활동하는 국민들은 이 고환율 정책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체감하는 범위가 넓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취재팀이 주변의 의견을 물어보아도 해외여행 갈 때 환전받는 내 돈이 적어지니 짜증 나겠다는 의견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많은 이가 공감할 사례를 찾던 취재팀은 고환율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 현상 중의 하나로 자동차 부품 공장의 연쇄 도산을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부품은 모두 금속으로 이루어진 수입 원자재였기에 이 재룟값이 2배로 뛰었고, 정해진 마진율을 기준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부품 공장들은 결국 길어지는 고환율 정책 유지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는 상황이었다.
4~5개의 폐쇄한 공장을 찾아가 텅 빈 공장의 모습과 공장 대표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러다가 천안의 한 공장에서 박병수 사장(가명)을 만났다. 박 사장은 당시 적자가 계속됨에도 최소한의 외국인 직원을 남겨둔 채 본인 포함 총 3명이 거의 24시간 공장을 운영했고, 이를 의아하게 여긴 나는 왜 이렇게까지 공장 운영을 멈추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박 사장은 자신에게 희소병 ALD에 걸린 아들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ALD, 속칭 ‘로렌조 오일병’이란 보통 8-12세 사이에 발생하며 첫 증상이 발견된 후 6개월 안에 시력이나 청력을 잃고 2년 후에는 온몸의 운동성이 사라지며 식물인간으로 죽어가는 희소병이다. 병의 진행을 완화하는 유일한 약은 로렌조 오일. 당시 한 병에 18만 원, 월평균 4~5병을 섭취해야 했다.
한 달 평균 100만 원 정도가 아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박 사장에게는 고환율 정책으로 인해 공장의 수익과 아들의 약값 전부가 위협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공장을 폐쇄하고 다른 사업을 시작해 돈을 벌, 아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충격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정부’ ‘국민’ ‘정책’, ‘경제 활성화’처럼 어느덧 일상화된 표현들과 결정들의 영향력이 뉴스나 신문에서 보는 대기업의 수출 증대, 여행객의 환전 받는 금액의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끝 어딘가에는 죽어가는 아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밤을 새워가며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실감, 그 ‘거대한 공감’의 차이를 확인한 순간 나는 박 사장과 같이 절망했다.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이야기하는 고객, ‘공감’의 한계
수많은 언론 매체와 HBR의 기사들, 그리고 성공한 기업인들의 인터뷰 콘텐츠들에 너무나도 자주 언급되는 고객 중심, 공감에 대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공감에 대한 고민과 업무에 적용했을 때 얻을 가능성, 기회, 성공에 대한 비전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두 공감을 통해 얻게 될 빛나는 결과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공감하라’라고 주장한다.
광고 에이전시에서 몇 년간 광고 콘텐츠 제작, 캠페인 콘셉트 및 메시지, 전략에 대해 팀원들과 이야기할 때도 이와 같은 공감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기업이 이상적으로 기대하는 고객이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고, 주변에 소개하고, 때로는 지켜주기까지 하는 자발적 행위에까지 다다르기에는 고객 공감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행위자 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이라는 게 있다. 기업은 ‘행위자’로서 ‘내적 정체성’인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강조하는 데 집중하며, 고객은 ‘관찰자’로서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 외부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삶의 순간을 채우기 위한 매개체로써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바라본다.
즉 기업은 자신의 내적 정체성인 제품과 서비스를 전면에 두고 이를 팔기 위한 대상으로 고객을 바라보고, 고객은 자신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제품군(그것이 꼭 그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제품이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구매를 결정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고객 중심의 ‘공감’을 통한 광고, 마케팅, 혹은 제품 및 서비스 기획에 있어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고객 기준에서의 관찰자 관점과 이를 위한 기준점을 재설정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관찰자 관점 공감의 시작점, 기업의 고객에 대한 연민
앞서 말한 박병수 사장님이 여러분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에 구입한 적이 있는 고객이라 상상해보라.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이 절박한 아버지에게 어떤 위로, 가치 제시 혹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박 사장의 모습이 있다. 저녁 6시 반이 되면 거실에 상을 펴고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7시가 되면 식사를 마치고 마루에 매트를 깔았다. 그 위에 자기 아들을 엎드리게 한 박 사장은 그때부터 약 1시간 반 동안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아들의 몸이 굳어가지 않도록, 전신 마사지를 했다.
얼굴과 이마에 땀이 범벅된 이 ‘아버지’의 얼굴이 당신의 고객이라고 생각해보라. 여러분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이 거실이라는 공간 어디쯤 위치하며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의 제품이 수건이라면 박 사장이 마사지를 하던 중 얼굴의 땀을 닦기 위해 뭔가를 찾을 때 가까이 있는 화장지가 아니라 당신의 제품을 집을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감정적 위로와 기능적 요소가 필요할지 생각해보라.
혹은 여러분의 제품이 박병수 사장님이 쓴 안경이라면 이 지쳐 있는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상상해보라. 물론 많은 부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현 제품이나 서비스가 닿은 모습과는 다르겠지만 이것이 당신의 고객들이 놓인 현실 중의 하나고, 이것이 당신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그들 삶의 의미가 될 순간인 것이다.
브랜드의 시작점, 때로는 고객의 관점이 낫다
당신의 가족이자 친구였던 이들을 위해 지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낸 건 아닌지, 그들 중 누군가가 여러분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 로렌조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의 비즈니스가 필요로 하고 기대하는 ‘공감’을 활용할 수 있는 첫 시작이며, 여러분의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성공한 기업들의 경쟁력의 비밀이다.
원문: Ryan Son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