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구두가 갖고 싶었다
엄마는 이유도 없이 왜 조르냐고 했다. ‘그냥 갖고 싶다’ 이상의 이유를 찾지 못한 일곱 살은 길에 누워버렸다. 그 이후에도 무언가를 갖기 위해서는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PMP를 사고 싶으면 ‘인강을 들어야 하니까’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내 돈을 벌어 내가 쓸 때도 다르지 않았다. 자꾸 소비에 이유를 붙이려 했다. 그냥 가면될 것을 나만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굳이 말하면서 ‘가성비 최강 동남아 여행지’로 떠난 다음, 여행지에서도 ‘방콕에서 꼭 사야 하는 기념품’을 부지런히 찾아 다녔다.
아무도 이유를 말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딱히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 필요한 건 허리띠를 더 졸라매자는 다짐이 아니라 소비에 실패할 수 있는 여유다. 하나만 고르라고 다그치는 사람 대신 천천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걸 더 골라 보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 소비에 실패할 여유 中
청춘답지 않아도 괜찮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수험 생활을 했던 언니는 늘 펑퍼짐한 면 원피스를 샀다. 긴 팔도 아니고 반 팔도 아닌 7부쯤 되는 소매의 옷이었다. 수험 생활이 길어질수록 검은색, 회색, 먹색 비슷한 모양의 무채색 옷이 자꾸만 늘어났다. 언니에게 무채색이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언니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청춘 같은 걸 누릴 여유가 없었다. 젊은 패기보다는 작은 일에도 죄송하다고 말하는 쪽이 훨씬 편했다. 내가 어수룩하고 긍정적이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책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의 작가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발랄한 젊은이스럽기’를 당당하게 포기한다.
의지든 패기든 발랄함이든, 딱 내가 버겁지 않을 만큼만 내놓기로 했다. 타고난 게으름이나 소심함 같은 것들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젊음은 누군가에게 보답해야 하는 산물이 아니라 삶의 한 구간일 뿐이니까
– 청춘이기를 포기합니다 中
그 모습을 보며, 포기해도 괜찮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미숙하고 불안한 내 모습도 내 젊음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한 사람이 외치는 뻔뻔한 주문 : ‘어차피 해피엔딩’
수능을 앞두고 공부하기 싫던 날 지친 마음에 도움이 됐던 건 공부 잘하는 친구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옆자리에서 같이 폰 게임을 하다 서로를 망했다고 놀리며 같이 집에 오는 친구였다.
우울함과 불안함에 빠졌던 취준생 시절, ‘오늘도 나태하게 보내자!’라던 친구의 아침인사는 하루치 걱정을 가볍게 만들어 줬다. 내일을 향해 무작정 ‘괜찮을 거야’ 라고 말하기보다 ‘야 나도 망했어’라고 말하면서 지금을 이겨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인생이 끝날 즈음의 내가 행복할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행복을 믿는 게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그것을 회의할 이유는 없다. 반대로 그렇게 견뎌 낸 일상들이 행복한 결말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중 中
아무래도 괜찮다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고 싶을 때면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무작정 펼쳐본다. 내세울 것 없는 시시한 내 인생이라도 그럴듯한 엔딩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용기가 샘솟기 때문이다.
덕분에, 앞으로 더욱 뻔뻔해지기로 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기로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내 삶이 해피엔딩일 것이라고 무작정 믿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시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 ‘어차피 내 인생은 해피엔딩이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