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급 뇌성마비 지체, 언어 장애가 있다. 혼자 걸을 수 있지만 50미터쯤 가면 앉아서 조금 쉬어야 할 정도로 불편하고 요즘은 걷는 것이 더 불편해져서 여행 갈 때는 주로 휠체어를 이용한다. 양손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생활하는 데 불편한 상태고 언어장애가 있어서 처음 만난 사람은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듣기 힘든 정도다.
이런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어떻게 가냐고? 그 방법은 이전 여행기에서 밝혔듯 자세히 밝혔다. 더 궁금하다면 나의 네이버 인물정보와 프로필을 참조하길 바란다. 이번 여행은 예전 여행들처럼 즉흥적으로 떠난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 몇 달 전부터 계획했다. (물론 여행지와 스케줄은 여행 떠나기 며칠 전에 정했지만…) 항상 계획 없이 떠나는데 왜 이번에는 몇 달 전부터 계획했냐고?
외가집에서 여행 계를 한다. 가족들이 다 해외여행을 가는데 패키지여행이라 장애인을 받아주는 여행사가 없어서 나만 못 간다… 일주일간 혼자 밥 먹고 씻고 나 스스로가 케어가 안 되서 국내 호텔에 투숙하려고 해도 보호자가 없다고 거부당한다… 해외 호텔에서는 혼자 체크인해서 한 번도 거절당해본 적 없고 밖에 나가려고 하면 시큐리티 요원을 붙여주고 요청하면 샤워까지 도와주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이전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위치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보로부두르 사원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까지 간 김에 발리도 여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개인적으로 유적지를 너무 좋아해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나 캄보디아 같은 고대 유적지가 있는 곳을 좋아하나 걷기가 힘들고 유적지는 대부분 비포장도로여서 휠체어로도 가기가 힘들어서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유적지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1. 아무 대책 없이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사원에 도전하다
족자카르타의 사원들은 비포장도로에다가 계단도 많아서 혼자 걸어서도, 휠체어로도 구경이 어려워 꼭 동행자가 필요했으나 동행자를 구하지 못해 이전 여행에서는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로 이동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언제 동행자를 먼저 구해서 여행을 다녔다고… 휴양지가 아닌 유적지를 처음 간다고 너무 지레 겁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했다. 복용하는 약이 떨어져서 귀국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이번에는 평소 나의 여행 스타일대로 아무 대책 없이 도전해보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행 비행기를 탔는데 나는 항상 기내석 간격이 너무 좁아서 기내식을 혼자 먹기 힘들어 기내식 배식 타임이 끝나고 나중에 시켜서 스튜어디스에게 먹여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옆자리에 외국인 아가씨가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왜 밥을 안 먹냐고, 불편해서 그러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배가 안 고파서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름은 “엘브라”. 인도에서 왔고 나이는 28세. 한국말을 나보다 잘했다. 방탄 소년단의 팬이라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동생이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해 한국에 동생과 같이 왔다가 혼자 한국 관광 후 집에 가는 길에 인도네시아에 들러 족자카르타의 힌두교 사원 등을 구경하러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족자카르타의 사원들을 구경하러 간다고 했더니 도움이 필요하면 함께 가자고 먼저 제안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마도 동생이 생각나서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것 같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엘브라의 직업은 개발자였다. 그것도 구하기 힘들다는 풀스택 개발자! 대화 코드가 맞은 우리는 비행 7시간 동안 대화를 계속 시끄럽게 해서 스튜어디스에게 경고받기도 했다. 웃긴 것은 엘브라가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나는 영어로 말하고 엘브라는 한국말로 말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한글 발음보다 영어 발음하기가 조금 더 편하고, 또 영어는 간단한 단어만으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된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친해졌고 저녁 10시 반에서야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 엘브라가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줬고 호텔 루프탑 바에서 둘이 저녁과 함께 술 한잔 했다. 나는 아침 9시 50분 족자카르타행 비행기였고 그녀는 2시 30분 비행기여서 그녀가 비행일정을 변경해서 내일 같이 출발하기로 약속을 했다.
2. 족자카르타 관광 시작
아침 7시 엘브라가 내가 있는 호텔로 왔다. 자카르타는 트래픽이 너무 심해서 우리는 아침도 못 먹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11시에 족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내가 예약해놓은 호텔로 이동해 같이 체크인하고 짐을 풀고(같은 방을 함께 이용) 점심 식사를 했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가기 위해 택시를 알아보았는데 호텔 택시가 생각보다 싸서 호텔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으나 1시간이 지나도 택시가 안 왔다. 블루버드(미터제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부르려고 했으나 블루버드 택시는 자카르타나 발리 같은 대도시에만 운행한다고 해 그랩(동남아판 우버) 앱을 통해 불렀다. 바로 연결되어 10분내에 차가 도착했다. 기사님에게 휠체어를 밀어주고 사원에서 계단 등을 올라갈 때 도움을 주면 팁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셨다.
드디어 보로부두르로 떠나나 했으나 그때 시간이 오후 2시 반, 기사님 말이 보로부두르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리고 보로부두르 사원이 5시에 닫아서 못 간다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교 사원으로 손꼽히는 프람바난 사원을 가기로 했다.
프람바난 사원은 족자카르타에서 가장 큰 힌두교 사원으로 8세기경 지어졌다고 한다. 힌두교 신자인 엘브라가 매우 좋아했다. 그랩의 기사님께서 휠체어를 끌어주셔서 사원 내부를 샅샅이 다 구경할 수 있었다.
사원은 정교하게 장식된 거대한 석탑들로 이루어졌다. 특히 힌두교의 3대 신을 모셨다는 3개의 신전은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화산 폭발과 큰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돌조각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맞추어 쌓아 올려야 하는 까다로운 복원작업을 70년이 넘도록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프란바난 사원의 구경을 마치고 족자카르타 자치구의 술탄 왕이 산다는 크라톤 술탄 왕궁을 갔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이 저녁을 먹고 시티투어를 했다. 모든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10시 정도 되었는데 종일 이용한 택시 비용이 팁 포함 한화 4만 5,000원 정도를 달라는 것이다.
그랩은 우버와 같이 거리와 탑승 시간을 계산해서 자동으로 요금이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기사님과 쇼부를 쳐서 가격을 정하는 것이다. 가격도 싸고 기사님도 너무 잘해주셔서 다음 날 아침 8시에도 와달라고 했다.
3. 보로부두르 정상에 오르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8시에 바로 보로부두르로 출발해 10시 반 정도에 도착했는데 사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관리소 직원이 나를 보더니 뛰어 나와서 휠체어를 끌어주며 안내를 해주었다. 나 혼자 방문한 것도 아니고 따로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장애인을 배려해주는 것이 놀라웠다. 과연 한국도 그러할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적은 없다.
잠깐 보로부두르 사원에 대해 설명하자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미얀마 바간과 더불어 세계 3대 불교 사원이다. 780년경에 짓기 시작해 830년경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 후 950년경에 화산 폭발로 인해 분출된 용암과 화산재에 묻혀 거의 천년 후인 1814년에 자바섬을 지배했던 영국 주지사에 의해 발견되어 영국과 네덜란드 식민지치하에서 복원되었다고 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도대체 왜 천 년 동안이나 버려져 있었는지, 또한 건축물의 높이나 폭은 제각각인 반면 사용된 돌들의 높이는 23cm로 통일되었고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렸다는 점이 현대 건축 기술로도 거의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보로부두르 사원 입구에서 본 광경은 계단이 정말 많았다^^;;; 원래 여행 떠나기 2주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먹던 신경통약이 전혀 듣지 않아 다리까지 통증이 너무 심해서 거의 못 걷게 되어 여행 떠나기 전부터 많이 걱정했는데… 그 수많은 계단을 보고 살짝 겁을 먹었다.
다행히 사원 관리소 직원이 비장애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휠체어로만 갈 수 있는 경사로를 안내해주었다. 관리소 직원은 매우 길고 급한 경사로를 정말 숨이 차도록 힘들게 나의 휠체어를 끌어주었고 사원 앞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가까이서 바라본 사원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사원 내부는 매우 급경사인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관리소 직원과 엘브라와 함께 사원 3층까지는 올라왔는데 관리직원이 더 이상은 위험해서 못 간다고 여기까지밖에 못 간다고 했다.
이곳을 보기 위해 인도네시아까지 온 것인데… 정상까지 올라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15분 넘게 관리소 직원과 실랑이를 했더니 어시스턴트를 더 데려오겠다고 관리소 직원이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두 명의 관리소 직원을 더 데려왔고 그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계속 정상을 향해 갈 수 있었다.
신경통 때문에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한 계단 한 계단 오늘 때마다 그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 그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냈고 드디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보로부두르 사원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고 나니 티셔츠는 물론 속옷과 긴바지까지 물이 짜지도록 땀에 젖어 있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밑에서 봐도 물론 멋지지만 사원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신비로웠다. 사원 주변 숲이 매우 울창하게 우거져서 비밀스러운 느낌을 더하고 종 모양 석탑들이 차곡차곡 놓인 것이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정상까지 오르면서 각층도 둘러보았는데 벽이 온통 조각으로 가득 차,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단 안타까웠던 점은 불상들의 머리가 거의 다 잘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인도네시아가 독립할 때 불상의 머리를 떼어서 네덜란드 본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리소 직원과 엘브라와 함께 정상에서 내려와 너무 덥고 목이 말라서 음료수를 마신 후 보로부두르의 입구였다던 믄두트 사원에 방문 했다. 믄두트 사원은 매우 작은 사원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불상들이 있고 간단히 절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절은 못 해서 간단한 묵례만 하고 나왔다.
엘브라는 족자카르타에서 힌두교 사원들을 더 구경한다고 2박을 더한다고 하고 나는 발리 일정이 있어서 믄두트 사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4. 발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다
족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비행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시차가 1시간이 나서 시간상으로는 2시간이 걸렸다. 내가 선택한 호텔은 발리의 청담동이라고 하는 “스미냑”에 위치한 곳이다. 왜 이 지역을 선택했냐면 비치 리조트는 너무 비싸고 우붓(숲으로 이루어진 자연적인 지역)은 내 스타일이 아니고 해서 맛집과 펍, 클럽 등이 많은 젊은이의 지역 스미냑을 선택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하니 9시가 넘어서 호텔 근처 거리 구경도 하고 무언가 먹을 생각으로 호텔 밖에 나가려고 로비로 나갔는데 왜 휠체어를 안 가지고 왔냐고 호텔 직원이 물었다. 나는 어차피 혼자서 휠체어를 움직일 수도 없어서 그냥 슬슬 걸어가려고 했는데 호텔 시큐리티 요원이 같이 가주겠다고 휠체어도 가져다주고 끌어주었다.
마침 호텔 바로 옆에 괜찮아 보이는 펍이 있어서 바로 들어가서 진토닉과 수제버거를 시켜서 먹었다.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 혼자 맥주를 마셔서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에 내가 말을 걸면 못 알아 들을 것 같아서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서 보여주었다.
I am traveling around the world alone and writing books. Can you take a picture with me?
나는 혼자 세계여행하며 책을 쓰고 있어, 나와 사진 같이 찍어줄래?
그러자 흔쾌히 허락해주었고 사진을 같이 찍기 위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자리에 계속 앉아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름은 “타란”, 아일랜드에서 왔고 나이는 25살, 산업디자인 관련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지금 게스트 하우스에 묵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숙소를 옮기려고 찾는다고 하길래 조심스럽게 내 방에 간이침대도 있고 소파도 있으니 같이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의외로 단번에 좋다고 했다. 자기 예전 남자친구도 장애인이었는데 그 친구 생각이 나서 나를 돌봐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날 밤부터 우리는 한방을 같이 썼다.
5. 타란과 함께한 우붓 투어
타란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호텔 조식을 즐기며 우리는 우붓 투어를 가기 위해 한국에서 예약한 드라이버 겸 투어가이드를 기다렸다. 우붓은 발리의 전통과 예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지역으로 우붓 마켓과 몽키포레스트, 왕궁, 논뷰, 미술관, 전통 레스토랑 등 관광지가 매우 많은 곳이다.
조식을 먹고 조금 기다리니 투어가이드가 왔다. 관광 정보를 찾다가 블로그에서 한화 5만 원에 10시간 동안 운전과 한국어로 가이드까지 해주는 현지인 가이드가 있다고 해서, 현지인 가이드 카톡 아이디를 추가해 장애인임을 밝히고 휠체어 끌어주기 등을 도와줄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 좋다고 해 예약했다. 가이드 산토는 블로그의 후기처럼 한국말을 정말 잘했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은 몽키 포레스트, 야생 원숭이 약 600마리가 서식하는 곳이다. 힌두교에서 원숭이를 신성시하기에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인도네시아에서 원숭이를 매우 신성시 여긴다고 한다.
몽키 포레스트는 원숭이 사원 등 구경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토가 휠체어를 끌어주며 가이드(함께 간 타란 때문에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가이드)를 해주어 샅샅이 잘 구경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논뷰”였다. 우붓 지역은 계단식 논이 많은데 그 “논뷰”가 힐링 포인트라고 전 세계 관광객에게 매우 유명했다. 아일랜드에서 온 타란은 논밭을 처음 보았다며 아름답다고 계속 셀카를 찍었다. 나도 계속 보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논뷰를 보고 숲속의 현지 식당에서 나시고랭, 미고랭 등의 현지식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테라스 리버 풀 스윙(Terrace River Pool Swing)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계단식 논밭 위에서 78미터나 되는 높은 그네를 타는 곳으로 인생샷을 찍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나는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커플그네도 있었는데 타란은 무섭다고 타지 않겠다고 해 매우 아쉬웠다.
그네 위에서 본 논뷰는 예술이었다. 이곳은 원래 인생샷을 찍는 곳으로 유명한데 타란과 산토 모두 동영상만 찍고 사진을 안 찍어줘서 매우 아쉬웠다. “발리 스윙”이라는 곳은 사진 촬영까지 해준다는데 그곳은 4만 원이나 했다. 이곳은 5,000원…
그네를 타고 우리는 우붓 왕궁으로 향했다. 우붓 왕궁은 우붓의 마지막 왕가가 살았던 성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성벽들에 새겨진 조각들이 너무 아름답고 정교했다. 주위에 힌두교 사원들과 왕족들이 생활하는 공간들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
우붓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우붓 마켓이다. 우붓 마켓은 주로 공예품 등을 파는 시장으로 디자인을 전공한 타란은 굉장히 흥미롭게 구경했으나 나는 제례시장이라 길이 너무 좁아서 휠체어로 갈 수가 없어서 시장 입구만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우붓 투어를 마치고 비치 클럽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바닷가에서 석양을 보려고 했으나 갑자기 급하게 처리할 회사 일이 생겨서 호텔로 가야만 했다. 돌아와서 일을 빨리 처리하고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타란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일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복용하던 신경통 진통제를 두 알이나 먹었더니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 증상이 나서 잠시 누웠다가 3시간이나 흘렀다.
12시 전에 처리를 꼭 해야 할 일이라 타란에게 혼자서 밥을 먹으라고 했더니 배가 안 고프다고 기다리겠다고 해서 계속 일했다. 계속 일 언제 끝나냐고 보채다 11시쯤되서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다더니 계속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방을 둘러보니 캐리어가 없어졌다… 내가 너무 기다리게 한 잘못도 있지만 말도 없이 떠나다니… 너무도 아쉬웠다.
6. 발리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다
타란을 떠나 보내고 호텔 앞에 항상 웨이팅이 긴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는데 언젠가 가보리라 생각했는데 밤 11시라 손님이 없을 줄 알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더니 자리가 딱 하나 남아서 아름다운 여성과 합석했다. 이름은 “엘라스”, 스위스에서 온 32살 은행원이었다. 휴가를 내고 혼자 여행을 왔다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너무 잘 맞고 내일 일정도 없다고 해서 함께 원데이 크루즈를 타기로 하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타란이 갑자기 떠난 상처(?)가 아직 남아있어서 혼자 술을 마시려고 근처 바에 혼자 갔다. 물론 호텔 시큐리티 요원이 휠체어를 끌어주며 함께 갔다. 혼자 바에서 진토닉을 들이키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는 흑인 여성분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타란을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멘트를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서 보여주었다. 그녀들도 흔쾌히 허락해주었고 심지어 키스까지 해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계속 그녀들과 대화를 했는데 자기들은 이제 바로 앞 건물 클럽에 갈 것이라고 같이 가자는 것이다. 휠체어를 산 상태여서, 과연 입장할 수 있을까? 시험해보기 위해 클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장애인이라고 긴 줄도 프리패스해주고 휠체어를 클럽 안까지 끌어다 주었다.
사실 나는 해외에 나오면 꼭 클럽을 들른다. 한국에서는 클럽은 장애인에게는 금단의 구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면 휠체어를 끌고 가도 무사통과다. 클럽에 들어가 보면 많은 사람이 먼저 다가와 완전 환영해준다.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를 느낀다. 이번에도 역시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한 남성이 나를 무대 중앙으로 끌고 가서 춤 상대를 해주었고 그 후로 많은 여성이 내 주위에 왔다.
친해진 여성에게 더운데 밖에 나가서 한잔하자고 했더니 단번에 좋다고 해 밖에 나가서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름은 “크리스탈”, 23살로 호주에서 남자친구와 같이 왔다고 한다. 조금 후 크리스탈의 남자친구도 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이 되어 어제 원데이 크루즈를 같이 타기로 한 엘라스가 호텔로 왔다. 전날 가이드 산토에게 원데이크루즈 예약을 부탁했는데 산토가 아침에 풀부킹이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를 보기 위해 스미냑 지역에서 가장 핫하다는 “포테이토 헤드 비치클럽”에 갔다.
엘라스와 함께 선베드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썬텐도하고 같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발리에는 비치 클럽이 많은데, 비싼 비치 리조트에 투숙하지 않고도 일정 금액 이상의 음료나 음식을 먹으면 전용 비치와 수영장, 선베드를 이용할 수 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엘라스와 다음 행선지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발리에서 한 출연자가 모터패러글라이딩을 타던 것이 생각이 나서 엘라스에게 모터패러글라이딩을 같이 타보자고 제안을 했더니 좋다고 해 우리는 모터패러글라이딩을 타러 떠났다.
액티비티를 좋아해서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등을 한국에서 몇 번 시도 해보았지만 장애인이라 위험해서 절대 탑승할 수 없다고 수차례 거절당했다. 해외에 나와서는 단 한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다. 발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에서 본 산호초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자유 때문에 계속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
엘라스와 함께 모터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우리가 처음 만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또 어제 간 클럽을 혼자 또 가서 늦게까지 놀다가 늦잠을 잤다. 다음날 가이드 산토가 오후 1시에 와서 체크아웃을 도와주었다. 마사지 숍에 들러 마사지를 받고,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7. 항상 힘든 귀국길
항상 그렇듯 귀국길은 힘겹다. 귀국을 위해 발리 공항에서 라이언 에어를 타고 자카르타에 가서 다시 한국에 오는 것이 원래 비행 스케줄이었는데… 장애 때문에 나 혼자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탑승을 거절당했다. 그래서 혼자서도 50번 이상 비행기에 탑승했고, 한국에서 자카르타까지 7시간 걸리는데 혼자 타고 왔다고, 탑승에 문제가 없다고 어필하자 그때서야 탑승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9시 25분 비행기는 결항이라고, 00시 40분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카르타발 한국행 비행편은 11시 50분인데 그럼 나는 한국에 못 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스카이스캐너 앱으로 발리–자카르타 비행편을 검색해보니 에어아시아가 9시 25분에 있길래 에어아시아를 타고 가겠다고 항공료 환불을 요구하자 자신들이 환불도 해주고 에어아시아 티켓을 사주겠다며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갔다.
다름 아닌 양호실이었다. 왜 여기로 데리고 왔냐고 소리를 치자 또다시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갔다.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라이언 에어 사무실이었다. 그곳에서 나를 탑승시킬지 말지를 회의를 하고 있었다. 비행시간이 4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결론은 대사관 사람을 데리고 오지 않는 이상 탑승이 어렵다는 것이다. 혼자서 수없이 해외여행을 다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결국 비행편이 결항이라는 것도 거짓이었다.
끝까지 에어아시아를 타겠다고 하자 나를 막으며 에어아시아도 나 혼자라서 탑승이 안 될 것이라면서… 나를 막았다. 회사 일 때문에 오늘 꼭 귀국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60만 원을 주고 대한항공 사무소에 가서 발리–인천 직항 티켓을 구매해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의사 소견서와 출입국 기록이라도 떼어서 가지고 다녀야 하나 싶다.
8. 맺음말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그동안 혼자 여행할 때는 유적지를 너무 좋아하지만 지레 겁먹고 휴양지 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거의 택시로 이동해 그 근처를 관광해왔지 현지에서 국내선 항공을 이용해 이동한 적은 거의 없고 유적지를 여행한 적은 없었다. 유적지는 거의 비포장도로여서 휠체어로는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계단도 많아서 혼자 여행할 엄두가 안 났다.
또한 허리가 아파서 먹던 신경통 약이 여행 떠나기 2주전부터 전혀 듣지를 않아 다리까지 통증이 너무 심해 거의 못 걷게 되어 여행 떠나기 전부터 많이 걱정했던 터라 더더욱 불안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보로부두르 정상에 오르고 발리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성공을 계기로 이제부터는 여행 다니고 싶은 여행지를 과감히 다녀보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여행지는 미얀마로 정했다. 딱히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 아파서 잠을 못 잘 때마다 어머니께서 반야심경을 읽어주면 잘 자곤 했다. 아직까지도 반야심경 전문을 외울 정도로 불교에 대한 애착이 있다.
세계 3대 불교 사원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미얀마의 바간을 꼽는다. 앙코르와트와 보로부두르는 다녀왔고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미얀마 바간에서 열기구를 타며 일출을 보는 것이라 다음 여행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힘들게 해외여행을 왜 혼자 다니느냐고 묻지만, 혼자 하는 여행에서 편견 없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여행할 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혼자 음식점에만 가도 거지 취급하며 천 원짜리 하나 쥐여주고 내쫓기 일쑤지만 해외에서는 가장 핫하다는 클럽에 휠체어를 타고 가도 전혀 아무런 제재 없이 입장 가능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반겨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내가 여행에서 겪은 해외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어찌 보면 한국은 장애인들에게 감옥일지 모른다.
계속 세계여행을 혼자 다니는 이유는 여행에서 느낀 편견 없는 세상을 한국에도 알려서 한국의 장애인 인식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장애인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어서다. 요즘은 원인 모를 흉부 근육통 때문에 호흡곤란 증세로 집 밖에 나가기도 힘들게 되었다. 빨리 완쾌해 또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다.
원문: 디지털 연금술사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