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없는 재료를 만들어 ‘전통’이라 부르자는 언론
2013년 10월 20일, 중앙일보에서는 숭례문 단청재료에 관한 기사를 내놓았다. 이 기사에 나온 나름의 전통재료 대안이 조금 당황스럽다.
한국의 맥이 끊겼다지만 실제로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색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적색은 제주도 용암 현무암에서 나오는 붉은 현무암이나 울릉도산 붉은색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녹청색은 놋그릇을 소금물에 담가 놓으면 나오는 비소 녹물로 만들거나 식물에서 추출할 수 있다. 노란색은 황토나 꽃가루, 금 가루를, 검은색은 그을음으로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기사가 말하는 전통인가? 이는 ‘전통’ 이 아니라 ‘새로운 순한국산’으로, 옛 단청과는 관계가 없다. 황토, 금가루, 그을음 등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전통 단청에서 쓰이지 않은 재료들이다. ‘대체안료로서의 개발 및 새로운 전통단청의 시작’이 목적이라면 긍정적인 일이고 가능한 일이다. 온·습도·열·빛·산소 등 환경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면 어떤 고체든 안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탕재에 접착되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색을 낸다면 그것은 안료로써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식물에서 추출한 색은 목재·종이·천 등 바탕재 섬유질 사이로 스미어 물드는 ‘미세 입자의 염료’이다. ‘입자가 커서 바탕재 위로 얹히는 안료’가 아니다. 식물에서 추출한 유기 염료는 채도와 발색이 약하고 불안정하다. 직사광선에 쉽게 색이 바래고, 공기, 습도 등에도 잘 버티지 못한다. 바탕재 섬유질 안으로 스며 물드는 천연염료와 바탕재 위에 입자가 얹히는 안료를 함께 사용했을 때 이질감이 없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안료에 비소 녹물, 식물성 염료를 물들여 수간분채 안료를 시도할 수 있지만, 긴 시간을 두고 실험이 필요하다. 만약 성공한다면 투명하고 고아한 분위기가 날 것이다. 이렇게 천연 재료들을 시도하여 성공했다면 전통으로써의 단청이 아닌, 국내산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전통에 대한 이해 없는, 대책 없는 문화순혈주의
과거에 한국이 왜국 물건 따위는 일절 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밥상 문화든 공예기술이든 한반도에서 자체 발생한 고유의 것들도 잔존하지만 동북아시아 3국, 그리고 동서양이 서로 많은 문화를 주고받은 바도 많다. 중국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조선에서(높은 곳에서) 일본으로 흘러 내려왔다고만 여기고 싶은 의식 때문일까?
한국의 한지, 중국의 선지, 일본의 화지. 이 각각의 전통 종이들은 재료도 조금씩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 한지는 보존성이 탁월하고 강도도 매우 강하다. 선지는 번짐이 좋고 풍부한 농담을 담아낼 수 있다. 화지는 치밀한 표면을 지녀 펜글씨에 적합하며 두께가 얇아서 곱다.
그런데 이 전통종이들의 제작 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비슷하다. 원료인 나무를 삶고 두드려 찧는다. 그 과정에서 잘게 분리된 섬유를 물, 분산제와 섞어 수조에 넣고 발로 종이를 떠내는 것이다. 이러한 종이 문화는, 단지 우리가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하등하다 여기는 일본으로 전해주기만 하였을까? 그렇지만은 않다. 조선 전기 때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온 왜저(倭楮. 일본 닥)를 재배해 화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지기술보다 좀 더 광범위한 전통의 공유로 색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동서양의 전통안료 종류는 일부를 제외하고 꽤 비슷하다. 다만 동일 안료라도 접착제의 성질에 따라 색감과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수백 년 전에도 황토와 뇌록을 비롯한 토성안료와 전통 화학안료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미 중국, 일본, 서역(서아시아) 등에서 수입한 안료가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원료가 되는 돌이 거의 채취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주변의 돌을 빻아 석채로 가공할 수는 있으나 채도 높은 유채색을 내기 어려운 이유로, 안료로 적합한 돌을 수입해 써왔다.
외산에 대한 거부에 앞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전통 문화의 맥을 짓밟고 끊어버린 것은 분명 일본이지만, 우리는 사후노력이 부족했다. 같은 문화권인 중국, 일본이 한국처럼 자국의 문화를 소홀히 했다면 우리는 유물 복원에 ‘사서 쓸 것’조차 없었을 것이다. 문화재 보존과학 차원에서도, 국내 기술상 한계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 재료와 기법을 공유하는 일본으로부터 장기간 연구가 축적된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 방향은 당연하다.
국내 정서상 일본 유학을 거친 복원전문가에 대한 편견도 있다. 하지만 작업자가 제대로 된 역사적 연구를 선행하고 본래의 유물 특색을 왜곡하지 않는 이상, 왜색이란 비난은 어폐가 된다. 그동안 국가적인 차원의 신경을 쓰지 못한 이유이다.
[su_note note_color=”#ffffff”]제 2 조 : 기념물의 보존과 복원에는 건축유산의 연구와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과학과 기술을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제 4 조 : 기념물의 보존은 그를 영구히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제 10 조 : 전통적인 기술이 불충분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현대적 기술을 사용해서 기념물을 보강할 수 있는데 그 효능이 이미 과학적 자료로서 명시화되고 경험에 의해서 입증된 것이어야만 한다.
– 베니스헌장 (The Venice Charter, 기념 건조물과 유적지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국제 헌장, 1964년 제정)[/su_note]
민족 전통에 대한 애착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균형잡힌 시각과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한민족 주의’같은, 컴플렉스에 기초한 인정욕구를 넘어서야 한다.
건강한 보수(保守)는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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