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말 성적평가를 할 때마다 ‘선생도 싫어하고 학생들도 싫어하는 상대평가제가 왜 계속 유지되고 있나?’하는 점이 참 의문이다. 성적평가의 양 주체가 모두 싫어하면 없어져야 하는 게 맞다. 간단하게나마 그동안 생각해오던 상대평가제 폐지 이유를 몇 가지만 적어본다.
1. 상대평가제는 변별력을 낳지 못한다.
한국의 대학에서 상대평가제가 도입된 이유는 한편으론 90년대 말 이후 경쟁력 강화라는 거시적인 슬로건 속에서 진행된 면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IMF 위기 이후 취업난에 시달리던 학생들과 이에 좋은 학점으로 학생들을 도와주려던 선생들 때문에 학점 인플레이션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 시 학점 기준의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교육부에서 이에 응답하여 상대평가제 확대를 정책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과연 상대평가제 실시 이후 학점 인플레는 사라졌을까?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중국에는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있다. 한국의 대학들에서도 일종의 구제책으로 인원이 적은 수업(보통 20명 미만)이나 외국어 강의, 그리고 무엇보다 재수강자들한테는 절대평가를 해줄 수 있게 보완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선 절대평가가 가능한 수업이나 인원에선 일종의 숨통틔우기로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또 한편에선 절대평가 대상이 되는 학생들은 선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대놓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원래는 학점부여의 권한이 해당 수업의 선생에게 있다는 절대평가라는 제도를 학생들은 절대평가는 무조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고 상대평가는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하는 제도라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를 절대화했다.
2. A를 받을 실력이 안 되는 학생들도 A를 받는다.
교수마다 성향은 달랐지만, 예전에 절대평가만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A학점, 특히 그중에서도 A+는 한 반에서 한두명이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었다. 엄격한 교수님들은 뛰어난 학생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한 명도 A+를 주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A학점을 줄 수 있는 비율이 25-30% 가량 정해져 있다 보니, 예전에는 쉽게 받을 수 없는 학점이었던 A학점이 남발되어 학점 인플레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대학 생활을 시작한 내 기억을 떠올려보면, 전공과목 성적 분포가 A학점이 10-20%, B학점 70%(수업듣는 대부분 학생들이 받는 학점), C학점 이하 20% 가량이었던 것 같다. 표준정규분포가 아니라 위가 뾰족하게 올라간 형태였다.
막상 내가 선생이 되고 7년간 이 학교 저 학교 보따리 장사 다니며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다 보니 그때 학점이 이해가 갔다. 실제로도 엄청나게 뛰어난 답안을 작성하는 친구들이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대동소이였다. 아예 수업을 잘 안 들어 오는 등 불성실한 친구들이 일부 있기 마련이니 C나 그 이하도 있었다. 표준정규분포라는 틀에 학점비율을 욱여넣은 현재의 상대평가제도는 실제 평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도 못하고, 최초의 도입의도였던 학점 인플레 현상을 방지하지도 못했다.
3. 경쟁 강화를 통해 학습효과를 극대화하지도 못했다.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옮겨가고 나서 학점에 대한 항의나 문의가 많이 들어오다 보니 선생들이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답이 정해진 문제들로 시험문제들을 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객관식이 필요하지 않은 과목조차 객관식을 채택했다. 그러다 보니 깊이 있는 사고나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유도하는 수업이 아니라, 문제풀이와 암기를 위주로 한 수업들이 대학에서까지 진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4. 학생들의 인성을 파괴한다.
상대평가제가 낳는 최악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상대평가가 유도하는 학점경쟁 때문에 학생들의 인성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조별발표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성적평가 기간이 되면 종종 “누구누구는 우리 조에서 프리라이더였습니다”라는 메일이 오거나 강의 평가의 익명 제언 란에 실명을 제시하면서 실제 조별발표에서 역할이 없었던 이들이 누구인지를 적시하기도 한다.
그런 메일이나 평가서를 볼 때는 무지 마음이 착잡해진다. 선생들이 굳이 조별 발표를 시키는 이유는 협동과 업무분담, 토론의 과정을 거쳐 사회(그리고 회사)를 학습시키기 위한 것으로 여기서부터 협동과 분업, 조직운영(나아가서는 연대의식)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상대평가 수업에서는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중요한 반면, 절대평가 수업에서는 보다 흥미로운 토론이 이루어진다. 학생들이 선생 눈치를 그나마 덜 보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질문할 때에도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즉 상대평가 수업보다 절대평가 수업에서 학생과 학생들끼리의 관계도 훨씬 밀도가 높고 선생과 학생과의 관계도 훨씬 양호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걷어치워라
지금 대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손쉽게, 시급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상대평가제 폐지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학내 구성원의 반발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아주 환영받을 것이다. 정말 폐지하지 못하겠다면 그나마 대안으로 지금처럼 표준정규분포에 비율을 끼워맞추지 말고, A는 30% 안으로, B는 60% 안으로 등 평균 점수만 정해주어 여유폭을 넓히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작으면 그만큼을 늘려 죽였다고 한다. 지금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버리고 A학점의 비율을 줄였다면 B를 줄 수 있는 비율을 그만큼 늘려주는, 예를 들어 A를 15%만 줬다면, B학점 부여대상을 정원의 80%까지 늘릴 수 있게 한다던가 그런 방식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가르치는 선생도, 배우는 학생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기업은 학점을 신뢰하지 못한다. 모두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제도는 빨리 없애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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