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작업자만 비판하며 본질을 놓치는 한국 언론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문제들이 매일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5년 전 화재에서부터 단청·기와·목재에 관한 의혹들, 문화재 업계의 고질적인 부조리들까지. 하나의 문화재가 이렇게 길고 끈질긴 화두가 된 것은 아마도 헌정 사상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복원도 문제가 많지만, 이에 대한 보도 수준은 복원 수준 이상으로 처참하다. 전후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마녀사냥식의 규탄이 난무한다. 일부 실무자의 흠결을 파헤치는 당위를 내세워, 정책적 원인과 해결책을 가리는 행태에 개탄은 배가 된다.
장인과 작업자들이 비판 받고 있지만, 정부의 복원 재촉 압박과 예산의 부족 문제가 더 크다. 또 전통 방식 복원을 하겠다는 선언은 전통과 재료 인프라가 부족한 국내의 현실을 파악하지 않은 약속이었다. 정부가 이런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이 애초에 자리잡고 있다.
가장 중점적으로 의혹받고 있는 단청을 중심으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민과 방책이 무엇인지.
전통이란 무엇인가?
숭례문 복원을 다루기 앞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전통(傳統)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엄격한 답은 없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전통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전통이란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널리 대대로 인정받아온 ‘문화’의 다른 말이다. 멋있고, 견고하며, 오래가는 등 전통의 장점은 무궁무진하다. 전통은 후대에 의해 재구성되며, 옛 것 중에서도 지금의 다양한 상황에 적절히 부합되어야 비로소 전통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번 숭례문 복원 방식도 현대인들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숭례문은 600년이 지난 형태로 되살리는 것이 아닌,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원래 모습으로 되살리자는 합의가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기록과 시대 양식 고증에 따른 미술사적 선택이다.
숭례문의 단청은 1954년·1963년·1973년·1988년에 각각 복원하였고, 이 중 1963년의 단청이 이번 단청 복원의 표준이 되었다. 문화재 관련 인사들이 1963년의 단청 문양 모사와 채색이 조선 초기 단청의 양식에 충실하고 아름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3년 초 화재 전 숭례문의 홍예문 천장 용 그림과 복원한 용 그림이 딴판이라는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전통이란 이처럼 확고한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정서가 개입하게 된다.
여기에는 예산과 전통기술 재현의 한계 등 현실적인 요소도 개입한다. 언론에서는 ‘전통’을 국산 재료, 천연 재료, 한민족만의 고유한 기법, 현대 문명과 기계의 거부 등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과 타협해 전통을 ‘재구성’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재료나 쓸 수는 없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사용 가능한 재료를 지정, 관리하고 있다. 지정된 재료는 크게 전통 안료와 구한말부터 수입된 현대 합성 안료로 나뉜다.
숭례문 단청 박락을 둘러싼 핵심 문제, 정말 저질 아교였는가?
이번 숭례문 단청 박락 후 일어나는 논란은 특히 안료를 부착시키는 접착제에 집중되어 있다. 안료는 ‘칠하는 재료’로 색을 내는데 사용한다. 접착제는 비단, 목재, 종이 등 바탕재와 안료를 이어 붙여준다. 전통 회화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한가지의 접착제가 사용된다. 바탕재 위에 전처리를 하는 바인더, 바탕재에 안료를 접착시키는 미디움, 안료가 묻어나지 않도록 처리하는 바니쉬까지, 이 모든 작업에 거의 한 가지의 접착제를 사용한다.
아크릴에멀전 사용 단청은 약 15년 이상, 아교 사용 단청은 그보다 조금 더 오래 채색층이 버틴다고 하나 어떤 접착제든 시공자의 능력, 주변환경, 일광과 각종 온습도 조건 등 모든 환경적 영향을 받기에 절대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다.
지금까지 복원한 대다수의 단청은 안료로 ‘아교’가 아닌 합성수지인 ‘아크릴에멀전’을 썼다. 그러나 이번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는 ‘아교’를 접착제로 사용하였다. 아교는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3국의 대표적 전통회화 접착제이다. 여기에 대해 왜 국내산이 아닌 저질 일본산을 썼느냐는 비판이 있다. 심지어 “국보 1호 숭례문이 일본 안료의 교보재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회화용·공예용 아교를 추출하는 곳은 없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한국에서 아교를 수출한다고 항변하지만,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아교는 식품용, 공업용이다. 회화용·공예용 아교는 대기오염 피해와 수지타산의 문제로 이미 70년대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재료를 제대로 생산하지도 못하는 한국에서 저급 일본산 아교를 사용해서 박락됐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위 인터뷰이의 말에 따라, 식품용젤라틴(아교)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접착력은 우수하지만 이를 회화에 적용하면 채색층이 딱딱해지며 깨지기 쉽다. 이에 반해 공예용 아교는 상대적으로 접착력은 약하지만 순도가 높지 않은 만큼 유연하고 견고하게 채색층을 지탱한다. 더군다나 이번 복원에서는 알아교가 사용됐다. 알아교는 농도가 진해 목재회화에 적합한 재료다. 때문에 재료 자체를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왜 평소처럼 아크릴에멀전을 쓰지 않고 아교를 썼는가?
또 왜 평소처럼 아크릴에멀전을 사용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다. 미안하지만 아교는 우수한 재료다. 나무는 뒤틀리고 부피도 계속 달라지기에 목재 위의 회화도 그에 따라 잘 늘어나야 보존에 유리하다. 아교는 나무와 동시에 습기를 머금고 뱉고 유연하기에 나무와 한몸처럼 수축, 팽창한다. 나무에 해를 주지 않고 통풍성 또한 우수하다. 잘 갖춰진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회화보존이나 단청에 아교보다 더 좋은 재료는 아직까지 없다. 아교에 반하여 아크릴에멀전은 피막을 잘 형성해주어 습기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회화층이 깨지고 떨어져 나갈 위험성이 더 크다.
위의 이미지는 이번 숭례문 단청 복원과 동일한 재료(봉황 수간분채 + 막대아교)를 이용한 작업물이다. 보다시피 문제 없이 깔끔하게 작업이 완료됐다. 봉황 분채와 아교 모두 화가들이 애용하는 재료로써 기능적으로는 검증이 되어 있다. 다시 강조하자면 재료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다.
그런데 숭례문 복원 이전까지 왜 ‘아교’가 아닌 ‘아크릴에멀전’을 사용했을까? 접착의 유지와 박락의 관건은 주로 접착제와 안료의 ‘안전한 용법’에 있다. 그리고 아크릴에멀전이 더 안정적으로, 보다 손쉽게 칠이 가능하다. 아교는 매우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안료다. 채색층의 아교농도는 바탕재에 가까울수록 진해야 한다. 이 농도가 역순이거나, 안료 입자 크기에 따라 조금씩 상이한 아교농도를 조절하지 못한 경우, 혹은 과도하게 층이 많은 경우는 안정적인 교착이 어렵다. 때문에 아교 전통을 다시 쓰려면 연구와 내공이 필요하다.
진짜 문제는 전통에 대한 이해가 없는 주먹구구식 주문
이번 숭례문 복원 작업은 ‘전통 복원’을 내세우며 이례적으로 전통 안료인 아교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 복원의 총대를 맨 홍창원 단청장은 단청을 처음 배울 시절부터 합성수지와 합성안료를 썼고, 아교와 봉황 수간분채의 배합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없이 갑자기 아교를 쓰라고 하면서, 더군다나 시간과 예산마저 촉박하게 주면서 좋은 결과를 내놓으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문이다.
결국 이번 숭례문 복원에서 드러난 문제는 문화재에 관련해 평소 연구없는 밑천이 드러난 결과다. 그저 단청장을 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다뤄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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