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첫 공권력 진입 후 종일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속상함이나 씁쓸함 같은 감정이 퍼지면서 이 사건의 여파는 당분간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동자를 대표하고 권리를 구현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태도 때문인데요, 이건 결국 노동에 대한 태도이고 우리 대부분이 노동자이기에 더욱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래는 『철도의 눈물』을 읽으면서 페이지를 접어 두었던, ‘노동조합’에 관한 글입니다.
지난 2011년 5월 8일,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가 운행 중 심하게 흔들리면서 위험을 느낀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 일은 SNS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철도공사는 큰 문제가 아니라며 정비를 좀 더 철저히 해서 재발을 막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고는 KTX의 동력을 전달하는 주요 부품인 견인전동기의 내구연한이 지나 심하게 파손돼 발생한 것으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철도공사의 안전 불감증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정비 시스템을 복원해야 했다.
KTX 정비를 담당하는 고양 차량사업소의 노조 지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파손된 견인전동기 사진을 언론에 제보했다. 사고 원인을 쉬쉬하며 당장의 비난만 모면하려던 철도공사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진실을 알리는 것이 노동조합의 사회적 의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 고발의 대가는 참담했다. 철도공사는 제보자를 색출해 관련 노조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언론에 사진을 제보한 지부장은 해고당했다. 당시 철도공사 사장은 경찰청장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허준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건강한 경우와 아닌 경우에 따라 대응은 천지 차이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에 알려 회사를 곤혹스럽게 한 배반자로 규정된 노조 지부장을 철도노조는 철도 안전을 위해 불이익을 감수한 동료로 감싸 안고 법정 싸움과 생활비 지원을 결정했다. 그해 12월, 아름다운재단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안과 관련해 언론사 취재에 협조했다고 징계하는 것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제정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해고당한 철도 노동자에게 공익 제보자 부문 ‘빛과 소금상’을 수여했다.
이 사건은 왜 노조가 존재해야 하고, 또 건강하고 독립적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만약 철도노조가 노조의 본분을 잃은 채 회사의 대리인이 되거나 불의를 보고도 적당히 눈감아 버렸다면 이런 공익 제보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철도와 같은 공공 부문 노동조합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더 필요하며, 더 자주적이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무력화되는 순간 공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과 감시가 불가능해지고, 결과적으로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래전부터 철도노조를 강성 노조로 규정하고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다. 정부의 바람대로 철도노조를 굴복시켜 노사 평화가 꽃피는 사업장이 되는 것의 결과가 비리와 부정에 눈감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노조라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더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