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에는 “뉴스는 기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뉴스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마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자는 현실을 파헤치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이다. 많은 경우 그들은 대접 받는 갑(甲)의 위치에 있기에, 서민의 삶에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유독 추운 겨울, 기자도 추웠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아무리 그래도 추위만큼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어느 날 그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서울신문이었다. 12월 8일 오후 1시, 갑자기 기자가 추웠는지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은?… 무려 ‘-91℃’ 남극산이라는 기사를 썼다.
2시간 후 파이낸셜 뉴스에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은?…무려 ‘-91℃’ 남극산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물론 내용은…
빙설 데이터 센터 측은 “위성을 통해 이 지점 1km²의 평균 온도를 측정했다” 면서 “지구상에서 이곳보다 더 추운 곳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사람이 거주하는 곳 중 가장 추운 마을은 러시아 시베리아에 자리한 오미야콘으로 지난 1926년 -71.2℃ 기온을 기록한 바 있다. (서울신문)
센터측은 “위성을 통해 이 지점 1의 평균 온도를 측정했다”면서 “지구에서 이곳보다 더 추운 곳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중 가장 추운 마을은 러시아 시베리아에 있는 오미야콘으로 지난 1926년 영하 71.2도를 기록한 바 있다. (파이낸셜 뉴스)
그렇다. 기사를 발로 쓴 것이다. 남의 기사를 배끼다니! 파이낸셜 신문, 때치! 맴매!!!
추운 기자들, 언론사의 엄청난 스피드 베껴쓰기
같은 날 더 이상 같은 뉴스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기자들이 제대로 추웠는지 일제히 유사한 기사를 써내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얼마나 춥기에? 결국 이 날만 같은 내용이 무려 97건이나 올라온다. 물론 내용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마음의 눈으로 잘 보면 기사 내용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 사람이 거주하는 곳 중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은 러시아 시베리아의 오미야콘이다. 이곳은 지난 1926년 영하 71.2도의 기온을 기록했다. (동아일보)
한편 남극 연구 지역 외에 사람이 거주하는 곳 중 세계에서 가장 추운곳은 러시아 시베리아에 있는 ‘오미야콘’이라는 지역으로, 이곳은 지난 1926년, 영하 71.2℃ 기온을 수치를 나타냈다. (조선일보)
한편 연구 지역 이외에 사람이 거주하는 곳 중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은 러시아 시베리아에 자리한 오미야콘으로 1926년 -71.2℃ 기온을 기록한 바 있다. (중앙일보)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동아일보는 순한글로 서민의 마음을 살폈고, 조선일보는 ‘기온을 수치를 나타냈다’는 비문으로 기자가 추위에 질렸음을 글로 보여주고 있다. 반면 jTBC의 친구 중앙일보는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다음날도 기자들이 많이 추웠던 것 같다. 보다시피 다음 날도 같은 내용으로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나온 기사 수는 언론사 전체를 합쳐 200건이 넘는다. (기준은 네이버에서 ‘지구상 가장 추운 곳’ 검색으로 한했으며, 실제로는 얼마나 더 많을지 모르겠다.)
남의 언론사 기사 베껴쓰기를 넘어, 제목만 바꾸며 계속되는 발행
이런 식의 베껴쓰기 기사는 14일까지 무려 6일 동안 계속됐다. 그런데 이런 기사를 내놓는 언론사를 살펴보니 뭔가 비슷한 애들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언론사 난방이 제대로 안 된 곳에서 기사를 많이 쓰지 않을까? 그래서 살펴봤다. 어느 언론사가 가장 춥고, 같은 기사를 많이 썼는지. 결과는 다음과 같다.
만년 2등신문 (지금은 3등;;;) 동아일보가 드디어 조선을 꺾었다. 여기에 스포츠동아를 합치면 두 배 넘는 차이를 보이며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일등신문 조선일보도 2위에 랭크되며 자존심을 지켰으며, MBN TV는 얼마 되지 않은 개국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능성을 비쳤다. 이들 4개 언론사는 전체 199건의 글 중 50% 이상을 차지하며 4강 체제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제목만 바꾸면서 계속 나오는 이유는 클릭수 장사 때문이다. 하나라도 제목을 바꿔서 더 올려야 포털 검색에 하나라도 더 걸리고,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낚여서 성인광고 하나라도 클릭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의 언론은,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는 병들어간다.